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는 평범한 하루를 특별한 여행처럼 의미를 담아 쓴 연작 형식의 글입니다. 제목은 내용 중 일부에 관한 이야기니 참고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이야기에 나오는 모든 인물의 이름이나 세세한 사항은 실제 인물과 다릅니다.
시간의 빈틈을 잘 채우지 않으면 그 틈이 점점 더 커지게 된다.
친구 대용의 집에서 자고 일어났다. 일어나니 7시가 좀 넘은 시간이라 우선 메신저로 기상 인증을 했다. 평소처럼 공부하고 싶었으나 고향 집이나 친구 집은 그렇게 하기엔 적절치 않았다. 그런 시간마저 활용할 수는 없을까? 생각을 바꾸면 언제 어디서나 공부나 생산적인 일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사실, 정말 원한다면 어떻게 할지만 잘 설정해놓으면 된다. 마치 아르바이트까지 가는 길 위에서 영어 공부하는 나의 노력이 이젠 안 하면 이상하게 된 것처럼 말이다. 공간이 마땅히 주어지지 않더라도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거나 발등에 불이 떨어지면, 분명히 할 것이었다. 그런 생각으로 이 시간과 공간에서는 어차피 해야 할 것들을 하면 좋을 것 같았다.
지금보다 조금은 더 어린 시절에 집에 들어오면 무조건 하는 일이 있었다. 바로 박경리의 '토지'를 읽는 일이었다. 20권의 장편 소설이었기 때문에 긴 호흡이 필요한 책이었다. 이 책이 재밌기도 했지만, 그때는 가능한 한 빨리 완독하고 싶은 마음에 집에 들어가거나 틈이 나기라도 하면 책을 꺼내어 읽었다. 어찌 보면 마치 과자를 씹는듯한 책 읽기였는지도 모른다. 지금의 책 읽기 방식이 천천히 숨을 고르며 생각을 정리해가며 읽는 방식이라면 그것은 마치 박진감 넘치는 드라마를 보듯 해치우는 것이었으니까. 그러나 그때만큼 시간을 충실하게 보낸 적도 없던 것 같다. 공허할 틈이 없이 독서를 하던 때였다.
시간의 빈틈을 잘 채우지 않으면 그 틈이 점점 더 커지게 된다. 공허의 틈에 명상이라도 하거나 의식적으로 휴식을 취하는 것은 그저 시간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흘려보내는 것보다 좋다. 이는 고독을 의식적으로 받아들여 그 안에 홀로 존재하는 자신을 들여다보는 적극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 뿐만 아니라 사는 대로 생각하기보다 생각하면서 사는 행위이기도 하다. 무엇을 생각하느냐도 중요한 것이긴 하나 이러한 행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더 귀중한 것은 생각하는 습관이다.
공간을 바꾸는 것은 시간을 활용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모든 일은 그에 맞는 적절한 공간이 있다고 하더라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일에 딱 맞는 공간이 매번 주어지진 않는다. 바로 친구네 집이 그렇다. 이럴 때 나는 마음을 바꾸고 주어진 환경에 최선을 다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마치 성룡이 주변 환경을 활용하여 멋지게 악당을 해치우듯 우리도 우리 앞의 해야 할 일을 주어진 환경을 탓하지 말고 이를 활용하여 해치워야 한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우리 두뇌의 스위치를 켤 수 있을까?
그렇다면 무엇으로 우리 두뇌의 스위치를 켤 수 있을까? 이곳은 쉴 곳이 아니며 업무를 하는 공간이라는 생각으로 전환할 방법은 무엇일까? 시간표를 없애고 과업 위주로 작업을 설정해두면 어떠할까?
어린 시절처럼 심심하거나 시간이 남을 때 틈틈이 보거나 할 수 있는 것을 만들어 놓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문득 고등학교 시절 틈틈이 쉬는 시간마다 운동하던 게 생각난다. 시간 여유가 없을 때는 책상 두 개를 마주 대고 딥스 운동을 하곤 했었다.
그렇다.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이다. 알 수 있는 것은 무수히 많고 비록 제대로 된 장소나 도구가 없다고 할지라도 임기응변 할 수 있는 것은 무궁무진하다. 필요한 것은 일단 남는 시간에는 무엇을 할지 미리 정해놓는 것이다. 짧은 시간 가운데 허둥지둥하여 시간을 버리지 않는 전략이 중요하다. 그것은 지루하지 않고 재밌는 일이어야 한다. 그래야 계속 일을 진행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어도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좋다. 휴대폰은 항상 가지고 다니니 그것으로 할 수 있는 거라면 더 좋을 것이고 그게 아니라도 매일 가지고 다닐 수 있는 범위에 있는 것이라면 그것을 선택해도 좋을 것이다. 이런 생각으로 나온 몇 가지 대안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과거에 외운 영어 패턴 반복하기이다. 새로운 패턴을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것을 반복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 어렵지 않으며 재미있기까지 하다. 또한, 휴대폰만 있으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곳이고 가능하다.
둘째는 장편 소설 읽기이다. 어렵지 않으며 재미있게 읽어나갈 수 있는 책으로 선정하면 충분히 해나갈 수 있다. 이북 기기는 분신처럼 가지고 다니는 것이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가능하다.
셋째는 글쓰기이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미리 해두면 남는 다른 시간의 활용이 가능하다. 마찬가지로 휴대폰으로 할 수 있다.
넷째는 유튜브 영어 듣기이다. 10분 내외의 비교적 짧은 양이라 틈틈이 하기는 좋다. 시간을 두고 하려고 했더니 잘 안 되고 있어서 차라리 시간을 매기고 하지 않고 짬짬이 바로바로 해치우는 게 더 나을지 모르겠다.
그 밖에도 무엇이 있을까? 무엇을 할 때 아침을 게으르게 보내지 않고 잠을 자는 친구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으며,알차게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하다가 다시 잠들고 10시쯤 되어 다시 눈을 떴다. 의미 없이 시간을 보냈다는 생각에 한숨이 났다. 정말 어떤 스위치를 만들어야 때가 온 듯 했다.
강아지는 얼굴로도 부족해 온몸으로 심지어 꼬리까지 흔들어댄다.
10시에 눈을 뜨니 왼손 주변에 친구의 강아지가 손바닥 밑을 파고들었다. 강아지의 따뜻한 온기와 부드러운 털의 감촉이 기분을 좋게 했다. 계속 머리와 온몸을 쓰다듬으며 따스한 기분을 느끼고자 했다. 강아지도 기분이 좋은지 벌렁 드러누운다. 너무나 사랑스러운 나머지 두 팔로 껴안고 온몸을 비벼댔다. 이 작은 생명체는 내 두 팔 안에서 잠시 버둥거리다가 나의 몸짓에 움직임을 포기하고 가만히 있었다. 그는 내 손길에 완전히 항복한 듯 보였다. 그를 안을 때 살갗으로 느껴지는 포근함이 좋아 가만히 있으니 이때를 틈타 한 번 더 버둥거리며 나갈 궁리를 한다. 이번에는 허벅지를 이용해 퇴로를 차단한다. 그는 완전히 함락되었으나 포기를 모르는 사나이였다. 잠시 내가 켜져 있는 티비에 한눈을 파는 사이 성공적으로 내 품을 빠져나왔다. 치열한 전투였던지 그는 나오자마자 몸을 번개처럼 양쪽으로 털고 식수를 보급하러 머리 너머로 향했다. 잠시 물을 들이키더니 그는 내게로 다시 와서 전투를 신청했다. 한참을 그렇게 누워서 놀다가 결국 항복을 선언하고 샤워실로 도망쳤다. 그는 의기양양하게 승리의 꼬리를 쳐들고 좀처럼 끝나지 않은 전투를 위해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씻고 나서 나와 짐을 정리하고 인천으로 올라갈 준비를 했다. 친구는 올라간다니까 퉁명스럽게 알았다고 한다. 그 말투에서는 어떤 감정도 드러나지 않는다. 그와는 어떤 전투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강아지처럼 환희나 아쉬움의 감정이 얼굴과 온몸에 드러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찍 가서 아쉽다는 감정이나 혹 조금은 더 놀다 가라는 감정이나 혹은 그마저도 아니면 빨리 가는 것을 기뻐하는 감정이나…. 자신이 어쩔 수 없는 일이기에 하든 말든, 나와는 상관이 없다는 생각 때문이겠지만, 때로는 이 친구가 떠나는 것을 아쉬워해 줬으면 싶을 때가 있다. 무언가 여운이 남아, 올라가는 길 내내 떠오를 수 있는 아쉬움을 보인다면 어떨까?
남자끼리는 그런 서글픈 감정을 보이는 것이 쑥스럽다거나 아쉽지만, 그리고 이성이 감정을 앞서기에 아쉬운 마음을 숨긴다지만, 아주 가끔은 그런 마음을 알면서도 내가 매번 귀찮게 하는 것은 아닐까 미안함이 들 때도 있다. 물론 그 친구의 진심은 알고 있다. 그는 자신의 방식으로 아쉬워 하며 내가 다시 온대도 그는 반갑지만 퉁명스러운 방식으로 맞아줄 것이다. 적어도 나로서는 그렇게 믿고 있다.
지금보다 더 어린 시절에는 감정표현이 서툴던 때가 있었다. 어머니가 정성껏 차려준 음식에도 그저 퉁명스레 "맛있네." 또는 "먹을 만하네."라고 대답하고 동생이나 친구에게도 형으로서 진중한 모습을 보이려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번에도 이야기했던 "형이 싫었어."라는 동생의 말이나 어떤 드라마에서 "강아지도 저렇게 감정 표현을 하면 모든 걸 용서하고 사랑하고 싶어지는데, 사람이라고 오죽할까."라고 한, 배우의 대사가 강하게 인상에 남아, 그때 이후로 감정 표현이 조금 더 익숙해졌다.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면 타인은 알지 못한다. 강아지는 얼굴로도 부족해 온몸으로 심지어 꼬리까지 흔들어댄다. 그토록 사랑한다는 게 겉으로 드러나는데 누가 그를 미워할까? 미워하는 자들은 싫증 나면 버리는 인면수심의 개만도 못한 종자들뿐이다.
저 강아지가 그러고 보면 감정표현에서는 내 스승이다. 사랑은 저렇게 하는 거라고 온몸으로 말하고 있다. 귀여워서 사랑받는 건지 사랑받을 짓을 해서 사랑받는 건인지는 모르겠으나, 누군가에게라도 사랑받을 짓을 한다면 그중에 적어도 한 명은 날 귀엽게 봐주고 또 사랑해주지 않을까? 오늘 난 위대한 전투에서 승리하신 견(犬) 선생님께 한 가지를 배웠다.
예전 같았으면 앞뒤 안 가리고 구매했겠지만….
버스에 내리니 시계가 6시쯤을 가리키고 있었다. 후배에게 연락해서 저녁이라도 먹을까 물어보려다가 이내 마음을 돌렸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갔고 바람은 어제와 다르게 제법 강하게 불었다. 깜깜해지면 아직은 좀 추울 것 같았다. 집으로 발길을 돌리려다가 눈앞에 중고 서점이 있기에 무작정 들어갔다. 한참을 돌아보다가 칼 융의 「원형과 무의식」 책과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 책이 있기에 구매를 했다. 우리의 무의식 속에 있는 원형을 신화로 분석하는 분석심리학적 기법에 매료되어서 한때 그나 그의 학문과 관련된 책을 탐독했던 적이 있다. 또한, 그리스 로마 신화와 관련된 책도 꽤 많이 보게 되어 그것을 계기로 서양 문화의 원류와 관계된 수많은 책의 가지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보드리야르의 책은 수많은 철학사 책의 뒷부분에서 보거나 혹은 진중권이나 이진경 작가의 책이나 대담에서 읽어본 게 전부였다. 그래서 그의 이론이 담긴 이 책을 들춰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사놓고 바로 볼지는 모르겠으나 꽤 만족스러운 쇼핑이었다. 한 가지 아쉬운 건 자마찐의 「우리들」이 있었는데 사지 못한 것이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나 조지 오웰의 「1984」는 읽어보았는데 아직 이 책은 읽어보지 않아 관심이 있던 차였다. 그러나 그 책까지 사기에는 현재 주머니 사정이 전과 같지 않을 뿐더러 다른 책에 비해 뒷순위로 밀릴 것 같아 차라리 나중에 전자책으로 사자고 생각했다.
예전 같았으면 앞뒤 안 가리고 구매했겠지만, 지난번 이사 이후 그리고 원룸텔 관리 일을 그만둔 이후에는 될 수 있으면 집 안에 있는 책부터 읽어나가자고 생각하고 있다. 또한, 독서 모임을 따로 하지 않는 지금, 책 읽기에 대한 압박감이 그리 크지 않았기 때문에 책을 빠르게 보진 않는다. 그래서 누군가가 때때로 책을 몇 권 정도 보느냐는 말에 2-3권 정도라 말한다. 하루에 적어도 4~5시간 이상을 독서에 쓰면서(물론 요즘은 글 쓰는 시간이 길어져 너 줄어들었지만) 책을 한 달에 3권 정도 보는 건 대단히 느린 속도이다. 물론 그렇게 된 까닭은 몇 번이나 언급한 내 독서법 때문이었다.
책을 들고 터미널에서 집에까지 설렁설렁 걸어갔다. 휴대폰을 켜두고 영어 공부를 하며 걸어가는 길이 나쁘진 않았다. 해가 길어져 아직도 낮이 저물지 않았고 걸을 때 느낄 수 있는 한가로움이 아직 길 위에 남아 있었다. 중얼중얼하며 영어 패턴 암기를 거의 다 할 무렵 집에 다다랐다. 오늘은 저녁 아르바이트도 없어서 여유가 넘쳤다. 배고픈 건 아니었으나 무언가 아쉬워 치킨 반 마리를 시키고 남은 맥주와 함께 하루를 마감했다. 마음 한쪽에는 운동이나 다른 생산적인 것을 해보고 싶었으나 몸은 이미 귀차니즘으로 가득 차 먹는 것, 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는 나의 보금자리에서 다시 게을러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