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쓴 Nov 05. 2020

나와 마주하러 마라톤에 나갑니다

8주간의 달리기의 목표를 이루고 나서 자유롭게 달리는 날들이 한 달 동안 지속됐다. 자유로운 리듬으로 달린다는 건 해방감을 주었지만 목표가 없어지니 성취감이 사라지고 권태감과 함께 재미가 반감되었다.


그러다 2020 버추얼 815 런 마라톤이 열린다는 소식을 접했다. 3.1km, 4.5km, 8.15km 중에 달리는 것이었고 참가비는 국가 유공자 자손들에게 사용될 것이라는 좋은 취지의 마라톤 대회였다. 30분을 달리면 4km는 도전해 볼 만하다고 느꼈고 신청을 했다. 그 마라톤에 가수 션도 참석해서 그분의 인스타를 팔로우하면서 달리는 날을 기다렸다. 달리기 며칠 전 기념품들이 도착했고 아직 달리지 않았는데 완주 매달도 배달됐다. (이 부분은 김지만)


당일날 아침 비가 좀 내렸다. 긴 장마가 이어졌던 날이었다.

기념품으로 받은 옷도 입고 매달도 목에 걸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원래 입고 달리는 옷으로 환복하고 혼자만의 마라톤을 시작했다. 시작할 때는 맞을만한 비였는데 3km가 넘었을 때 비가 많이 왔다. 갈등을 하다가 3.1km를 넘긴 3.9Km 달린 후 마라톤을 마쳤다. 목표한 거리는 4.5km였는데 다 못 달려서 아쉬웠다. 하지만 안전을 위해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얼마 전 tvN에서 방영한 Run 프로그램을 다시 보기 해서 봤다. 지성, 강기연, 황의, 이태선 4명의 배우가 이탈리아 피렌체 마라톤 대회에 도전하는 이야기였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황의라는 배우가 21km 달리고 나서 고통 때문에 주저앉아 있었을 때 한쪽 다리를 잃은 사람이 목발을 딛고 달리는 장면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주저앉아 있던 황의 배우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완주한다. 두 다리 멀쩡한 자신이 다리가 아프다고 포기하고 있는 게 너무나 한심해 보였을 것이다. 남은 거리를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 달리는 모습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이 장면을 먼저 봤다면 비가 왔더라도 남은 거리를 다 달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짧은 마라톤 참석과 Run 프로그램을 보며 '왜 사람들은 풀코스 마라톤에 도전하는 걸까.' 궁금증이 생겼고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짧게 라도  달려본 사람을 알 것이다. 달리는 동안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이 자주 다가온다는 사실을 말이다. 달리는 시간이 길어지면 그 순간도 길어진다. 고통이 더 해질수록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빈번해진다. 다리도 아프고 목도 마르다.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니 포기해도 그만이다 싶다. 포기하라는 나와 계속해야 한다는 내가 싸운다.

처음 도전한 마라톤 도중 비가 많이 왔고 길이 미끄러워서 안전하지 않다는 좋은 핑곗거리도 있었다. 다가오는 허들 허들 하나를 못 넘고 목표한 만큼 완주하지 않고 그만뒀다.


많은 유혹을 뿌리치고 약속한 거리를 달린다는 건 인내심의 한계를 한 단계 뛰어넘는 경험이 된다. 살면서 자신이 걸림돌이 간이 많지 않은가. 해야겠다고 달라져야겠다고 각오하지만 작심삼일도 아니고 몇 시간 만에 다른 마음을 먹는다. 그런데 그런 고비를 넘기고 완주를 했다 경험은 앞으로 포기하려는 자신에게 한방 먹일 수 있는 분명한 근거를 손에 쥐게 되는 것이다. 포기하지 않고 해내지 않았느냐고.


완주를 마친 지성에게 소감을 물었을 때 고요한 느낌이라고 했다. 그리고 앞으로 잘 살아갈 수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나와 분투하고, 한발 나아가고,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갖는 것. 그래서 사람들은 마라톤에 나가는 게 아닐까. 첫 번째 마라톤의 아쉬움을 복기하며 이번 주에 있을 마라톤에는 최선을 다해 나와 마주해 볼 생각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운동화에 관한 두 가지 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