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을 참는 시간|아침의 리추얼에 관하여|타바타 운동법

나의 일상 여행기. (69)

by Chris
그림: 가브리엘 르나르와 함께 있는 어린 르누아르(Gabrielle Renard and Jean Renoir), painted by Pierre-Auguste Renoir, 1895-96 |※ 이제는 한 아이의 어머니가 된 그녀를 추억하며 올림.


※ 아래는 평범한 하루를 특별한 여행처럼 의미를 담아 쓴 연작 형식의 글입니다. 제목은 내용 중 일부에 관한 이야기니 참고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이야기에 나오는 모든 인물의 이름이나 세세한 사항은 실제 인물과 다릅니다.




전날 저녁에 아르바이트하면서 반장님이 준 커피 믹스를 마셔서인지 새벽 5시가 넘어서도 잠이 오지 않았다. 휴대폰을 켜 상윤이한테 내일 아침 기상은 어려울 것 같다고 말해두고 잠시 상념에 젖었다. 이렇게 못 자는 게 어쩌면 전날의 환불 업체와의 분쟁 건으로 긴장감이 아직도 남아 있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을 가슴에 대어 보니 심장은 새벽의 조용한 수면 시간에도 귀에 들릴 것 같이 두근거렸다. 휴대폰을 들어 메신저를 들여다봤다. 과거에 인연이 있었던 사람 중에 자신의 아이 사진을 프로필로 걸어 둔 사람이 많았다. '내가 한 발짝만 더 다가갔더라면 저 친구의 프로필 사진이 어떻게 바뀌었을까?' 어쩌면 저 아이의 아버지가 내가 되었을지도 몰랐다. 그러면 아마 내 삶도 180도 달라졌겠지. 아이의 사진을 몇 장 넘기자, 아이와 그녀가 활짝 웃는 사진이 보였다. 내게도 보여주었던 저 갈매기 같은 웃음을 그녀의 아이에게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아이도 엄마의 웃음처럼 웃었다. 행복한 사진 속에는 내가 자리할 곳은 없었다. 차라리 그때 내 마음을 고백해볼걸. 갈매기 같은 그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웃을 때, 그 마음을 받아 너를 폭 안아줄걸. 제대로 하지 못했던 수많은 것들이 생각났다. 비단 연애뿐 아니었다. 삶의 중요한, 거의 모든 선택이 이와 같았다. 모든 것들이 가능성으로만 남고 그 가능성 뒤의 불확실성, 실패가 두려워 아무것도 도전하지 못하는 존재로서의 삶을 꽤 오랜 기간 살아온 것이다. '도전해봐!'라는 말에 '조만간' 이 붙고 '아직 실력이 부족해서…'라는 말을 하지만, 실은 두려움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다. 마치 지금과 같은 터질 것 같은 심장의 움직임과 스트레스가 두려워서 큰 걸음을 내딛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거절당하기를 두려워하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이지만,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큰 발걸음을 내딛는 것인데, 나는 큰 발걸음은커녕 작은 발걸음도 내딛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의 싸움을 통해 느낀 것은 가능성이 있는 것은 온 힘을 다해 싸워야 한다는 점이었고 배수의 진을 치는 게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곰곰이 생각하면 내가 그나마 큰 선택은 아니지만 작은 선택들, 나 자신의 능력을 계발하기 위해 숨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할 수 있었던 일상의 선택들은 하나같이 도망칠 수 없도록 배수의 진을 치고 온 힘을 다했던 것들이었다. 큰일에도 도망칠 구석이 없게 할 전략이 필요하다.

지금이라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인생이 바뀔까? 모두가 이렇게 저렇게 떠나버리고 고독한 삶이 가득한 지금은 나를 위로해 주는 것이 예전처럼 사람은 아니다. 아니 어느 때고 사람인 적은 없었다. 파도처럼 솟아오르는 고독은 시간이 흐르면 잠잠해질 뿐이었고 그때마다 나는 그 고독감을 누구에게도 드러내 본 적이 없었다. 혹 그렇게 고독이 가득할 때 내 옆에 누군가가 있었다면 그녀로 말미암아 조금 더 빠른 안정감을 되찾았을지도 모르겠다. 마치 갓난아이가 울 때, 그의 엄마가 와서 젖을 물리면 이내 울음을 멈추듯 고독의 신호도 빨리 잠잠해졌겠지. 홀로 고독이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필시 울다 지쳐 스스로 그치는 아기와 같을 것이다. 언젠가는 어떠한 이유로 그렇게 울다가 누구도 받아주는 이가 없는 것을 알면 스스로 그치는 날이 있겠지. 갓난아기의 울음이 문득 처량한 고독감의 신호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차라리 나도 아이같이 울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그렇다면 누군가라도 그 신호를 듣고 와서 안쓰러운 눈으로 나를 들여다봐 줄 텐데…. 그 갈매기 같은 눈으로, 울지 말라고 안아주고 감미로운 노래를 흥얼거려줄 텐데. 왜 이제 왔느냐고 울음으로밖에 표현 못 하는 나를 보며 그저 미안하다며 같이 울어줄 텐데. 그러나 침대 옆 거울에 비치는 내 모습은 갓난아이가 아니라 시꺼멓고 수염이 나며 지저분해 보이는 아저씨일 뿐이며, 나는 그렇게 울 수 없었다.




잠에서 깨어나니 9시 30분쯤이었다. 일어나 가볍게 씻고 마지막 영어 모임을 위해 학교로 향했다. '오늘 누가 오긴 할까?' 이런 생각이 들자, 다시 침대에 눕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졌다. 누가 오든 오지 않든 유종의 미를 거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즈음 하늘은 정말 좋았다. 눈을 감아도 청명한 빛이 안구에 맺히는 듯했고 선선한 바람의 소리는 귀를 맑게 했다. 햇살이 나뭇가지와 잎새에 산란 거리면서 내게 닿았다. 잠깐 눈을 감았다가 떴다 하며 길을 걸었다. 바람의 소리와 더불어 햇살에도 소리가 느껴지는 듯했다. 지구를 통과하여 내게 닿는 햇빛은 그 끝에 나뭇가지의 흔들거림의 소리를 함께 데려와 내 눈에 닿게 했다. 거기에는 나뭇가지의 소리뿐 아니라 햇빛의 소리도 있었다. 그 소리가 눈에 맺힌 것 같았다. 눈을 좀 더 잠시 감고 다른 감각의 문을 열어보려고 했다. 코로 들이쉬고 귀로 듣고 입을 벌려 혀끝으로 닿는 공기의 맛을 느껴보기도 하고 촉감으로 바람이 팔에 난 솜털들을 움직이는 것과 얼굴을 지나치는 것을 느꼈다. 잠시 눈을 뜨면 사라지는 것들이 잠시 눈을 감으면 다시 살아났다.

영어 모임은 예상대로 아무도 오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아무도 오지 않는다면 글을 쓸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중한 일을 먼저 하라.'라는 스티븐 코비의 말이 떠올랐다. 내가 지금 하는 것이 딱 그거였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제대로 못 하게 될 것이었기 때문이다. 중요한 일을 먼저 끝내고 나서 마음이 편안한 상태에서 다른 일을 하는 것과 다른 일을 먼저 하고 나서 남는 시간에 소중한 일을 하는 것은 불안감의 정도가 달랐다. 소중한 것을 아침부터 하게 됨에 따라 그다음의 시간을 더욱 효율적으로 보내거나 다른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메이슨 커리에 따르면 매일 반복적이며 의식과 같이하는 행위를 '리추얼'이라고 하는데, 많은 예술가나 작가들은 이러한 리추얼을 통해 감정의 폭정을 이겨낼 수 있었다고 한다. 이는 마치 칸트가 정각 3시만 되면 매일 의무적으로 산책했던 것이나 어떤 작가가 특정 시간부터 혼자 독방에 들어가 아무에게도 간섭받고 글을 쓰는 것까지 포함한다. 나도 과거 매일 5시에 일어나는 기상 모임을 운영하면서 하루를 시작하는 나만의 리추얼을 만든 적이 있었는데, 바로 아침에 일어나서 커피를 내리고, 모임의 참여자들에게 모닝콜을 보내는 일이었다. 그 행위를 하는 동안 정신이 깨고 다른 사람들이 하나 둘 일어나 메신저로 기상 인증을 하면서 뭔가 동기 부여가 되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의 리추얼이라고 하면 매일 아침 7시까지 등교하고 비슷한 장소에서 시간이 기록된 인증 샷을 찍어 남기는 것과 자리에 앉아 블랙커피 한잔에 글을 써 가는 것이다. 이 행위를 주말을 제외한 평일에 의식적으로 완성하기까지 처음부터 이렇게 할 의사는 없었지만, 소중한 것을 먼저 하려고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침이 글을 쓰는 데 굉장히 좋은 시간이 된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는 매일 나이 리추얼적 시간으로 이렇게 함으로써 오후 시간에 책을 읽거나 운동을 하거나 또는 사람을 만나는 등의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영어 모임을 없앤다는 것은 아침 시간을 이러한 완벽한 나의 리추얼적 삶을 완성하기 위함이며,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이게 수많은 예술가의 리추얼적 삶으로부터 나온 창조물만큼이나 가치 있는 것이 될지는 모른다. 나는 그저 이 작은 휴대폰과 노트북으로 쓸 뿐이며 이 ‘글’들의 역할은 글 자신의 의지로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렇게 만들어진 나의 글들이 고독 속에서 울어 본 이들에게 위안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생각해보면 아침은 언제나 나에게 소중한 시간이었다. 예전에도 한 번 언급한 기억이 있는데, 여러 아침 모임을 통해 얻었던 것들이 많았으며 모임의 운영하는 것만으로도 나를 삶의 한구석으로 도망치지 않게 하는 배수의 진이 되었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을 대략 나열해보자면, 아침 5시 기상 모임, 아침 7시 운동모임, 아침 8시 독서 강독 및 토론 모임, 아침 8시 서양 미술사 모임, 아침 9~10시 영어 모임 등등…. 시기에 따라 서로 다른 모임들을 운영하기는 했으나 학교를 졸업하고 스스로 만들었던 이 모든 모임에서 얻은 바가 크다. 모은 모임의 운영자로서 매번 적극적이며 의식적으로 참여했고 참여자의 숫자와 상관없이 최선을 다했다. 그 까닭은 타인의 참여율이 내 성장에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모임 자체가 나에게 의식적이며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이따금 내게 영향을 받아 다른 모임을 운영하던 다른 친구들이 참석자들이 자신의 뜻에 따라주지 않거나 참여율이 저조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보는 때가 있다. 그럴 때, 현실적으로 어떻게 하라고 전략을 조언해주기도 하지만, 모임 자체에서 참여율을 보고 좌절하기보다 모임 자체를 스스로 학습하는 기회로 삼으라고 이야기한다. 매일 진행하는 모임의 경우 모임의 출석률이 높을 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할 때도 있다. 모두에게 자신과 같은 자세를 바랄 수는 없으며 그렇게 하려면 벌금이라든지 다른 강제적인 전략이 필요하기는 하나, 그것을 한다고 해서 잘 된다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벌금이 약하면 벌금을 내고 '안 나와도 되겠지!' 하는 경우가 생기거나 과도하면 그냥 포기해버리는 일도 있다. 여하튼 출석률에 의존하기보다 이 모임 자체로 말미암아 내가 이곳에 '매일 나와서 무언가를 한다.'라는 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즉 이 모임과 다른 참여자들은 어차피 해야 할 자신의 학습을 돕는 일종의 ‘넛지’이다. 모임은 자신의 리추얼적 학습을 위한 일종의 '배수의 진'이며 동기 부여를 위한 도구이다. 물론 힘이 빠질 때도 있다. 나는 이만큼 노력하는데, 다른 이들이 알아주지 않는 것 같으면, 스트레스받을 필요 없이 혼자 해도 이렇게 할 수 있을 것처럼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혼자 한다는 것은 감정이 폭발하거나 다른 유혹이 있을 때, 쉽게 자신의 의지를 내려놓는 요인이 된다. 모임 참여를 하지 않은 사람을 생각하기보다 내 옆에 같은 뜻이 있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모임 속에 존재할 때, 그 사람을 바라보는 것이 좋다. 그런 사람이 아무도 없이 홀로 모임 속에 머물러 있다면 모임을 계속해야 할지 말지를 생각해봐야 하겠지만, 그러한 상황에도 모임을 유지하기를 바란다면 이 모임 자체나 이 한 사람이 내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모임을 진행해 나가야 한다. 그렇게 단련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바뀌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려면 낙천적인 마음이 중요하며 '다른 사람은 다 내 마음 같지 않다.'와 '이 모임과 참여자들을 통해 얻는 것이 하지 않는 것보다 더 의미가 크다.'라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나는 이러한 아침 모임이 없었더라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고독 속에서 파묻혀 아마 고립된 존재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글을 쓰는 와중에 동생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환불 업체로부터 돈이 입금된 것 같다는 말이었다. 환불금을 받기까지 꽤 오랜 시간 해온 일들이 시간의 순서대로 떠올랐다. 내가 그때 아버지께 가격 파괴 분식점 이모가 사장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는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았더라면 아버지가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을 알 수 있었을까? 배수의 진을 치고 온갖 노력을 해 싸우지 않았더라면 가능했을까? 다음에 있을 일들을 미리 대비하지 않았더라면 2달이 아니라 더 걸리지 않았을까? 여러 상념이 떠올랐고 연이어 통화하면서 들었던 모욕적인 환불 업체 사장의 말들이 떠올라 다시 심장이 두근거렸다. '아직 다 끝난 것이 아니다. 아마 물건을 배송하고서 싸움을 걸 수도 있다.' 이 점에 대해 미리 대비해야 했다. 아버지께 전화해서 연락받으면 물건을 바로 보낼 수 있게 물건 배송을 위한 사전 준비를 하고 사진을 찍어두라고 했다.

12시 30분쯤 되어 가볍게 운동을 하러 헬스장으로 향했다. 격일에 한번, 워밍업 약 5분, 운동 16분, 정리 운동 10분 정도로 끝내는 것이지만 지금은 이것으로 충분했다. 이따금 '운동을 더 할까?' 생각을 하기도 하나, 타바타 트레이닝으로는 이 정도만으로 충분했다. 예전처럼 조각 같은 몸, 보디빌더와 같은 몸은 필요 없었고 운동 외에도 시간을 들여 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아직 다 완성하지 못한 하루의 글을 완성하는 데에 많은 시간이 들었기 때문에, 얼른 운동을 쉼 없이 진행하고 샤워 후 월천 라운지로 향하기를 바랐다.

헬스장에 들어서니 서너 명이 운동을 하고 있었다. 12시 30분에서 1시 30분 사이는 사람이 적어 운동하기에 딱 좋은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집에서 가져온 보조 도구를 다른 사람의 눈치 없이 설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오자마자 운동화를 갈아신고 스트레칭과 준비 운동을 한다. 몸이 더워지면 철봉에 레그레이즈를 위한 AB 스트랩을 끼우고 동시에 풀업을 위한 밴드를 설치한다. 바로 앞에는 팔굽혀 펴기를 위한 푸쉬업 바를 둔다. 설치가 다 끝나면 인터벌 트레이닝을 위한 앱을 켜두고 운동 시간을 20초 쉬는 시간을 10초로 해서 32세트를 맞춘다. 32세트는 한 종목을 8세트씩 돌아가면서 하기 때문이다. 휴대폰 앱에서 신호가 울리면 바로 풀업을 한다. 개수에 상관없이 20초 동안 최대한 빠르게 비교적 바른 자세로 하는 것이 관건이다. 휴식 신호가 울리면 10초 동안 쉬면서 푸쉬업 자세를 한다. 그리고 20초 바른 자세로 최대한 빠르게 운동을 한다. 그다음에는 AB 스트랩을 이용하여 20초 동안 무릎을 살짝 접은 레그레이즈를 하고 똑같은 방식으로 쉬었다가 맨몸 스쿼트를 실시한다. 이게 한 세트이며 이 방식으로 총 8세트를 반복한다. 32세트 시간은 첫 풀업 전 준비 시간 10초까지 포함하면 총 16분 10초이다. 이 운동을 하고 나면 전신이 녹초가 되지만, 끝냈을 때 성취감 또한 대단히 크다. 더욱더 좋은 것은 끝날 시간이 정해져 있으며 시간 효율이 대단히 높다는 점이다.

이즈미 타바타라는 박사가 올림픽 운동선수를 위해 개발했다는 이 인터벌 트레이닝 프로그램은 20분 안의 짧은 시간에 폭발적으로 운동함으로써 매일 2시간 이상의 운동과 같은 효과가 있다고 해서 유명해졌다. 다른 인터벌 트레이닝 프로그램이 그렇듯 근력 운동과 더불어 유산소 운동의 효과가 있다는 점도 좋아서, 운동선수뿐 아니라 시간이 부족한 현대인들이 짧은 시간 동안 운동할 때에도 좋은 프로그램이다. 예전에는 모임을 통해 매일 사람들을 코칭하기 위해서 수많은 운동 프로그램들을 만들어 매일 약 1시간 30분에서 두 시간가량 운동을 했지만, 최근에는 그저 이틀에 한 번 이 운동만을 할 뿐이다. 그럼에도, 체력적으로나 신체적으로는 예전과 큰 차이가 없다고 느낀다. 물론 체력 향상의 요인에는 매일 저녁 아르바이트를 오며 가며 2시간가량 걷는 것이 도움되었을 수도 있다. 여하튼 타바타 운동은 맨몸 운동이기 때문에 부상의 위험이 적고 시간 대비 운동 효과의 측면에서 대단히 좋은 운동임은 틀림없다.




집을 돌아와서 씻고 나니 2시가 지나 있었다. 가격 파괴 분식점에 들려 설거지를 좀 도와주고 밥을 먹었다. 먹으면서 환불 업체 사장으로부터 돈을 환불받았다고 말했다. 이모는 내 일처럼 기뻐하면서 그동안 고생했다며 엄마처럼 나를 위로했다. 회덮밥을 먹으며 이모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가게 사장의 가족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일곱 남매인데 그중에 한 명의 기구한 삶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녀는 남편과 함께 강남의 번화가에서 분식점을 운영하며 나름 잘사는 집이었다. 그러던 와중 그녀가 폐암에 걸리고 병원에서는 6개월밖에 못 산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때마침 신약에 대한 임상시험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고 다행히도 폐암을 극복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와중에 그녀의 남편은 사업을 시작하였으나 거하게 말아먹고 의정부로 도망쳐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리는 짓거리를 했다. 몸이 좋아진 그녀는 몇 년 전부터 이 근처 일곱 남매의 막내가 운영하는 가게에서 일을 도와주며 함께 살았다. 그렇게 일을 도와주며 근근이 살아갈 무렵, 그녀는 며칠 전부터 몸이 이상해짐을 느끼기 시작했다. 폐암을 고치고 약 5년이 된 무렵이었다. 알고 보니 신약이 암 전체를 이기지는 못했던 것이었다. 가세가 기울고서, 그녀는 힘들게 살면서 돈이 아쉬워 그동안 병원도 제대로 가지 못했다. 그러는 와중에 폐암은 다시 그녀의 온몸을 지배했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병원 중환자실에 누워 사경을 헤매게 되었다.

이러한 이야기를 하며 이모는 형제·자매 일곱이 있으면 뭐 하느냐고 개탄을 했다. 그녀가 그 지경이 되도록 병원을 가지 않은 까닭이 돈 때문이 아니겠느냐며, 형제·자매가 잘 사는 편이니 하다못해 각자 한 달에 10만 원, 20만 원씩 보태줘도 됐을 거 아니냐며, 서로 우애가 없다며 혀를 끌끌 찼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남 일 같지 않은 기분과 여러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폐암으로 돌아가신 외할머니 생각도 나고 우애가 깊지 않은 우리 친척들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엄마, 아빠 생각이 났다. 그토록 고생하는 엄마, 아빠도 제대로 병원에 한번 가보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혹시 외할머니나 저 아주머니처럼 갑자기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운 생각이 머릿속에 남았기 때문이다. 문득, 남들처럼 효도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병원에 틈틈이 한번 보내지 못하는 나 자신과 지금 상황에 대한 원망이 들었다. 후회할 짓을 하지 말자면서, 나는 어쩌면 내 삶을 후회하지 않게 살려고 나와 관계된 소중한 사람, 그것도 나를 위해 그토록 희생한 사람을 돌보는 의무를 저버린 것은 아닐까 싶었다. 내일이라도 그런 날벼락 같은 소식이 들릴지 모르는 상황일진데, 나는 지금 이렇게 '의미 있는 내 삶'이라며 희희낙락대는 것은 아닌가 싶은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혹시나 난 그들을 떠나보내고서 후회할 일을 하는 것은 아닐까? 요즘 들어 부쩍 손이 아프다는 엄마의 목소리가 귀가에 아른거렸다. 어머니, 아버지를 생각하면 그리운 마음, 고마운 마음보다도 이제는 두려운 마음이 든다.

죽음에 대하여 이모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녀는 자신은 죽을 준비를 다 해두었다며 웃으며 내게 이야기했다. 자녀들에게 너희 고통 안 주려고 미리 다 준비 다 해놨다고, 자기가 많은 돈을 남겨 줄 수는 없지만 나 죽으면 너희에게 조금이라도 줄 돈은 있다고 웃으면서 말할 때, 나는 가슴이 한쪽이 바늘로 찔리는 기분이 들어 그저 웃으면서 이런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에이, 그런 말 말아요. 오래오래 살아야 좋은 것도 보고하지. 애들이 이런 말 들으면 좋다고 하겠다." 서로 얼굴은 웃지만, 뭔가 슬픔이 묻어 나오는 웃음이었다. '우리 엄마도 이렇게 말할까….' 식당 문을 나서니 햇살은 아직도 밝았고 하늘은 그토록 맑았다.



월천 라운지로 가서 마저 글을 쓰고 나니 6시였다. 메시지가 와서 보니 한 친구가 오늘 아르바이트 참여자가 4명이 아니고 5명이냐고 물었다. 뭔가 이상해서 보니 그렇기에 반장님께 전화해서 빠지기로 했다. 그리고 내일 만날 친동생이 빨리 보고 싶어 오늘 가도 되느냐고 연락했다. 길을 나서니 아직 하늘은 파랗다. 동생을 만나기에 참 좋은 날이었다. 나는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천안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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