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를
스무살.
정확히 만 18년 7개월을 이 세상에서 살아낸 후 대학을 입학했다.
그때까지의 짧은 인생 경험으로 어리석게도,
나는 내가 동물을 제일 좋아하는 줄 알았다.
내가 개를 가장 사랑하는 줄 알았다.
나만 개고기를 먹지 않는 줄 알았다.
나는 생명 존중 사상이 투철하다고 믿었다.
어린 아이들은 대부분 동물을 좋아한다. 물론 귀여운 동물을. 동물을 직접 접하면 무서워 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교육의 차원에서 어린이들의 책이나 만화, 캐릭터, 동요등에 동물이 항상 등장한다. 동물을 보여주는 것이 아동 교육 측면에서 반드시 필요한지, 아니면 동물이란 것은 그저 유아적 발달 단계에서나 필요한 존재라고 여겨지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아이들의 세계에서 동물은 뗄 수 없는 존재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그러한 현상은 점차 줄어든다. 여자 아이들은 좀 더 늦게까지 관심을 갖는 현상이 있지만, 남자 아이들 같은 경우는 청소년기, 아니 초등학교 고학년만 가도 동물에 대한 관심이 급속히 줄어든다. 대신에 로보트나 장난감이 그들에겐 더 매력적인 존재이다.
내가 대학에 입학할 당시 우리 학교는 동기 입학생 남녀 비율이 7:3이었다. 남자 70명, 여자 30명이란 얘기다. 내가 기억하는 객관적 수치이다. 이 많은 남자들이 동물을 좋아해서 수의학과에 들어왔다니 적잖이 놀랐다. 나는 소신지원을 통해서 접수 번호 5번으로 대학에 원서를 제출했다. 남자 중에선 첫번째였다. 전체 접수 1번을 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긴 했지만 남자 중 첫번째라는 것에 의미부여를 하며 나름 뿌듯해 했다. 수의학과를 오고 싶지 않았는데 수능을 망쳐서 또는 주변의 추천으로 온 경우도 있었지만, 모두가 수의사라는 같은 꿈을 향해 달려가기로 준비된 사람들 사이에 둘러쌓여 있다는 것은 내게 굉장히 큰 의미였다.
개 따위나 수술하려고 그런 학교를 가려느냐는 비아냥을 들었던 설움이 보상받는 느낌이랄까. 난생 처음 느끼는 마이너에서 메이저로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런데 사람이란 참 이상하다. 같은 마음을 가진 친구들이 많아지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수의학과에 입학하고 의욕이 떨어졌다.
막상 원하던 것을 얻으니 흥미가 떨어진 걸까? 고등학교를 벗어나 보니 대학생활에 재밌는 것들이 너무 많았던 것일까. 아니면 나보다 더 유난스런(?) 사람들이 많아서 거부감이 느껴졌을까? 나만 간직하고 싶던 꿈을 다른 사람에게 뺏긴 것 같은 기분이었을까? 그것을 나눠갖기 싫었던 걸까?
각기 다른 모습과 형편이지만 같은 목적을 향해 서 있는 집단 내에서 나는 약간의 방황을 했던 것 같다. 지금은 개에 대한 글을 쓰고 있지만 만약 이런 글들을 대학 친구들이 본다면 저 친구가 저렇게 동물을 좋아했었나 하고 의아할 지도 모를 정도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