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앉아 있기를 잘하고 좋아하는 편이라는 걸 나이를 꽤나 많이 먹고 나서 알게 되었다. 혼자 있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것도 그러하다. 학창 시절엔 뛰어놀기 좋아했는데 그 나이 때 성장기의 아이들이 그렇듯 친구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했고 운동장에서 몇 시간이고 축적된 에너지를 허공으로 날려버리는 일 따위를 하는 것도 즐거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앉아있기를 좋아하는 성향은 아침 7시 반부터 밤 10시까지 앉아있어야 하는 대한민국의 학창 시절을 무난히 보내는데 도움이 됐으리라. 슬프게도 노화에 따른 생물학적 현상으로 인해 활력이 떨어져서인지, 그저 귀찮음과 게으름의 콜라보레이션으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가만히 앉아서 책을 읽거나 커피숍에 오래 앉아있기, 시간을 때우며 누군가를 기다리기 등이 내겐 그리 괴로운 일은 아니다.
연애를 하던 당시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책 구경을 하거나 커피숍에 홀로 앉아 여자 친구의 일이 끝나기를 하염없이 기다릴 수 있었던 것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이었지만, 가만히 있는 것에 대한 관용성이 높다는 것은 내게 꽤나 주효한 능력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을 통해서도 지루함과 가만히 있는 걸 못 견디는 사람이 있는 반면, 어떤 사람들은 얌전해 보이는 외적 성격과 다르게 활동적인 재미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활동성과 비활동성을 적절하게 배분하려 노력하지만, 그 적절성에 대한 기준의 차이가 그 사람의 성향의 차이를 나타내기도 한다. 인간관계에서도 서로 대화하는 것을 통해 친밀함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 반면, 외적 활동을 통해 만족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혼밥, 혼술 등 혼자 놀기가 더 이상 부끄러운 일이 아니고 오히려 한국의 대세 문화로 떠올랐다는데, 다양성을 인정하는 차원에서 환영할만한 변화이다. 어떤 사람은 혼자 있기를 극도로 싫어하고 불안해하는 사람이 있지만, 어떤 사람은 '제발 나를 좀 내버려두라'라고 호소하는 사람이 있다. 원하든 원치 않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부대끼며 살아야 하는 한국의 문화가 누군가에겐 재미있고 즐거운 일인 반면, 누군가에게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고통일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기에 혼자서만은 살 수 없지만, 한 가지 방식으로 모든 사람의 생활양식을 재단할 수는 없기에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숨통을 틔워줄 만한 장치가 마련되는 것은 건강한 사회의 모습을 이뤄가는 긍정적인 측면이 아닐까 생각한다.
홀로 커피숍에 앉아있는 걸 즐기는 한 사람으로서, 혼자 커피숍을 가는 걸 도저히 이해 못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세상은 정말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로 돌아간다는 것을 다시 새삼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