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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Feb 29. 2020

괜찮다 하면서 또다시 마음이 슬퍼지는 까닭은 무엇인가?

괜찮다 하면서 또다시 마음이 슬퍼지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학교 복도가 모두 니스칠을 한 나무였던 그 시절, 친구들과 미끄러운 그 바닥에서 놀다가 이따금 작은 가시가 발바닥에 박힐 때가 있었다. 그 시절에는 너무나 흔한 일이라 족집게나 바늘로 다시 뽑아내고 아무렇지 않은 듯 다시 놀곤 했는데, 이따금 너무나 작은 가시가 박혀서 눈으로도 보이지 않고 만져도 잘 만져지지 않는 일도 있었다. 그럴 때면, 어쩔 수 없이 가시를 찾는 일을 포기하고 다른 일을 했는데, 그럼에도 몸에 박힌 눈에도 잘 보이지 않을 티끌만 한 그 놈의 가시가 온종일 나의 신경을 건드렸다.


그것이 아픈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눈으로는 잘 보이지도 않고 빼기도 여의치 않은 그곳에서 계속 나를 건드려대는 것이 무척이나 짜증스러웠다. 도무지 버틸 수 없던 나는 그 주변을 모두 바늘과 족집게를 이용하여 다 헤집어 내고 나서야 만족을 했다. 이따금 그렇게 노력해도 찾을 수 없었는데, 그럴 때면 상처가 날 때까지 그 주변을 파버렸다. 그렇게 발견한 가시는 예상대로 눈으로도 보이지 않는 티끌과도 같은 것이었다.


이따금 괜찮다고 아무렇지 않다고 하면서 마음이 슬퍼질 때면, 나는 어쩌면 내 안에 그렇게 눈에 띄지 않는 티끌과도 같은 가시가 박혀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곤 한다. 모른 척하고 괜찮다고 놔두려 했으나 그것 탓에 신경이 거슬리고 마음이 슬퍼지려 하는 것들, 그것을 가지고 있더라도 웃으며 지낼 수 있지만 계속 신경에 거슬리는 것들, 그것을 스스로 제거하려면 주변을 다 파내버려 결국 피까지 봐야 할지도 모르는 것들이 내 마음이라는 거대한 덩어리에 깊게 박혀 있는 건 아닐까 싶은 것이다.



중요치 않다고 여기던 것들이 실은 중요한 것이라고 느껴질 때가 있다. 온 신경이 다 그 사소한 가시 하나에 가 있을 때가 그렇다. 그 박혀버린 가시가 내게 뭐가 그리 중요한 것이냐고 하지만, 실은 그것이 내 마음에 박혀 내 온 신경을 건드리기에 중요한 것이 되고 만다.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내 마음에 어떻게 작용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도무지 뺄 수가 없어 온통 다른 일로 신경을 집중하다가도 문득 한가한 틈이 생기기라도 하면, 결국 그것에 신경을 쓰고 만다. 그리고 또다시 슬퍼져 버린다. 그럼에도, 쉽게 박혀버린 그 가시를 바로 빼내지 못하는 까닭은 그 가시가 그 시절의 추억을 상기시켜주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에 발바닥에 박혀버린 티끌 같은 가시를 보면서 친구들과 왁자지껄하게 놀았던 그 시절의 쉬는 시간을 추적하듯, 마음에 박혀버린 이 서글픈 가시가 계속 그 시절의 수많은 추억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냥 내버려두면 더 깊게 박힌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래서 더 깊어지기 전에 파내버려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결국 내버려두고 하루를 보낸다. 너무 작은 거니까, 결국 '괜찮아지겠지, 무뎌지겠지.'라고 생각하며, 다른 중요하다 싶은 일에 마음을 쏟아가며, 왁자지껄 웃어가며…….


그리하여 결국,

그렇게 살아간다,

작은 가시를 안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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