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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잇독 Oct 20. 2018

비행기를 타는 느낌

새로울 것 없는 새로움

나는 비교적 공포증이 없는 편에 속한다. 폐소 공포증, 고소공포증, 대인공포증, 귀신 공포증, 동물 공포증, 그리고 비행공포증 등 그 어느 것도 나에겐 그다지 해당사항이 없다. 이러한 공포증은 타고날 수도, 자신도 모르게 유년기에 형성될 수도, 특정 사건에 의해 유발될 수도 있다. 아직까지 특별한 공포증이 없다는 것은 그러한 유전자를 물려주신 부모님과 지금까지 큰 사건 없이 무사히 잘 살았다는 것에 대한 감사이기도 하다. 


간혹 간접적인 경로를 통해 비행공포증에 대한 얘기를 접한다. 적어도 내가 직접 만나는 사람 중에는 못 본 것 같다. 더욱이 공항 또는 비행기 안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 중 극심한 비행공포증을 호소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최소한 그 비행기 내에서 모든 사람이 알아챌 수 있을 정도의 고통을 호소하는 경우는 별로 없을 것이다. 물론 지극히 제한적인 개인적 경험에 의한 추측일 뿐이다. 매일 비행을 하며 승객을 대하는 승무원들에게는 세상에 비행공포증을 호소하는 사람이 왜 이렇게 많은지 의문일 수도 있다. 가령,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들에겐 온 천지에 아픈 사람만 있다고 생각되는 것처럼 말이다. 일반 사람들에게는 개도 암에 걸리나 생각하겠지만, 내 눈에는 암에 걸린 개만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약 1년여 만에 비행기를 탔다. 날개 없는 인류가 수만 년 동안 꿈꿔보지도 못한 하늘을 나는 행위가 2018년 현재에는 매 순간 온 세계에서 펼쳐진다. 2017년 한 해에 약 3,700만 대의 비행기가 하늘을 날았고, 2018년엔 3,900만 대가 예상된다고 한다. 어림잡아 계산해도 매일 같이 대략 10만 대가 하늘을 날고 있다. 기내에 앉아 얌전히 승무원의 지시대로 안전벨트 착용 후 창문을 내려놓고 그저 잠시 눈을 감았다 떠보면 순간이동처럼 다른 장소에 와 있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경험한다. 하지만 한 뼘 남짓한 폭의 창문을 넘어 보이는 장면은 비행기가 어떻게 운행되는지 물리학적 지식이 없는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 


익숙함은 놀라움과 경이의 반대말이다. 자동차를 처음 탔을 때와 비교할 수 없는 경이로움을 비행기를 처음 타면 경험하게 된다. 최소한 나에게는 그랬다. 지각이 깨어나기 전부터 일상적으로 비행기를 타 왔던 사람에겐 하늘을 난다는 놀라움보단 비행의 고단함만을 낳겠지만, 20년을 땅바닥에서만 생활하다 하늘을 경험한 나에게 비행기를 타는 일은 여전히 특별한 임에 분명하다.

새로움이 익숙해짐으로 변화되기 전까진, 그 신기함이란 현상 자체에 몰두하느라 정작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 핸드폰과 카메라 등의 기기들을 멀리한 채, 종이로 된 책을 붙잡고 공항에 앉아있노라니 <공항에서의 일주일을 (히드로 다이어리)>를 집필하기 위해 히드로 공항에 앉아 있는 알랭 드 보통과 같은 수준 높은 인문 철학자가 된 것 같은 나만의 착각과 공상에 빠진다. 더욱이 비행기가 출발하기 전 좁은 이코노미 좌석에 앉아 무료하게 이륙을 기다리는 대신, 종이책을 읽고 있으니 왠지 더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낸 것 같은 뿌듯함에 빠진다. 디지털 세계에 억눌려 있던 상념의 폭발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륙을 하기 위해 비행기가 내는 굉음에 대한 청각적 반응과 창밖으로 보이는 작은 건물과 나무들에 대한 시각적 효과가 어우러져 ‘하늘을 나는 인류’라는 고리타분하고 상투적인 감상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짧은 감상은 이내 손에 들고 있던 책을 내려놓고 지금과 같이 핸드폰에 타이핑을 하는 낭만적이지 못한 결과를 낳았다.

신의 위대한 창조물 앞에 속절없이 무릎 꿇던 과거의 인간은 이제 스스로 신이 되어 지구를 지배한다. 자연의 법칙을 철저히 파헤치고 해체하여 지구 상에 존재하지 않던 거대하고 육중한 인공 새를 만들어 냈다. 그리곤 호흡을 불어넣어 생명을 부여했다. 스스로 그 안에 들어가 앉아 인간의 눈으로 도저히 구분할 수 없는 픽셀 조각을 모아 스크린에 그려 넣고 가상의 디지털 영화를 즐긴다. 신의 창조물에 억압받던 인류는 어느새 만물의 창조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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