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낄 겨를도 없는 바쁨
미국에 와서 한동안은 피곤함이 너무 몰려와서 견딜수가 없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새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낯섬은 있었지만 육체적인 바쁨은 없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퇴근하며,
아 오늘 별로 한 일도 없는데 왜 이렇게 피곤하지?
하고 느낀 적이 많았다. 나름 그 원인으로 생각해낸 것은 두가지다.
첫째는 새로운 언어. 30년간 쓰던 언어가 아닌 언어를 하루종일 접하며 이해하고 말해야 하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큰 정신적 에너지의 소모였다.
둘째는 여유. 한국에서의 생활에 비해 시간적, 육체적, 공간적 여유가 늘어났다. 여유가 늘어났는데 왜 더 피곤할까 라고 생각해 봤더니 한국에선 피곤을 느낄 겨를도 없이 바빴던게다. 설령 내가 할 일이 없다해도, 주변 사람들과 세상이 다 바쁘게 돌아가는 한복판에 들어와 살아 숨쉬는 그 자체가 나를 바쁘게 한다.
바쁨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한국의 바쁨 속에는 오감을 자극하는 즐거움과 유흥, 재미를 유발하는 다양한 요소들이 있다. 반면, 여유롭다는 것은 때론 무료하고 심심하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바쁨의 굴레로부터의 갑작스런 이탈은 여유가 아닌 허무와 우울을 유발시키기도 한다. 무엇인가를 하는 행위가 곧 나의 존재 의미를 증명해 준다고 믿는 경우에 더 그러하다.
우리 몸은 스스로 위험을 감지하게끔 조절되어 있지만, 그 싸인을 인지하지도 못할만큼 나를 몰아가는 것은 언젠가 사인이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