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ris Jul 26. 2020

소녀들의 소리 없는 전쟁에 관한 보고서.

『소녀들의 심리학 - 레이첼 시먼스』



※ 이 글은 다음 링크에 있는 글의 연장선에 있는 글입니다. 본지에서는 해당 책에 관한 리뷰를 다루고 있으며 아래 링크에는 소설 김려령의 소설『우아한 거짓말』과의 비교 읽기를 통해 두 책에서 공통으로 흐르는 소녀들의 심리학을 다루고 있으니 참고 바랍니다.

https://brunch.co.kr/@wringkle/77


1. 소녀들은 소년과 다른가?

인터넷 유머 게시판에 만화 하나가 올라왔습니다. “여자들이 어떻게 집단을 형성하고 어떻게 한 사람을 왕따 시키는가?”에 대한 만화였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친구 네 명이 있으면 처음에는 모두 친하게 지내다 두 명씩 패거리를 이루게 되고 그중 한 명이 다른 패로 붙으면서 한 명을 왕따시키게 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왕따는 패거리 밖의 다른 인기 없는 아이와 지내다가 다시 그 패거리로 붙고 다시 다른 한 명을 왕따 시키는 일이 반복되죠. 제 주변의 여자들에게 물어보면 이러한 사례는 꽤 흔히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녀들이 말하는 바로는 이것은 비단 학교 안의 소녀들에게만 있는 일이 아니라 여성이 많은 집단에서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현상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 중 몇몇은 '자기는 불편하더라도 남자들하고 일하는 것이 더 좋다.'라고 말합니다. 소녀들의 싸움은 소년들과 다르다고 합니다. 소년들은 대체로 신체적 폭력 등의 직접적인 방법을 통해 타인을 괴롭히기 때문에 주변에 눈에 띄기 쉽지만, 여자들은 은밀하고 간접적인 방식으로 폭력을 행사한다고 하죠. 그 때문에 학교 내에의 직접적인 폭력 행위가 쟁점이 되고 연구된 것은 오래전부터이지만 은밀하고 간접적인 폭력 행위가 사회문제로 대두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닙니다. 아니 지금까지도 위의 유머와 같은 소녀들의 보이지 않는 폭력행위를 여성들이 거쳐야 할 사회화 과정의 일부로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그 때문에 그것에 대해 적응하지 못한 아이가 마치 잘못인 것처럼 보이게 되는 사례도 비일비재합니다.  


이러한 일들이 왜 일어나는 것일까요? 


'소녀들의 심리학'의 저자 레이첼 시먼스에 따르면 사회-문화적 측면으로 볼 때 '소녀들은 사회가 요구하는 관습에 따라 착한 소녀가 되라고 강요받는다.'라고 합니다. 으스대거나 과시하는 여성, 앞장서는 여성은 사회적 인식으로 볼 때 주변으로부터 소위 '나댄다'는 인식을 하게 만든다는 것이죠. 반면에 사회에서 말하는 좋은 소녀는 배려하고 겸손하며 으스대는 일이 없는 여성성을 가진 사람을 말합니다. 문제는 이러한 여성성을 사회가 지나치게 강조함에 따라 진짜 자신의 감정을 말하기보다 그것에 대해 침묵을 지키라고 요구한다는 점입니다. 그러한 사회에서는 소녀들의 진짜 감정이란 '어리석고', '이기적이고', '무례하며', 혹은 “부적절하다”라고 생각합니다. (소녀들의 심리학, 레이첼 시먼스 25p.)

남자들이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는 것이 은연중에 숭배되고 추앙되는 것에 반해 여성들에게 요구되는 사회적 관념들은 여성들의 폭력을 은밀하게 간접적이며 비신체적인 형태로 등장하도록 합니다. 문제는 비신체적 형태로 드러나는 이러한 소녀들 사이의 폭력을 정말 폭력이라 인식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물리적 폭력이 몸에 멍을 들게 한다면, 은밀한 폭력은 가슴 속을 멍들게 하죠. 그래서 교사들조차 이러한 폭력의 형태를 해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합니다. 선생님 앞에서 웃음 짓고 뒤에서 괴롭히니 피해자가 말하지 않으면 쉽게 알아차리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더군다나 하나의 교사가 수십 명의 학생을 상대하고 동시에 학교의 다양한 일을 처리해야 하는 지금의 교육 시스템의 구조상에서는 이러한 보이지 않는 폭력을 밝히고 해결하기란 쉽지 않은 부분입니다.     


2. 이 책은?

레이첼 시먼스의 '소녀들의 심리학'은 소년들과는 다른 형태를 보이고 은밀한 형태를 이루고 있는 폭력 등에 대한 다양한 사례들을 연구한 책입니다. '왜 소녀들 사이의 갈등이 일어나고 피해자들은 왜 적극적으로 이러한 폭력에 대처하지 않는가? 왜 사회와 부모, 학교는 은밀해진 형태의 폭력을 해결하지 못하는가?' 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레이첼 시먼스는 이러한 은밀한 형태의 폭력을 대체 공격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물리적 폭력성을 띤 것과는 다른 그녀들의 은밀한 공격 문화가 발생하는 원인이 아이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것은 이 사회가 여성에 대해 요구하는 관념과 자기 잘못으로 여기게 만드는 특성들 등에 있음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말하고 있죠. 더불어 마지막 장에는 앞으로 자라나는 부모가 되고 선생이 되는 입장에 있는 우리가 어떤 시각으로 아이를 대해야 하는지에 관한 대안에 관해서 말해줍니다. 

이 책은 소년과는 다른 소녀들의 대체 공격의 형태를 연구한 몇 안 되는 교양서입니다. 그것만으로도 앞으로 소녀를 양육할 부모와 훈육을 담당한 선생님의 입장에서 충분히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차원을 넘어서면, 미셸 푸코가 '감시와 처벌'에서 말한 바와 같은 권력과 권력에 따른 폭력이 점차 은밀화되는 현상과 유사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소녀들 사이에 은밀화되고 서열화되는 권력의 구조 속에서 아이들 스스로는 쉽게 빠져나오기 어려운 일들이 비슷하게 벌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이들 사이에서 인기를 통해 표출되는 권력은 마치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은밀한 권력과 복종의 메커니즘과 다소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우리 사회는 남성성을 억압하고 물리적 폭력을 거세하는 차원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차원에서 볼 때 '소녀들의 심리학'은 단순히 소녀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닌 나아가 우리 사회 전반에서 은밀해진 폭력과 권력이 어떻게 발생하고 작용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합니다.     


3. 우리는 소녀들의 전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영화 '안녕 헤이즐'의 원작의 제목은 “The Fault In Our Stars”입니다.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라고 번역된 이 책의 제목은 셰익스피어가 카시우스의 편지에 쓴 “친애하는 브루투스여, 잘못은 우리 별에 있는 것이 아닐세. 우리 자신에게 있다네.”라는 말을 반박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얼마나 많은 아이가 상처를 받으면서 그 잘못을 자기 자신에게 돌리고 있을까요?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내가 무능하고 멍청해서, 내가 힘이 없어서, 내가 버티지 못해서'라고 생각하고 자신을 자책하고 있을까요? 분명히 이 글을 보시는 분 중에서도 학창 시절에 대체 공격으로 인해 어떠한 정신적 고통을 받으면서도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자기 자신을 자책한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과연 그러한 일을 겪게 만든 원인이 우리 자신에게 있는 것일까요?

영화 '굿 윌 헌팅'에서 천재 맷 데이먼은 어린 시절 아버지의 학대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그가 어른이 되자 그는 자신의 처한 비참한 현실을 벗어나려는 노력 없이 그저 제멋대로 살아가고 누구에게나 곧잘 폭력을 행사하죠. 그는 사랑하는 이에게조차 자신의 진짜 마음을 내보이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의 진짜 마음을 발견한 '로빈 윌리암스(그가 있어서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릅니다.)'는 이렇게 말합니다.     


"It's not your fault."

결코 너의 잘못이 아니야.  맷 데이먼은 자신도 알고 있다고 말하죠. 자기가 이렇게 된 것은 내 잘못이 아니라고. 나도 알고 있다고.    

  

"I know!"

그는 “나도 알고 있어요!”라고 계속 항변합니다. 그러나 결국 그는 로빈 윌리엄스를 껴안으며 “모두가 내 잘못”이라고 울면서 진심을 털어놓습니다. 레이첼 시먼스의 “소녀들의 심리학”은 대체 공격의 피해자들의 조언자가 될 이들에게 로빈 윌리암스가 되라고 이야기 합니다. 피해를 겪고 있는 소녀에게 네가 지금 아픈 까닭이 결코 “너의 잘못이 아니다.”라는 것은 주지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부모는, 학교는, 사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합니다.    

 

4. 끝으로 정리하며. 

소녀들의 심리학은 ‘자라나는 소녀들을 키우는 부모와 선생님을 위한 책’ 임과 동시에 우리 사회에서 볼 수 있는 은밀한 폭력에 관한 책입니다. 이것은 소년에게도 적용될 수 있으며 그들이 자라 사회를 살아갈 때, 다른 형태로 등장하게 되는 은밀한 공격의 형태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이기도 합니다. 더불어 해결 방식에 있어서 그녀가 제시하는 다양한 방법은 결국 때로는 가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되는 이들과 어떻게 ‘공감’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합니다.  지금의 사회는 ‘공감이 결여’된 사회라고 합니다. 그러한 공감의 결여는 자라나는 소년, 소녀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되고 있습니다. 부모들도, 학교도, 사회도 ‘공감대 형성’ 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은밀한 폭력과 관련하여 무엇이 왜 문제인지, 또 어떻게 공감을 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고 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그러한 폭력의 실상을 조금 더 명확하게 밝히고 그와 비슷한 일을 겪고 있는 아니 혹은 아직도 어린 시절의 그러한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고 치유할 수 있는 해결책을 조금이나마 제시해 줄 것입니다.


2014.09.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에도 기술이 필요한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