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쓴 Jun 10. 2019

러쉬를 좋아하게 된 이유

러쉬에 관심 없는 사람이라도 한 번쯤 러쉬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상당히 이색적인 방식으로 마케팅을 하고 있어서 뭐하는 가게인지는 잘 몰라도 강력한 향이 뿜어져 나오는 가게라는 인식은 있을 것이다.

나의 기억 역시 그랬다. 러쉬에 관한 첫 기억은 홍대 큰 길거리에 뜬금없이 욕조가 놓여있고 알록달록한 물이 그 욕조 가득 담겨 있었던 다소 묘한 이미지였다. 게다가 뭐라 형형할 수 없는 강렬한 향이 욕조와 상점에서 뿜어져 나왔다. 향에 약하기도 하거니와 워낙 강렬하고 복합적인 향을 내뿜고 있어서 지나갈 때마다 인상을 지푸렸다. 그 이후로도 만난 러쉬는 늘 같은 광경이었다. 크기는 달랐지만 물이 담긴 수조가 가게에 있었고 오묘한 색상의 물이 그 안을 채우고 있는... (나중에 그게 배쓰밤이라는 걸 알았다.)


그러다 머리카락 숱도 많은데 언제부터 인지는 모르겠지만 여름이면 과한 유분으로 반나절이면 떡진 머리 상태가 되거나 찬바람이 불면 생겨나는 비듬 때문에 고민이 극에 달할 때 러쉬가 좋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마침 여행 갈 일이 있었고 작은 샴푸바 하나가 250g 병 3개 양이라고 하니 여행 내내 가볍게 들고 다니기 좋겠다 싶어서 구매하게 되었다. 액상은 비싸지만 샴푸바는 그에 비해 저렴하고 게다가 면세점에서 판매하고 있어서 싸게 살 수 있었다. 세숫비누로 머리를 감아본 사람은 알겠지만 거품도 잘나지 않고 감고 나면 개운하게 아니라 뭔가 덜 헹궈진 거 같고 마르고 나면 뻣뻣해져서 감당이 안된다. 샴푸바라고 해서 그다지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러쉬의 샴푸바는 살짝 물을 묻혀 머리에 문질러도 거품이 잘난 데다가 세정력 역시 좋았다. 감고 난 후 남는 향도 퍽 좋은데 오래 유지되어 무척 만족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고민이었던 유분과 비듬이 해결되었다. 이 좋은걸 이제야 알게 되다니.


Photo by Rebecca Aldama on Unsplash

처음에는 러쉬 상품에만 관심이 있으나 러쉬 기업 자체의 방향이 마음에 들었다. 동물 실험을 하지 않고, 생산자의 이름을 기입하고, 유통기간을 명시하며 사용한 플라스틱을 수거해서 재활용하는 등등 기업윤리가 마음에 들어서 구입 품목을 하나둘씩 늘려가고 있다.


이렇게 불호에서 애호로 넘어가는 흔한 경우는 음식에서 찾을 수 있다. '입맛이 변했다.'라고 말하는데 평양 물냉면이 그랬고 산도 있는 원두의 취향이 그랬다. 그리고 최근 쑥갓이 그랬다. 얼마 전에 경주에 놀러 갔다가 유명하다는 쫄면 집에 갔다. 비빔 쫄면 위로 가득 오이와 신선한 쑥갓이 올려져 나왔다. 평소 쑥갓을 좋아하지 않아 좋아할 수 있을까? 생각했지만 걱정은 기우였다. 비빔장과 잘 어울려 아삭하면서 향긋한 쑥갓이 흔한 쫄면을 색다르게 만들었고 한 그릇 뚝딱해치우게했다


요즘 바꾸려고 하는 말 중에 하나가 '좋아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듣게 되면 '지금은 시간이 지나서 좋아하게 될 수도 있다.'라고 말해 보는 것이다. 취향은 존중받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취향을 고수한다면 또 다른 나의 취향을 발견할 기회를 잃어버리게 된다는 게 요즘 생각이다. 러쉬를 싫어하는 사람에서 좋아하는 사람으로, 쑥갓을 싫어하는 사람에서 좋아하는 사람으로 변했듯 취향이란 건 어느 시점으로 변할 수 있는 것이니까.

이전 10화 흑맥주 예찬자의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