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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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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Jun 22. 2020

엄마가 울었다.

엄마,     

…….     

엄마,     

…….     

엄마,     

…….     


수의를 입은 할머니 앞에서도 울지 않으려던 엄마가 구슬프게 울었다. 어린아이가 잃어버린 엄마를 찾듯이 어느 날 할머니의 제사상 앞에서 섧게 울어댔다. 아니, 할머니가 보고 싶어 미치겠다는 듯이 울었다. 아니, 더는 볼 수 없다는 것을 안다는 듯이 체념하듯 아련하게 울어댔다.      

내 엄마였다. 세상에서 제일 강한 우리 엄마였다. 그런 그녀가 세상 가장 나약한 목소리로 울었다. 나는 왜 엄마를 강하다고 생각했을까? 그녀 역시 간신히, 버티고 있었던 것뿐인데. 엄마는 절대 울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녀는 다른 말은 하지도 않고 그저 "엄마……" 만을 연거푸 불러댔다. 그러면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리리라 생각했는지, 엄마를 부르고 응답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 잠시 침묵을 지켰고 또다시 '엄마'를 불렀다. 일정한 간격의 저 침묵 속에서 나는 아이가 된 엄마를 보았고 엄마가 된 엄마를 보았고 할머니가 되어가는 엄마를 보았다. 마지막 침묵 속에서 그녀는 이제는 할머니는 세상에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체념한 듯했고 눈물을 닦고 일어나 부엌으로 갔다. 접시를 챙기고 밥솥에서 밥을 뜨고 쇠고깃국을 쟁반에 담아 가져왔다. 쟁반을 가져온 그녀의 눈 주변에 아직 눈물 자국이 지워지지 않은 채 있었지만,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이야기를 했고 또 웃었다.

나도 저렇게 울게 될까? 엄마의 엄마처럼 두툼해진 손목과 주변의 거뭇거뭇하게 핀 검버섯을 보면서 나는 엄마의 제사상 앞에서 언젠가 엄마처럼 울게 될 운명이 머리를 스쳐 갔다. 그걸 생각하면 나도 엄마처럼 울고 싶었지만, 쟁반을 내온 엄마 앞에서 웃었고 엄마처럼 "엄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저 그녀의 촉촉한 눈가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 안에는 말하지 못하는 것들, 때로는 침묵으로만 지켜야만 하는 것들이 있었다.     

엄마는 그렇게 울었다. 우리를 보며 다시 웃었다. 그리고 다시는 우리에게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 귀여운 아같이 우는 모습에서 보이는 한없이 슬픈 감정을 더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짧은 순간 보였던 엄마의 모습은 도무지 지워지질 않았다. 눈물을 흘리며 섧게 할머니를 부르던 엄마의 얼굴, 검버섯이 핀 두툼한 엄마의 손, 그리고 초라한 옷을 입고서 쭈그려 제사상을 바라보는 엄마의 둥근 뒷모습. 그리고 말없이 무대 뒤로 가서 접시와 먹을 것을 챙기는 그녀.      

'저기 있는 그녀가 바로 제 엄마입니다. 언젠가는 나 역시 저렇게 부를 수밖에 없는 엄마입니다.' 나는 그녀 앞에서 더할 나위 없이 밝은 모습을 보이며 웃었다. 나도 엄마에게 '엄마……'라고 울며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면 안 될 것을 알고 있기에 어른스럽게 웃었다. 그래. 나는 어른이다. 철이 든 어른이다. 울지 말아야 할 때를 아는 어른이다. 나 자신도 알지 못하는 곳에서 이런 마음이 피어올랐기에 슬픈 눈으로 환하게 웃었고 밥을 먹으며 떠들어댔다.      

모두가 떠나고 나는 엄마의 머리맡에서 무릎을 베개 삼아 누워 티비를 보았다. 어린 시절 맡았던 할머니 냄새가 엄마에게서 났다. 나는 그 냄새에서 아득한 옛 시절을 떠올렸다. 할머니의 향기이며 이제는 엄마의 향기였다. 펑퍼짐하고 늘어진 옷에서는 약간의 음식 냄새와 몸의 냄새와 그리고 여러 따스한 냄새가 섞여 있는 듯했다. 따스한 그 냄새 속에서 가장 편안하게 티비를 보았고 엄마는 내 얼굴을 계속 바라보며 쓰다듬었다. 보이지 않는 할머니를 바라보던 엄마의 눈이었다. 그 눈빛에는 안타까움과 사랑스러움이 묻어 있었기에 행복했으나 동시에 슬펐다. 내 엄마도 이렇게 할머니 머리맡에서 누워 거친 손길과 눈빛을 받았겠구나. 아니, 내 엄마도 이렇게 나처럼 그 품을 그리워하겠구나. 아니, 나도 결국에는 엄마처럼 그리워하겠구나…….      

그녀는 내 마음을 읽었는지, "내 새끼……." 라며 나를 불렀다. 아니 나를 불렀다기보다 할머니를 부르듯, 그렇게 나직였다고 해야 옳았다. 그 말 뒤의 침묵이 너를 더욱 슬프게 했다. 엄마가 부르는 "엄마……." 엄마가 부르는 "내 새끼……." 그 말 뒤에 있는 숨겨 있는 말이 슬펐다.     

나는 그 목소리에 반응하여 머리를 돌려 엄마의 둥근 얼굴을 바라보았다. 익숙하면서도 왜인지 낯선 얼굴이 눈앞에 있었다. 그녀는 나를 계속 바라보더니 내 입에 깎아 놓은 사과 하나를 입에 넣어주었다. 다시, "내 새끼……."라고 말하며. 내 눈에 그녀의 보름달 같은 얼굴이 맺히고, 초승달 같은 눈이 맺히고, 계곡 같은 주름이 맺혔다. 나는 손을 들어 얼굴을 만지는 거칠고도 따뜻한 손을 만졌다. 거칠어 슬프고 사랑스러운 따뜻한 손이었다. 그 옛날 할머니의 투박한 손이었다. "내 새끼……." 할머니가 엄마를 안타깝게 부르던 그 손이었다. 나는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이 일어 그 손을 더 꼭 잡았다. 구슬피 울다가 눈물을 닦은 그 따스한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이렇게밖에 위로할 수 없는 자신을 계속 원망했다. 말없이, 그저 티비를 보며. 사과를 먹으며 껄껄 웃어 재끼며. 그러다가 나도 '엄마……, 엄마……, 엄마……'라고 부를 걸 두려워하며. 그 언젠가 다가올 그날을 미리 슬퍼하고 또 체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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