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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Jan 25. 2020

우울에 관하여.

이따금 어떤 우울이 찾아올 때면, 그것의 원인이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내 의식의 영역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확인해보고 사소한 것이라도 우울의 방아쇠를 당길만 한 것이 발견이라도 되면, 왜 그것이 지금의 우울 상태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지를 과도할 정도로 조사하게 된다. 실로 과도하여 그 원인 자체보다도 그것을 꼽씹는 지금의 순간이 우울을 더 과도하게 이끄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사실 원인은 그다지 중요한 게 되지 않을 수 있다. 지금의 우울은 모든 소설이 따르는 결말이라는 마침표처럼 반드시 존재할 그런 성격의 것이기에 설령 이것이 원인이 아니었더라도 우울할만한 것이라면 무엇인 듯 관련 지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문득 누군가가 얼굴이 왜그러냐고 물어보면 잠깐 창 밖의 내 얼굴처럼 말라가는 듯한 나무와 나뭇가지와 낙엽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그의 말에 슬쩍 미소 짓고 할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양 미간과 이마 그리고 입가 주변에 골고루 퍼져 있는 주름을 보면서 새삼스럽게 '나도 나이를 먹었구나.'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걸 괜스레 몰랐다는 듯 옆 사람에게 이 만큼의 나이를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먹고 말았다며 새삼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의 우울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계절과 흐르는 시간 탓이라며, 이 또한 때가 되면 느끼게 되는 시장기처럼 '이 순간이 지나면 곧 괜찮아지겠지.'라고 생각해버리는 것이다. 그런 것이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그런, 어떤 것이다.


고독감이 짙을 때면 우울은 그 냄새를 맡고 내 주변을 맴돈다. 그리고는 내가 하는 모든 행위에 자신의 흔적을 남긴다. 고독을 먹이로 성장하는 우울은 삶의 패턴을 망가뜨리고 밝은 정신을 좀먹어 나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게 이끈다. 우울은 마치 달팽이의 눈에 기생하는 기생충과도 같다. 기생충에게 신경을 지배당하다면 그는 스스로 움직일 힘을 잃고 자신이 새에게 잡혀 먹기 가장 좋은 곳으로 가게 되는 것처럼, 우울이 내 모든 신경을 지배하는 시점이 되면 그것은 나를 죽이기 좋은 장소로 스스로 향하도록 한다. 우울에 약이 필요한 이유는 바로 이러한 까닭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통제권을 우울이라는 기생충에 빼았겼기에 그것을 죽일만한 구충제가 필요한 것이다.  그 약은 우울증 치료에 필요한 알약이기도 하거니와 우정, 만남, 사랑 등이며 좀 더 구체적으로는 그것 너머에 존재하는 어떤 감동이기도 하다. 위로가 될 수 있는 감동이다. 힘든 바로 지금, 잠깐은 서서 기댈 수 있는 감동이다.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주저앉지 못하는 나에게 주어진 감동은 그뿐이면 된다. 혹은 내가 기둥이 되어 누군가가 내게 기대게 된다면, 나 역시 그에게 기대는 것일 테니, 그것으로 만족할 것이다. 회색의 볼품없는 기둥일지라도 나에게 기대는 이가 있기라도 한다면, 나는 기꺼이 내 기둥의 절반은 그에게 내주고 다른 절반은 뜨거운 해와 차가운 바람에 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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