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 그림자를 찾아서
우리는 이후로도 높은 산을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했다. 그리고 어느 시기가 지나자 산과 산 사이로 마을이 보였다. 사방이 모두 산이었고 그 중심에 마을이 있었다. 마을로 내려와 사람들을 보았다. 유상의 마을이 마치 승려의 마을과 같았다면 이곳은 꽤 현대화가 진행된 마을 같았다. 마을의 중심으로 이어지는 길에는 가판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었는데 이곳이 시장인 것 같았다. 엄청 많은 인파가 밀려와 북적대고 있었고 사람들은 값을 흥정하느라 혈안이었다. 돈을 주는 이와 물건을 건네는 이들 사이에서 흥정이 이뤄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때때로 흥정이 잘 안 되었는지 인상을 찌푸리기도 했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고 대체로 모두가 즐거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누구도 우리를 신경 쓰지 않았다. 스승은 이곳에서 이방인이 머무르려면 임시 통행증을 발급받아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마을의 중심에 있는 관청으로 들어가 임시 통행증을 발급받고 숙박할 장소를 찾았다. 다행히도 관청의 주변에는 숙박업소들이 존재했고 그중에 2층 건물이 있는 집으로 들어가 숙박을 신청했다. 방에는 꽤 아늑한 침대가 있었다. 그곳에 짐을 풀자마자 온몸의 긴장감이 풀렸고 씻기도 전에 스르르 눈이 감겼다.
꿈은 현실의 반영이라지만 어쩌면 나에게는 꿈이 곧 현실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 꿈을 통해 나는 내가 누워 있는 세상을 삼자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누워 있었고 내 옆으로는 유미와 노인이 대화하고 있었다.
“아빠, 이 남자는 그림자를 찾을 수 있을까요? 그리고 우리도 찾을 수 있을까요?”
잠시의 꿈은 외부의 외침에 의해 깰 수밖에 없었다. 유상의 밥 먹으라는 소리에 잠에서 깨고야 말았다. 무언가 노인이 말을 하려던 참이었는데 듣지 못해서 아쉬웠다.
꿈은 때로는 많은 것들을 조작한다. 이것은 꿈일까? 아니면 현실을 본 것일까? 이미 과거에 꿈을 통해 현실을 보았기에 지금 내가 본 것이 현실인지 나의 의식이 조작한 또 다른 꿈인지 알 수 없었다. ‘아버지에 관한 나의 그리움이 노인을 아버지로 투영하게 한 것일까? 그런데 왜 그녀가 그 노인을 보고 아빠라고 했을까? 무엇을 찾는다는 거지? 나의 그림자?’
잠에서 깨어 이러한 생각을 깊게 하는 것도 잠시, 유상은 내려오지 않는 나를 찾아 방으로 들어왔다.
“무엇을 그리도 골똘히 생각해?” 유상은 나를 보며 물었다. 나는 이상한 꿈을 꾼 것에 관해서 이야기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나를 이리로 오게 만든 이가 대화를 하는 장면을 보았다는 것, 배경은 약물은 투입한 이후인 듯하며 나는 마치 영화의 관객처럼 3자가 되어,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는 것, 그리고 유미가 노인을 아버지라 부르고 나를 통해 무엇인가를 찾으려 한다는 것까지.
유상은 잠자코 듣더니, 내게 말했다. “어차피 지금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 일이잖아. 시간이 지나면 네 꿈의 진짜 의미를 알 수 있겠지. 지금 해야 할 것은 밥을 먹고 열심히 네 그림자를 찾는 일이야.”
그를 따라 식탁으로 내려오니 이미 스승이 자리에 앉아 식사하고 있었다. 유상은 나 대신에 늦게 내려온 까닭을 스승에게 설명해주었다. 스승은 이야기를 듣더니 잠시 눈을 들어 나를 바라보고선 다시 태연한 모습으로 밥을 먹었다. 나는 스승이 무슨 말을 해주기를 바랐으나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스승님, 무언가 알고 계신 것이 있으신가요? 있다면 무엇이든 말해 주십시오.” 그가 나를 바라보았을 때, 나는 그의 눈빛이 잠깐 흔들리는 것을 보았기에 그가 무엇인가를 알고 있을 것만 같았다. “현재로선 알 수 없네. 자네의 꿈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그대가 꿈에서 보는 모든 것이 진실일 거라고도 거짓일 거라고도 생각하지 말게.”
식사하고 유상과 나는 거리로 나섰다. 거리에는 여러 물건을 파는 가판과 사람들이 즐비했다. 어린 시절에 어머니의 손을 잡고 다닌 이후에 처음이었다. 어머니의 손을 자고 갔던 그곳은 모든 것이 신기한 세상이었다. 다채로운 생물들을 볼 수 있었고 그곳은 항상 활기가 넘쳤다. 엄마는 항상 나를 그곳에 데려갔다. 내가 있으면 아주머니들이 하나라도 더 준다고 했다. 그 생각에 이르자, 무엇인가 이곳이 낯설지 않게 느껴졌다. “나는 언젠가 엄마의 손에 이끌려 이곳에 와 본 기억이 있는 것 같아.”
아주 오래전 기억이었다. 내 손이 아주 작을 때, 그러니까 그녀가 손가락 한두 개만으로도 내 손을 이끌던 시기였던 것 같다. 엄마를 따라나선 장터는 온통 신기한 것으로 가득한 장소였다. 엄마는 길을 따라 펼쳐져 있는 것들을 천천히 보아가며 앞으로 향했지만, 나의 눈은 이곳에서 저곳으로 쉴 새 없이 움직였다. 그러다가 이윽고 장터 중앙에 있는 천막을 보고 나면 그곳에 머물러 짜장면이나 우동을 먹곤 했다. 유상을 따라 나온 이 길의 중앙에 있는 저 천막처럼 말이다. 유상이 잠시 한눈을 판 사이에 나는 옛 추억에 이끌려 조용히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내 예상과는 달리 그곳은 짜장면을 파는 곳은 아니었다. 천막 안에는 어둠이 가득했고 그 중앙에는 한 여인이 어두운 촛불 뒤에 앉아 있었다.
“이곳까지 오느라 고생 많았어요.”
중년의 그녀는 어둠 속에서 나를 보며 이야기했다. 나는 당황스러운 듯 그녀를 보며 “저를 아시나요?”라고 물었다.
“그대도, 그대의 부모도, 그리고 그대의 그림자도 알고 있지요. 이곳에서 인간이 된 그림자는 그대를 기다리면서 동시에 그대에게서 멀어지려고 하죠. 그림자 안에는 두 존재가 있어요. 그 존재는 동시에 존재하지만 둘 중 하나는 그 힘이 억제된 상태죠. 그대와 함께 있고자 할 때는 멀어지려는 존재보다 그대와 함께하려는 존재가 강했지만, 지금은 그대에게서 멀어지려고 하는 존재가 더 강해요. 그림자가 이곳에 머물러 있게 된 까닭은 그대 때문이기도 해요. 그대가 그림자를 찾기로 마음을 먹으니 그림자 내부에 있던 그대와 함께하고자 하는 존재가 반응하는 거니까요. 간신히 그대로부터 떠나려는 존재를 붙잡고 있죠. 중요한 것은 그대의 의지예요. 그대의 의지가 그것을 끝까지 찾으려고 노력할 때 무의미해 보이는 것들이 의미로 변하게 될 거예요.”
“그러면 지금 나의 그림자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어디에서 어떻게 존재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그대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어요. 그를 당신의 발에 다시 붙이기 위해서는 그대는 그대 삶의 중요한 것들을 회상해야 할 거예요. 그 회상이 그림자를 찾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죠. 기억하는 것들에 의미를 부여해요. 모든 것을 그냥 시간에 맡겨 흘러가게 놔두지 말아요.”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마치자 자기 앞에 있는 촛불을 끄더니 어둠 속에서 혼자 있고 싶다고 했다. 밖으로 나오니 강렬한 태양에 눈이 부셨다.
“어디에 있었어?”
멀리서 나를 보고 뛰어온 유상은 나를 보더니 이렇게 물었다.
“잠시 이 천막 안에 들어갔다 오는 길이야.”
“천막? 무슨 천막?”
그는 내 어깨너머를 보고 다시 내 얼굴을 보고 말을 했다.
“무슨 천막이긴, 여기…….”
그에게 말을 하며 동시에 뒤를 돌아봤지만, 내가 들어갔던 천막은 온데간데없었고 그 공간 위로 사람들이 오고 갔다.
“분명 여기에 천막이 있었고 그 안에 중년의 여성이 내게 이야기를 해줬어.”
나는 그녀에게 들은 이야기를 유상에게 똑같이 해 주었다. 유상은 내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잠시 생각에 젖는 듯했다.
“나는 너의 환상을 믿어. 그런데 그녀가 왜 지금 너에게 와서 이야기했을까?"
"글쎄?"
"그림자를 찾지 못할까 하는 두려움, 의심, 그리고 도망치고 싶은 마음 때문은 아니었을까 싶어. 붙잡기에는 너무나 멀리 있는 것처럼 느끼는 것들에는 처음에는 의지를 불사르다가도 이내 포기하게 되니까. 나는 네가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훌륭한 것이라고 봐.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림자를 붙잡고자 하는 의지는 옅어졌을 거야.” 그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다시 나를 보며 말을 했다. “너와 스승을 따라나선 게 잘한 선택 같아. 좀 더 넓은 세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네 옆에서 신기한 일을 겪는 것만으로도 생각을 멈출 수 없게 하거든. 사막의 시간을 이겨내고 난 뒤, 그 마을에서의 변함없는 생활은 나를 그저 관성대로 사는 인간으로 만들지는 않았나 싶어. 뭔가 그 밖으로 나가는 것을 동경하면서도 동시에 두려워했기에 나갈 수 없었던 것이지. 그것을 깨뜨릴 수 있게 된 것은 바로 너와 스승 덕분이었어. 비록 나의 적극적인 의지로 너희와 여행을 하게 된 것은 아니지만, 바깥세상을 향한 동경이 있던 찰나에 그 불을 붙여준 것이 바로 너희이지. 이렇게까지 오게 된 것은 우연일까, 필연일까? 나는 알 수 없어. 중요한 것은 이 세계에서 나는 살아있다고 느끼고 있다는 거야.”
그는 나를 보고 웃었다. 그 사내의 모습이 무척이나 커 보였다. 그를 보며 현실 세상을 등지고 이곳에서 살아간다면 어떨까 싶기도 했다. 어쩌면 현실이 아닌 이곳이 오히려 나를 더 살아있게 하는 것은 아닐까? ‘이곳에 온 목적을 잃지 말자.’ 속으로 몇 번이고 되뇌었다. 그리고 유미! 그녀를 다시 떠올렸다. 만약, 잠시 그곳으로 우연히 되돌아가 만난 유미가 없었더라면, 나는 어쩌면 이곳에 좀 더 있게 되면서 이곳의 삶을 더 만족스러워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가 현실로 돌아간 것도, 다시 돌아온 것도 우연이 아닐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보자. 무엇이 되었든 간에.’
내 앞에서 웃고 있는 이 친구를 보고 있노라니,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나 혼자였으면 하기 어려울 일도, 이 친구와 나를 이끄는 스승이 있다면, 지치지 않고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껏 생각해 보면, 내 부모가 죽은 이후로 나는 이러한 사람을 만나지 못했던 것 같았다.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도, 나를 위해주는 사람도, 그리고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아니, 잠시 있었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들과 오랫동안 함께하지 못하고 결국 말없이 도망쳐버리고 말았다.
“나는 실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살아왔어. 의미 있는 것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었고 그저 무감각하게 살아왔던 것 같아. 나는 나를 위해 살아오지도 않았고 내 삶이 어찌 되어도 상관없다고 여겼어. 당장 내일 죽어도 상관없는, 그런 삶! 나는 그런 삶을 살고 있었던 거야.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던 삶, 이 세계 위에서 내 흔적 따위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는 그런 삶! 나는 그런 삶 속에서 살아왔던 거 같아. ‘그냥 이대로 죽어버릴까?’라고 몇 번이나 생각했어. 그럴 용기조차 없었으면서. 이런 내가 우습지?”
“아니, 전혀!" 그는 단호히 이야기한 뒤, 천천히 이야기를 계속했다. "너의 고백이 고마워. 모든 깨달음의 첫 번째는 자기 자신을 가리고 있던 것을 깨뜨려야만 하는 거지. 너는 스스로 숨기고 있던 것을 우리에게 내보임으로써 깨뜨리려고 하는 거야. 그리고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찾으러 나서는 것이지. 그것을 찾을 수 있느냐 없느냐는 중요하지 않아. 그 방황의 과정이 중요한 거지. 우리 삶이 그 중요한 것을 결국 움켜쥐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 의지로 노력을 하는 것이 진정 가치 있는 것이지. 나의 수많은 선배와 스승 중에는 자신에게 진정 중요한 것을 얻은 이도 있지만, 그전에 생이 다하여 죽음의 세계로 사라져 버린 이도 있어. 그러나 그들을 우리는 존경해. 멈춰 서지 않고 어떻게든 얻으려 한 것이니까. 그게 고통스러운 것을 알면서도 얻으려 끊임없이 노력한 것이니까. 오! 내 위대한 스승들이여, 이 가엾은 사람의 앞길에 위대한 시련이 함께 하기를! 그리고 이 자의 앞에 구렁이 있을 때, 그대는 내 등을 밟아 구렁을 넘게 해 주시옵소서.” 그는 갑자기 내 앞에서 무릎을 꿇더니 하늘에 손을 올리고서 절을 했다.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당황하여 나 역시 무릎을 꿇어 그를 붙잡았고 그는 그러한 나를 보며 다시 고결한 미소를 보였다.
“잊지 마! 지금을. 너의 노력과 지금의 이 여행은 결코 무가치한 게 아니야. 그걸 기억하고 또 기억해. 언젠가 모든 것을 잊어버린다고 하더라도. 모든 것을 다 잊어버려 이 순간을 기억하는 것이라곤 단어 하나 아니 여기에 존재하는 나의 눈동자 하나뿐이라고 하더라도, 네가 의미로 두게 된다면, 그 아주 작은 불씨가 이 세상을 다시 완성하게 할 거야. 그리고 그것이 이 세상의 너와 저세상의 너를 이어주는 다리가 될 테지. 우리는 그것을 기억의 다리, 혹은 망자의 다리라고들 하지.”
나는 그를 보았고 그의 큰 눈 속에서 나를 보았다. 그것이 지금의 커다란 의미가 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