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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쓴 Jun 24. 2020

[런데이 첫 번째] 살짝 맛 본 달리기의 즐거움


지금도 나는 마라톤을 할 때마다 대체로 여기에 쓴 것과 같은 심적 프로세스를 되풀이하고 있다. 30킬로까지는 '이번에 좋은 기록이 나올지도'라고 생각하지만, 35킬로를 지나면 몸의 연료가 다 떨어져 여러 가지 일에 대해서 화가 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텅 빈 가솔린 탱크를 안고 계속 달리는 자동차 같은 기분'이 된다. 하지만 완주하고 나서 조금 지나면, 고통스러웠던 일이나 한심한 생각을 했던 일 따위는 깨끗이 잊어버리고, '다음에는 좀 더 잘 달려야지'하고 결의를 굳게 다진다. 아무리 경험이 쌓이고 나이가 들어도, 결국 똑같은 일의 반복인 것이다.

-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아침 7시쯤 일어나 간단히 세수를 하고 헬스장에서 신을 목적으로 샀던 러닝화를 꺼내 신었다. 얼마 전에 설치한 런데이 앱을 켰고 상단 첫 번째에 Beginner 코스를 다운로드하으며 집 밖으로 나섰다. 이어폰과 마스크도 함께 챙겼다.


첫 번째 달리기를 시작하면 런데이 코치가 활기찬 목소리로 말을 건다. 이 코스는 달린 적이 없는 사람도 달릴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으며 8주 동안 연습을 통해 30분 동안 쉬지 않고 달리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 이야기한다. 


흠... 나도 8주 뒤에 30분을 뛸 수 있게 될까?


'달리기를 하자.'라고 마음먹은 뒤 어디를 달리면 좋을까 생각했다. 막연하게 신호가 걸리지 않은 길게 뻗은 길이면 좋겠다. 생각했고 집 근처 자전거 도로가 떠올라 그곳으로 향했다. 이따금 자전거가 오고 가긴 하지만 넓고 곧은길이라 피하면 되지라는 생각을 했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거리는 한산했다. 


장소에 도착해 런데이 코치의 말에 따라 5분 동안 천천히 걸었다. 코치가 하는 말을 들으며 걷다 보니 시간이 빨리 지나갔다. 그리고 '천천히 달립니다.'라는 코치에 말에 따라 오랜만에 1분간 달렸다. 

달리기를 할 때 얼마큼 빨리 뛰어야 하는가? 의문이었는데 이런 나의 마음을 알고 있다는 듯 '옆사람과 대화할 수 있는 수준의 속도로 달리세요.'라고 말한다. 그래서 아주 느긋한 마음으로 천천히 달렸다. 다른 사람이 본다면 뛰는 건가? 걷는 건가? 혼란스러워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폼도 분명 엉망일 테지. 하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 내 목표가 마라톤을 나가려는 것도 아니고 누구에게 멋지게 보이고 싶은 것도 아니다. 그저 건강해지고 싶어서 달리는 것뿐이니까.

1분 동안 처음 달렸을 때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리고 다시 걷기 2분을 하면서 별거 아니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 번째 1분 달리기를 할 때는 장딴지 근육이 뻣뻣해지는 감각을 느낀다. 스트레칭을 했을 때 당겨지는 감각보다 더 묵직하다. 낯선 감각이다. 이런 생각에 빠져 있을 때 '코스에 중반이 지났습니다.'는 코치의 목소리가 들린다. 숨이 차오르고 '그만 하고 싶은데…'라는 생각이 들 때 '마지막 달리기가 남았습니다.'라고 독려한다. 마치 내 마음을 읽은 것 같다. 이제와 포기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나는 또 1분을 달렸다. 그렇게 1분 달리기 2분 걷기를 5번 반복하니 땀이 많이 났다. 

'땀'이라는 단어는 습하고 찝찝한 그림이 연상되어 불쾌한 기분이 먼저 들었는데 이 날 운동 후 흘린 땀은 상쾌한 기분을 줬다.


달리기 첫날. 달린 후 기분이 좋아서 사람들은 러너가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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