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어리석은 글쟁이를 위한 변명 5.

by Chris

5.


이 어리석은 글쟁이는 처음부터 소설가가 되고 싶어 했을까? 어떤 사람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직업을 찾아가거나 혹은 사회의 요구에 떠밀려 직업을 구하게 되지만, 어떤 이들은 시련의 과정을 거치고 난 뒤에서야 비로소 자신의 길을 발견한다. 특히나 예술적 재능을 뒤늦게 발견하는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예술가는 재능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인가? 어떤 기질이 태어날 때부터 존재하고 우리는 그것에 따라 봉사만 할 뿐이라면, 그런데 나는 다른 일을 하고 싶다면? 나는 무엇을 쫓아야 할 것인가? 예술적 재능이라는 말은 어쩌면 예술을 성역화하여 쉽게 넘어가지 못하게 만든 술책이 아닐까? 사실 예술적 재능이라는 것은 빌어먹을 콘래드(사실은 정말 존경한다)가 말한 예술가의 자질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을 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강렬한 욕망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한다. 비록 돈이 없어 날마다 한 끼 라면으로 때우는 한이 있더라도, 머릿속에 잡히는 것 없이 그저 희미한 안갯속에서 헤매는 기분이더라도, 그리고 다른 주변의 동료 예술가가 성공하는 모습을 보고 죽고 싶은 기분이 든다고 하더라도, 십자가의 고난을 기꺼이 짊어진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예술의 고난을 짊어지는 것이다. 그 고난 뒤에 있을 진정한 행복을 있을 거라 믿으며 한 걸음씩 걸어가는 것이다. 물론 그러다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주저앉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머릿속에서는 예술의 욕망이 떠나지 않을 것이며 이 욕망은 그를 갈팡질팡하게 할 것이다. 삶을 지옥이라 부르면서.

예술은 자신이 만들고 선택한 지옥에서 천국으로 올라갈 수 있는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썩은 동아줄과도 같다.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동아줄이지만, 그것마저 붙잡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몇 번이고 붙잡고 끊어지기를 반복한 동아줄이 그곳에 있기에 끊임없이 붙잡아 올라가길 갈망한다. 죽음만이 존재하는 곳에서 유일한 삶의 희망이 되어버린 동아줄! 뛰어도 이제는 제대로 닿지 않은 이 동아줄을 한동안은 신포도로 여긴 적도 있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아무리 자신이 소설의 재능이 없다고 한들 그것만이 유일하게 자신을 살려줄 동아줄로 여겨버리고 만 것이다. 동아줄을 붙잡으려는 시도마저 하지 않으면 자신은 지옥의 깊숙한 곳에서 다른 사람들을 속여 눈알을 파먹는 악마가 되어야만 했다. 어쨌거나 지옥에서도 삶은 계속되니까 말이다.

여하튼, 나의 이야기인지 혹은 그의 이야기인지 모를 예술에 대한 잡탕 같은 이야기는 집어치우자. 한 가지 중요한 사실만을 말하겠다. 그는 인생을 즐길 줄 아는 글쟁이였다.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하겠다.

소설가가 되고 나서부터 인생을 즐기기 시작한 것은 아니다. 평범함으로부터 벗어난 그의 소설가적 삶이 시작되기 전부터 그는 인생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오히려 어떤 의미에선 소설가가 된 지금보다 더 인생을 즐겨왔다. 그에게 있어서 인생을 즐기는 것이 여행을 떠나거나 돈을 많이 쓰는 행위는 아니었지만, 그는 다른 이들과 비슷한 길을 걸을 때도 삶의 가장 중요한 것은 행복이라고 여겼다. 다만 오래전부터 마음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강렬한 소망이 그를 소설가로 이끈 것이다. 그것은 누군가로부터 글을 잘 쓴다는 칭찬으로부터 시작했고, 학급에서 받는 글쓰기와 관련된 작은 상장으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사랑하는 이에게 건네는 마음을 담은 편지로부터 시작되었다. 글을 쓸 때 그는 환희를 느꼈으며, 그 환희는 열망으로 다가왔다. 처음에는 그것이 소설가가 되겠다는 확신으로 바뀐 것은 아니었다. 그저 에세이든 뭐든 자신의 글을 완성해 나가면 되는 것이었다. 한 편의 글을 완성했을 때 느낄 수 있는 강렬한 기분이 좋았을 뿐 자신이 무엇을 해야 소설가가 되는 건지 잘 몰랐다. 아마 타이틀 때문이었을 것이다. 소설가라는 이름의 타이틀은 그저 글쟁이라는 의미를 넘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겨주었다. 그는 많은 사람이 우러러보는 듯한 느낌이 또한 좋았던 것이다. 그러한 기분은 그를 고양했고 그 자신이 이미 소설가가 된 듯한 돈키호테적 자아도취에 빠지게 했다.

그렇게 하여 써낸 최초의 소설은 형편이 없었다. 또한, 자신을 고양하던 기분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매일 머리를 쥐어짜는 듯한 고통에 시달려야만 했다. 그 고통 속에서 글이 탄생했지만, 그 자신은 그 글을 인정할 수 없었다. 한참을 고뇌하다가 몇 년이 지나고 그는 간신히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 후 몇 년 동안 그는 실로 인생을 즐겼다. 물론 앞서 말한 바, 남들처럼 인생을 즐긴 것은 아니었지만 나만큼이나 인생을 꽤 재미있게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는 삶을 살았다. 물론 인생을 즐긴 것은 소설 쓰기를 제외한 전반적인 삶에 관해서이다. 소설을 쓸 생각만 하면 머리가 아팠기 때문에 그는 그 생각을 떨쳐버리려고 더욱 재미있는 인생을 살고자 노력을 했다. 소설 쓰기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자신의 한계를 보는 것 같아 괴로웠고 그럴수록 자신의 삶에 대한 보상을 다른 곳에서 찾으려 했다. 다른 이들이 게임과 도박을 즐길 때, 다만 그는 다른 의미 있다 싶은 일들을 한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가슴 한쪽에 남아둔 본질을 대신할 수는 없었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다시 글을 쓰기로 결심한 것은 의미 있다 싶었던 것들에서 무의미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무엇을 계속 이어나가더라도 그칠 줄 모르는 존재의 고독은 그가 가치 있다고 생각한 모든 것들을 무가치하게 만들었다. 그뿐 아니라, 나이는 먹을 대로 먹고 벌어 놓은 돈도 별로 없다는 현실적인 괴로움은 자신이 더는 글쓰기로부터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글쓰기 말고 다른 일도 잠시 해보고자 했지만, 이미 취업할 나이를 넘어선 그로서는 달리 방법이 없다고 여겼다.

그도 알고 있었다. 불행한 부분을 생각하면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래서 자신을 파괴할지도 모르는 불행한 요소들을 모른척했다. 지금 당장 해결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미뤄두었던 것들이 고개를 쳐들자 동시다발적으로 불행이 보였다. 돈에 대한 불행, 가족에 대한 불행, 나태함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느끼는 불행, 그리고 마지막은 믿고 싶지 않지만, 자신이 재능이 없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에 따른 불행이었다.

그래서 나로서는 그런 그를 위해서라도 소설가로서의 재능을 재정의하고 싶었던 것일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를 무능한 소설가로서 삶이라는 지옥에서 구출해 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는 수많은 날을 후회하고 체념했다. 남들처럼 살지 못한 자신을 후회하기도 했으며 삶을 돌이킬 수조차 없다는 것에 진정 자신의 삶이 가치가 있던 것인지 물어보기도 했다. 한때는 진정 자신이 자유롭고 자신의 삶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여겼지만, 그것은 공허한 외침이었음을 자각했다. 무엇도 이루지도 못한 자신을 한없이 원망하며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울었다. 그러나 그는 긍정적인 사람이었다. 지금의 삶이 우울하고 절망스러워 죽고 싶은 기분이 든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삶이 그럴 거라고 여겨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불가피하며 도망쳐봤자 해결되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면 현실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불평을 하거나 남들의 시선에 스스로 자존감을 내다 버리는 짓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는 생각했다. 그는 진정으로 소설가가 되기로 다짐했다. 그가 가진 모든 것을 걸어서 소설을 완성하자. 이번 소설이 망하면 다음 소설로 도전하자! 이게 내가 주어진 길이라면 그 길이 가시밭이라도 전진하자. 그것이 자신의 인생에 대하여 떳떳해질 수 있는 길이다. 궁극적으로 내가 가진 불안, 끝까지 피하고자 했던 내 불안을 이기는 길이다! 도망쳐봤자 아무것도 안 된다.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대신 남들의 명령을 받는 일을 하지 않으니, 오히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지 않은가? 결국, 모든 지금의 고통이 내가 대비하지 못한 데에 있다면 받아들이자. 그는 그토록 열정이 있는 긍정적인 사람이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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