연재 소설 (15)
다음날이 되자, 우리는 부두 근처로 향했다. 그곳에는 아침 일찍 조업을 마치고 돌아온 작은 배들로 가득했다. 배들은 바다의 움직임에 따라 살랑거리며 이리저리 가볍게 움직였다. 눈앞에는 촌스러운 글씨체로 '가자미 낚시 3만 원'이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저거 어때? 해보자." 보자마자 그에게 배낚시를 해보자고 제안했다. 사실 눈앞에 배낚시가 아니라 그 무엇이라도 할 만한 게 있다면 나는 즉흥적으로 제안했을 것이다. 울컥했던 마음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해야만 했다. 그저 마음이 흐르는 대로 놔둘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팔을 들어 손가락으로 저 현수막을 가리키며 과장된 말투로 그를 불러 저것을 하자고, 해보고 싶다고 말을 했다. 그는 나의 요구에 힐끗 한번 쳐다보더니 차를 부두가 있는 곳 근처의 주차장에 댔다. 전날의 구름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날씨는 화창했다. 그는 전화를 꺼내 현수막에 있는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네. 2명이요. 지금 오신다고요? 알겠습니다." 간단히 통화 후, 한 남자가 부두 바깥의 건물에서 나오는 것을 보았다. 이것은 즉흥적인 결정이었을 뿐, 내 취향은 아니었다. 다만, 이번 여행에 있어서 최초의 제안이었다. 그는 이후에 있을 일을 고려하지 않고 내 선택을 존중해주었다. 우리 말고도 다른 두 일행을 태운 배는 꽤 빠른 속도로 속력을 내더니 이내 부두를 멀리하고 어느 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어부가 간단하게 지렁이를 낚싯대에 끼우는 방법을 알려주자 각자 약간씩 떨어져 낚싯대를 드리웠다. 그러나 20분이 지나도록 가자미가 잡히지 않았다. 어부는 그때가 되어서야 다시 배의 엔진을 켜고 좀 더 먼 곳으로 향했다. "이곳이면 아마 가자미가 많이 잡힐 겁니다." 어부는 다시 지렁이를 끼우며 이곳이 자기만 아는 포인트라고 자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어부는 줄을 내리자마자 물고기를 잡아 다시 올렸다.
대현과 나도 그를 따라 다시 미끼를 끼우고 줄을 내렸다. 마찬가지로 얼마 지나지 않아 줄 끝으로 강한 감각이 느껴졌다. 이 줄 너머로 생명이 낚싯줄에 매달려 살려달라고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손끝에서 그 팔딱거리는 강한 움직임에 놀라 "잡았다!"라고 말하며 탐욕스럽게 줄을 올리고 있었다. 잡아 올리는 순간에 숭고한 생명을 기리는 것 따위는 없었다. 그저 손에서 느껴지는 강한 움직임에 쾌재를 부를 뿐이었다. 나는 포식자였고 강자의 쾌락을 즐겼으며 이 욕구를 통제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한 마리를 잡고 우리는 한참을 배 위에서 다시 가자미가 끈을 잡아 흔들기만을 기대했다.
각자 몇 마리를 잡고 나자 배는 다시 아까처럼 침묵이 감돌았다. 나는 잠시 바다 안을 들여다보았다. 잔잔한 바닷물 위로 더 이상 청년이라고 부르기에 곤란한 얼굴이 보였다. 내 매력은 무엇일까? 나 자신은 매번 부족함을 느끼지만, 객관적으로 보자면 꽤 잘하는 게 많았다. 비교적 자기 관리에 철저했고 일에 관한 주변머리도 있었다. 문제는 이러한 것에 대해 어떤 열등감이나 부족한 자신감의 반작용이 아닐까 끊임없이 의심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가? 타인이 나를 사랑하기 전에, 나 자신이 나를 사랑해야 한다던데 과연 나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것인가? '나는 나를 사랑해!'라고 거울에 대고 읊조려봐도 과연 그런 것인가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 것인가? 곰곰이 생각해도 나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객관적인 증거가 없었다. 삶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좋은 친구도 있고 운동하는 즐거움도 있었다. 자신을 계발하는 데에도 결코 게을리하지 않았다. 전반적으로 좋았다. 그러나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처럼 불행한 가정이 제각각 다른 이유가 있듯, 이따금 나 자신이 무겁게 느껴질 때면 내가 갖지 못한 것들을 보며 공허함을 느끼곤 했다. 그리고 그녀를 떠올릴 때면, '나는 사랑할 확신이 있는가?' 하는 의심 속에서 살았다. 그러한 의심이 깊어지면, 지금까지 잘 지내왔고 그래도 괜찮은 삶이라 여겼던 내 삶, 그 자체가 보잘것없는 가짜 행복에 불과했다고 여기기까지 했다.
작고 나약해진 나 자신이 삶이 무가치하게 느껴지고 부끄러워하게 될 때쯤, 그녀가 나의 역사 안으로 들어왔다. '너무 가까워지지 말자. 그녀가 날 사랑할 것이라고 착각하지 말자.' 휘몰아치는 나의 마음을 평온하게 다잡고자 몇 번이고 되뇌었다. 그러나 한 번씩 그녀가 건네는 사소한 선물을 집에 두고 습관적으로 마주치면서 커다란 의미 부여를 하게 되는 것은 어찌할 수 없었다. 실로 내 것은 모두 무가치하고 불필요한 것인 반면, 그녀의 것은 모든 것들이 빛나고 가치가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종이 쪼가리에 지나지 않던 것에 남겨진 그녀의 사소한 안부 글은 부적이 되었고 성경이 되었다. 그가 만들어 놓은 단어, 문자 하나에 존재할 어떤 다른 비밀스러운 의미가 있을까 싶어 몇 번을 들여다보았다. 그럴수록 나는 그녀의 손길이 닿은 모든 것에 신성함이 깃들어 있다고 여겼다. 이런 생각을 누군가에게 전하면 놀림감밖에 되지 않을 것이었기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스스로 그 유치한 불을 꺼뜨리려고 만방의 노력을 다했지만, 불은 꺼지지 않고 잠잠해져 있다가 그녀와 관계된 사소한 것 하나만이라도 그 위에 떨어지면 마치 기름이 떨어진 것처럼 다시 활활 타올랐다. 그 어떤 것이든 중요하지 않았다. 모든 것들은 생의 불꽃을 피우는 에너지였다.
'죽을 때 후회할 일을 만들지 말라'는 말은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말이며 누구나 아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을 뛰어넘지 못하는 까닭은 당장 눈앞에 죽음이 있지 않아서일까? 삶을 뒤바꿀 만한 죽음과 같은 극적인 긴장감이 있지 않아서 그런 것일까? 대체로 사람은 살아온 관성대로 살게 된다. 무언가 문제가 있다고 느끼면서도 그것을 벗어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내게 있어 이러한 일관성은 '소심한 한 남자의 삶'이라는 주제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주제에 따라 사건이 어떤 식으로 전개가 될지 모두가 예상하기 마련이며, 그 예상이 맞을 경우에는 그 삶을 삼자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자기 자신과 또 그와 관계된 또 다른 사람들은 '그럴 줄 알았지!'라며 묘한 웃음을 짓는다. 사람 가운데에는 큰 깨달음을 얻고 삶의 관성을 벗어나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그를 지켜보던 이들 가운데에는 그를 차라리 모르는 게 좋았을 걸 하며 배 아파하기도 한다. 돌이켜보면 내 삶은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았으며 긴장감이 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후회할 일들이 있다 한들 어떤 일관성에서 벗어나기란 어려웠다. 심지어 그 흔한 사춘기마저 겪지 않았다. 이 생각에 이르자 불현듯 삶이 끔찍해졌다. 마음이 문제였다.
모든 일은 마음먹기라는데, 이놈의 마음은 아무리 생각해도 두 명의 신하를 데리고 있었다. 한 녀석은 그저 살던 대로 살자고 하고 있었고 다른 녀석은 여러 유혹을 내게 보여주고 어떻게든 꾀어내려고 하고 있었다. 도대체 두 녀석 중 누가 악마인가? 나는 알지 못했다.
등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바라보니 대현이 바다에 고개를 숙이고 토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배가 많이 흔들리지 않았는데도 그는 힘들어했고 결국 잡고 있던 낚싯대를 놓고 쉬었다. 그러는 와중에 나는 여러 마리를 잡아 올렸는데, 충분히 한두 끼 식사를 해도 남을 양이었다. 아직은 시간이 남아 있었고 우리 말고도 다른 손님이 함께 타고 있었기에 배를 돌릴 수는 없었다. 나는 그의 옆에 앉아서 우리가 잡은 통 안의 물고기를 들여다보았다. 누워서 이따금 간신히 파닥거리고 있는 가자미의 쏠린 눈이 보였다. 미끼를 물어버린 물고기들은 조만간 두꺼운 칼로 목이 잘리고 몸이 썰리고 비늘이 벗겨질 것이었다. 이놈들에게 준 먹이의 유혹은 단순히 눈앞의 하루 식량의 의미가 아니라 자신의 생을 가르는 것이었다. '네 놈이라도 다를 거 같냐?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하고 나 같은 놈은 바닥이나 훑다가 바닥 아래 붙어 있는 먹이를 간신히 먹어야 하는 거야. 덜컥 눈앞의 것을 쫓다가는 나처럼 될 것이다.' 가자미의 눈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젠장, 이렇게 토하고 말 줄 알았어." 그가 퀭한 눈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그럼 이야기하지. 왜 말하지 않았어?" 그를 보며 안쓰러운 눈으로 이야기를 했다. "너도 하고 싶다고 했고 나도 한 번은 해보고 싶던 일이었거든. 매번 수영만 하는 건 지루하잖아. 그래서 아쉬운 건 없네. 물론 다음부터는 타지 않겠지만. 궁금하면 해봐야 하지 않겠어? 그냥 어떨 거 같다고 생각만 하고 있다가는 아무것도 안 돼. 그냥 놀이인데, 해보고 판단해도 늦지 않잖아. 모든 일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하면 그것이 족쇄가 되어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돼. 어물쩍거리다가 시간만 축내는 거지. 나중에 나이 먹고 우리가 이런 일들을 할 수 있겠어? 욱!" 그는 말을 하다가 말고 다시 배 옆으로 가서 바다에 먹은 것들을 쏟아냈다. "물고기 밥 줬으니 많이 잡히겠네." 입을 게워내고서는 한마디를 더 했다. "그래. 나도 할 거야. 이제는." 목적어를 뺀 상태로 그가 토한 쪽에 물고기라도 치고 올라올지 보면서 이야기를 했다. "에이. 또 거짓말한다." 그는 다시 배 중앙에 앉아 나를 바라보더니 다시 한마디를 더 했다.
한쪽에 두었던 낚싯줄을 완전히 걷고 그의 옆에 앉아 배 아래의 물을 바라보았다. 바다는 계속 일정한 패턴으로 일렁였다. 일렁거리는 바다 위로 하늘을 가르는 수평선이 보였고 그 위로 배 몇 척이 어렴풋이 보였으며 다시 그 위로는 구름이 군데군데 고루 퍼져 있었다. 새로운 다짐이나 어떤 생각도 들지 않는 저 바다와 하늘과 구름을 그저 멍하니 한동안 바라보았다. 저곳은 아침의 바다가 아니었고 나는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저 채도가 다른 서너 가지의 파랑으로 이루어진 풍경일 뿐이었다.
점심때에 이르자 배는 다시 엔진을 켜고 방향을 틀어 부두가 있는 쪽을 향했다. 속도가 빨라지자 마치 물수제비처럼 배가 물에 튕기면서 나아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조금은 끈적한 바닷바람이 얼굴에 부딪혔다. 부두에 이르러 선장은 우리가 잡은 가자미 통에 자신이 잡은 것을 몇 마리 더 넣어주었다. 그리고는 회를 뜨겠냐고 물은 뒤에 만 원을 더 받더니 처를 불러 그 자리에서 직접 가자미 회를 능숙한 솜씨로 떴다. 이내 가자미는 형태를 찾을 수 없이 분해되고 흰 속살만 남은 채 일회용 접시와 봉투에 담겼다. 가자미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뼈가 발라진 하얀 속살이 담긴 흰 봉투를 건네받고 차가 있는 주차장으로 향했다. 약간은 불그스름한 흰 가자미 살에 흰 둥근 일회용 접시에 불투명의 흰 비닐봉투가 제법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왼손으로 접시를 잡고 봉투 바깥에서 살짝 가자미 살을 집어 보았다. 살은 말랑거렸고 봉투는 미끌거렸으며 접시는 오돌토돌했다. 잠시 후 다시 만져봤으나, 살은 오돌토돌하지 않았고 봉투는 말랑거리지 않았으며, 접시는 미끌거리지 않았다.
문득 안에 있는 것을 손으로 집어 주물러 한 덩어리로 만들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말랑한 촉감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뭉개고 으깨어 반죽처럼 한 덩어리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뭉치다가 붉은 초장을 묻혀 한입 베어 물어보고, 끝내는 지루해져 담겨 있던 이 봉투에 다시 던져 버리고 싶었다. 혹은 잘린 모든 살을 섞어 다시 가자미 모양으로 만들어 보고도 싶었다. 그러나 그러면 내 친구는 나를 이상하게 볼 것이고 나 역시 그럴 자신이 없었다. "배고파. 이거 맛있겠네. 얼른 점심 먹으러 가자." 내 안에서 퍼져가는 이상한 생각들을 그에게 꺼내놓지도 못하고 쓸데없는 말만 꺼내놓은 채 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구불구불한 길에 몸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그는 차량 스피커의 음악 소리를 높였다. 흔들리는 움직임이나 그가 달리는 속도가 빠른 비트의 음악과 제법 잘 어울렸다. 음악에 맞춰 네 손가락을 모아 창 옆의 도어 포켓 주변을 두드렸다. 그는 좁은 길을 막힘 없이 뚫고 나갔다. 그 움직임은 섬세하지는 않았지만, 투박하지도 않았다. 두려움이나 망설임 따위는 보이지 않는 부드럽고 역동적인 크로키와도 같았다. 음악이 끝날 무렵, 큰 도로에 다다랐다. 주변을 주시하며 오른쪽으로 차를 돌리며 도로에 진입했다. 좀 더 빠른 비트의 새로운 음악은 그저 고민 없이 도로를 달릴 명분을 주었다. 그런 속도감을 갈망할 뿐이었다. '나는 이곳에 있어. 우린 그저 달릴 뿐이지. 다른 건 생각하지 마.' 시끄러운 비트 속에서 가수는 몇 번이나 되풀이해서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