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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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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Jan 27. 2020

사소한 것에도 그만 눈물이 나던 날이었다.

사소한 것에도 그만 눈물이 나던 그날, 그 전날, 그리고 그 다음 날이었다. 슬플 것 하나 없는 장면 하나에도, 아무것도 아닌 듯한 손짓 하나에도, 나는 터질듯한 눈물을 참느라 눈에 힘을 가득 줘야만 했다. 그리하여 난 방안에만 처박혀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이가 방 안에 들어가 오랫동안 나오지 않는 까닭은 어쩌면 그만큼 충분히 울 공간이 필요해서였던 건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 말이다. 답답한 마음, 서글픈 마음, 누구에게조차 쉽게 내놓을 수 없어 눈에 힘을 주고, 마음을 억지로 조이고, 그리하여 자기 이외의 그 누구에게조차 그 처참한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다가, 결국 지쳐 자기만의 방에서 틀어박히게 되는 것은 아닐까? 아무도 모르게 울 수 있고 자신이 붙잡지 못했던 수많은 것들에 대한 한숨을 쉴 수 있는 곳, 그저 물이 흘러가듯 시간에 흘려보내다가 문득 생각난 사소한 것 하나에 시원하게 울음을 터트릴 수 있는 곳이 필요해서였지 않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고독이라는 것은 어쩌면 수많은 선택과 후회들이 시간에 뒤섞여, 결국 무엇인지조차 잘 모르게 되어버린 혼합물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말이다. 너무 많은 것들을 섞은 나머지, 맛을 잃어버린 음식처럼, 텅 빈 것 같은 이 고독이 사실은 무수히 많은 재료를 섞어 만든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덩어리라는 생각 말이다.

그러한 고독이,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처럼, 내 방 모두를 가득 채웠다. 분명히 그러했다. 방안에 가득한 그 맛을, 어쩔 수 없이 맡고 있다가, 아주 사소하게나마 내가 아는 어떤 맛을 찾고야 말았을 때, 나는 무의식적으로 흘러나온 한숨과 눈물을 참지 못하고 결국 몸과 마음의 무장을 해제하고야 말았다.

그날은 그러했다. 나의 마음과 전신에 모든 힘이 풀려, 다시 잠글 힘조차 없을 것 같은 그런 날이었다. 누군가 얇디얇은 손가락으로 내 팔 어딘가를 찌르기라도 할라치면, 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아직 대비하지 못했던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을 것이다. 마치 심장과 폐, 그 사이 어딘가에 있을 마음이라는 저수지에 물이 가득 차올라, 더는 어쩌지 못하고 그 수문을 열어야 할 때라고 여기면서, 일상의 수위에 이를 때까지 누군가의 앞에서 하염없이 흘려보냈을 것이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덩어리 속에서, 오래전에 잊었던, 아니 잊었다고 믿었던, 어느 한순간의 미묘한 맛을 코끝으로 감지해낼 때, 비로소 우리는 이 ‘고독의 방’의 존재 의미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생각하겠지. 이 공간이 그저 황량한 공간이 아니었음을. 

고독은 저마다가 마음에 품어온 황량한 광야로 우리를 인도한다. 고독 자체가 광야이며, 그곳은 부활을 꿈꾸는 이들의 천국이며 동시에 지옥이다.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며 우리는 저마다 서로 다른 의미를 깨닫게 될 것이다.

사소한 것에도 그만 눈물이 나던, 그날, 그 전날, 그리고 그 다음 날이었다. 쥐고 있던 힘이 갑자기 풀려버린 바로 그 어느 날이었다. 그날, 그 공간의 어둠 속에서 찾았던, 잊고 있던 그 맛을, 나는 발견했고, 그것은 나를 기쁘게도, 또 슬프게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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