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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잇독 Sep 06. 2018

한국말에 영어 섞어 쓰면 좀 있어 보일까

내가 쿡을 하고 왔쟈나

미국에 처음 여행을 갔을 때, 20년 가까이 미국에서 살고 계신 한인 분을 만난 적이 있다. 그분은 한국말보다 영어가 편한 네이티브 스피커인 아들 둘을 키우시는 분이었다. 우리에게 라이드를 해주시며 하셨던 말씀이 생각난다.


“내가 지금 쿡을 하고 왔쟈나”


미국 경험이 처음이었던 나는, 낯선 곳에서 다른 문화 속에 사시는 분의 언어 표현을 접하고 새롭고 신기한 느낌이 들었고 그래서 아직까지도 그 문장을 기억하고 있다. 20년간 미국에서 아이들을 키우시는데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이라 생각했다.

미국에서 몇 년 살아보니, 한국 내에서 얼마나 많은 외래어 또는 외국어가 한글 말에 혼용되는지가 두드러지게 보인다.


한국말로 하는 스피킹 중에 영어 단어를 중간중간 믹스해서 쓰는 것은 언더스탠더블하다고 치자. 오피셜하게 라이팅을 하는 경우에도, 심지어 북을 퍼블리시하는 데에도 워딩을 영어 단어로 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본다.


프로 불편러처럼 그런 것들을 보는 것이 괜히 민망해진다. 2-30년 외국에서 살았거나, 네이티브 잉글리시 스피커가 아닌 이상, 조금만 노력하거나 신경 쓰면 영어단어를 한글로 트랜슬래잇하는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 영어 단어를 대체할 한글 단어가 없는 것도 아니다. 이런 단어를 우리는 ‘외래어’라고 부르며 사용하는데 이건 억셉터블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어’인 영어 단어를 발음 그대로 한글 표기로 바꾼 후 버젓이, 과하게 사용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북한과 달리, 우리나라의 히스토리를 고려할 때 현대사회의 컬쳐 자체가 U.S. 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팩트이다. U.S. 가 명실상부 세계 최고의 나라 (최소한 이코노미 측면에서)이기에 다른 나라들도 영향을 많이 받기는 한다. 요즘 같은 캐피탈리즘 에라에 아메리카는 그레잇한 나라이지 않는가. 글로벌한 시대에 그런 컨텍스트 안에서 한국말에 영어가 섞여 들어가는 게 어쩌면 내추럴한 현상일 수도 있다. 그리고 기본적인 에듀케이션 수준이 높은 우리나라에서 영어단어를 쓰는 것이 커뮤니케이션에 딱히 어려움을 야기하지도 않는다.


요즘은 워낙 외국 경험도 많고 영어 잘 하는 코리안이 많아서 영어 단어를 쓰는 게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닐 법도 하지만, 바이링구얼인 경우 대부분은 한국어도 잘 하고 한글을 잊어버릴 정도의 레벨인 경우는 별로 없다.


최근에 TMI라는 단어를 접했다. Too Much Information이라는 뜻의 영어 약자인데, 한국에서 요즘 유행하는 듯했다. 정작 나는 미국 살면서 몇 년 동안 들어보지 못했고 (몰라서 인식을 못했을 수도 있다) 오히려 한국 예능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리얼 라이프 중에서 미국인 직장동료가 이메일에 TMI라는 단어를 쓰는 것을 보게 되었다. 한국 예능 프로에서 먼저 배운 영어 약자라니 아이러니했다. 어떤 방식으로든 몰랐던 것을 배운 것은 좋은 것이지만 못내 찜찜함이 남는다. 또 다른 비슷한 경우는 a.k.a 도 있다.


이러한 사용법이 누군가의 니즈에 의해서 혹은 니즈를 위해서 시작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의도적이었든 아니든 불필요한 경우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요즘 책이나 앨범을 사면 다양한 굿즈를 패키지로 같이 챙겨준다던데 굿즈를 사은품이나 선물로 표현하는 건 좀 이상할까? 아니면 한글로 표현할 수 있는 스펙트럼이 너무 좁아서일까.

(참고: 굿즈의 정의 - “아이돌, 영화, 드라마, 소설, 애니메이션 등 문화 장르 팬덤계 전반에서 사용되는 단어로, 해당 장르에 소속된 특정 인물이나 그 장르 및 인물의 아이덴티티를 나타낼 수 있는 모든 요소를 주제로 제작된 상품•용품을 뜻한다”)


간혹 전문 용어는 번역하기 애매한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는 영어 발음 그대로 한글로 표기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꽤 있다. 특히 IT, 컴퓨터 분야에서 흔한 것 같긴 하지만 생각해 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미국에서 몇 년 살았다고 가끔 한글 단어보다 영어 단어가 먼저 생각날 때도 있긴 하다. 사실 굳이 그렇게 쓰지 않아도 되는 상황인데도 말이다. 언젠가부터 그걸 깨닫고 나니 이제는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주변을 유심히 살펴보면, 정작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한국말을 더 잘 쓰려고 노력하는 인상을 받는다. 한글 단어 자체를 모르거나 한글 표현이 어설플지언정, 한글 단어를 알면서도 영어 단어를 중간중간에 섞는 경우는 드물다.


몇 년 전 한 설문조사에서 직장에서 듣기 싫은 꼴불견 영어 단어에 노트북을 랩탑, 핸드폰을 셀폰이라 부르는 것이 1,2위 순위에 올랐다는 조사를 본 적이 있다. 영미권에서 유학한 출신 중에 직장에서 그런 표현을 하는 게 거슬린다는 표시였을 것이다.


예전에는 유학생이나 해외 거주 사례가 드물었지만, 요즘은 워낙 그런 파풀레이션이 많아져서 그런지 오히려 이런 현상이 더 브로드해지고 가속화되는 듯하다. 피자를 핏짜라고 한다던지, 코스트코를 커슷코, 이케아를 아이키아로 발음하는 것도 좀 우스꽝스럽지 않나 생각해본다. 그럴 거면 햄버거는 햄벌거얼이라고 하고 스파게티는 스빠게리라고 해야 할 텐데 말이다. 참으로 오크워드한 광경이다.


*사족으로, 재미교포 2세들의 영한 혼용 중 인상적이었던 재밌는 표현이 있다. 언니가 어린 동생에게 한 말이었다.


너 그렇게 말 안 들으면,

“아빠 is going to 혼내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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