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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Jul 28. 2020

찬란한만큼 먹먹한 고독에 관하여.

『백년 동안의 고독 -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고독이라는 것은 참 무섭습니다. '자유로부터의 도피'의 에리히 프롬에 따르면 이 고독을 벗어나고자 인간은 어디론가 소속을 구하게 되고 심지어는 자유에 의한 고독을 피하고자 권위주의로부터 몸을 기댄다고 하죠. 그에 비하면 법정 스님은 '홀로 사는 즐거움'이라는 책에서 고독을 옆구리에 스치는 시장기와도 같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아차!' 하는 것은 우리가 죽지 않는 이상 시장기는 언제나 나를 끊임없이 괴롭히고 따라다닐 것이라는 점이었습니다.


고독의 근원은 어디일까요? 나이를 먹고 삶의 회한이 가득할수록 고독감이 더 깊어지는 것일까요? 엄마의 젖 품 안에서 살아갈 때는 그런 생각을 그리 품지 않고 있다가 나이가 짙어지고 서른이라는 고개를 넘어서고 나니 고독은 내 안에 또 다른 나를 느끼게 되는 행위인 것 같습니다. 또 다른 나는 어린 시절에 하늘의 별과 달이 내가 좋아 쫓아 온다고 생각하던 때의 나이기도 하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어머니의 포장마차를 밀어주던 때의 나이기도 합니다. 고독은 불행과 행복을 나누는 기준이기도 하고 그 행복과 불행의 교집합 사이에 존재하는 혼합물의 형태 같기도 합니다. 그 때문에 행복한 위치에 있는 나는 그 안에서 불행에 있는 또 다른 나를 발견하고, 마찬가지로 인생의 진흙탕 속에 있는 나는 에덴동산에서 젖과 꿀을 빨고 있는 또 다른 내 안의 형제를 보며 놀라움과 동시에 슬픔을 교차시키지요. 그러고 보면 고독은 또 다른 나 혹은 내 형제를 발견하는 행위 같습니다. 이 존재는 마치 이율배반적이어서 마치 한몸에 있되 내 뒤통수에 달려 서로가 자신의 존재를 직접 보지는 못하고 거울을 통해서만 어렴풋하게 그 존재를 알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사자성어 중에 맥수지탄이라는 게 있습니다. 무성히 자라는 보리를 보고 그 옛날 그 자리에 융성했던 한 나라의 멸망을 탄식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백 년 동안의 고독-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저'은 한 집안의 5대에 걸친 흥망성쇠를 다룬 이야기입니다. 조금은 두껍고 조금은 허황된 것 같은 이 책을 덮고 나서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이 바로 이 고사성어였습니다. 세월이 흘러 번창했던 곳이 이제는 보리밭이 되었고 한 인간이 그 위에 서서 세월의 무상함과 대지 위에서 한낱 덧없는 인간으로서 느끼는 고독감을 이 책에서 발견하였습니다. 융성하고 강대했던 이도 가난하고 허약했던 이도 모두 시간 앞에서는 한낱 덧없는 존재밖에 될 수 없고 우리는 그것을 피하고자 아무리 저항하려고 해도 결국 숙명처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인생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누군가는 대를 이어 태어나고 그와 동시에 누군가는 어린 시절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간직했던 이조차 세월 앞에서는 썩은 내를 풍길 수밖에 없는 되풀이 되는 반복을 역사라고 한다면 이 책은 역사를 은근하게 그리고 또 은유적으로 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이라는 인물이 나이를 먹은 후, 밝고 넓은 텅 빈 길 위에 홀로 서 있는 자신을 마주하고 죽음까지 이르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그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슬픔보다도 먹먹함이 느껴지죠. 뭐라 잘 설명할 수 없지만 슬픔보다 더 깊은 감정이며 우리 안에 너무 깊어 빛마저 들기 어려운 깊은 호수가 존재한다면 바로 그곳, 우리 가슴 정 한가운데 심층부에 자리한 것을 건드는 기분이 듭니다. 그곳은 무척이나 어둡고 침침합니다. 


백 년 동안의 고독은 참 재밌는 책입니다. 고독을 이야기하지만, 결코 어둡고 칙칙한 장마와 같은 책은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밝고 찬란하고 마술 같은 오색 향연이 더 많은 책입니다. 어떤 책들은 작가의 국적에 따라 그 나라나 지역적 느낌을 그대로 전달하는 경우가 있는 데 이 책 역시 그렇습니다. 마치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라는 책에서 조르바라는 인물을 통해 그리스와 지중해의 모습을 책에 그대로 나타낸다면 이 책은 지중해와는 다른 남미 카리브해의 느낌과 라틴 아메리카에서 느낄 수 있는 정열을 고스란히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재밌고 환상적이며 읽고 있는 자신도 다른 나라에 와 있는 느낌을 전해줍니다. 어쩌면 그래서 더 읽고 나면 ‘고독’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해 볼 수 있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고독한 이의 고독한 이야기를 그대로 전달하는 것보다 그와 반대가 될 것 같은 상황들을 제시함으로써 종국에는 치명적인 고독에 대해 고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강한 흡입력과 공감을 형성할 수 있는 것처럼요. 


당신에게 고독은 무엇입니까? 매일 수많은 자기계발서를 읽으며 긍정을 한다고 해도 벗어날 수 없는 근원적인 고독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1년도 아닌, 10년도 아닌 생(生) 전체를 마주하고 있는 고독, 벗어나려야 벗어날 수 없는 죽음과도 같은 고독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고 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운명의 양피지를 모두 해석하고 나서야 자기와 자기까지 한 지역의 흥망성쇠와 함께 발버둥 치던 그들의 역사가 모두 덧없는 것임을 알게 되면서 '나는 무엇을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또다시 고민하도록 합니다. 그 고민 속에서 어떤 구절 하나가 문득 딱 떠오르네요. 


"이 또한 지나가리라…."


역사도 세월도 그리고 고독도 무심한 세월 앞에서 지나가고 또 누군가 똑같은 고민을 하겠죠. 그리고 언젠가 '모든 건 다 알려지기 마련이겠지.'는 생각을 품으면서요. 뭐, ‘다 상관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2014.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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