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나는 미안하다는 말을 좋아하지 않았다.
미안하단 고백은 상대방을 위한 배려의 말이라기 보단 나의 죄책감을 씻기 위한 자기변명이라 생각했다.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은 내가 한 행위에 대해 상대방이 이해해주지 못하리란 불신에 기인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저 어색하고 불편한 사람끼리 억지로 예의를 차리기 위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길 가다 모르는 사람의 어깨를 부딪혔을 때, 지하철에서 다른 사람의 발을 밟았을 때 우리는 당연히 미안하다고 해야 한다.
하지만 친한 친구 사이에 별것도 아닌 일에 누군가 나에게 미안하다고 하면 나는 달갑지 않았다.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런 사소한 일에 대해 미안하다고 말하는 건 내가 이런 것도 이해 못하는 쪼잔한 사람이란 말이잖아.
우리가 그 정도 사이밖에 안 되는 거야?
둘 사이에 신뢰와 친분이 있기 때문에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이해할 수 있다고 믿었다.
우리 사이에 나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다 받아줄 수 있는데 말이다.
지금의 아내는 내게 시시때때로 미안하다고 말한다.
"여보 미안하지만 수건 좀 가져다 줄래요?"
뭐가 그렇게 항상 미안한지 그런 태도에 나는 불평을 늘어놓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순수한 배려의 측면이었다.
반대로 나는 내 기준과 잣대로 남의 기분을 평가하는 짓을 저지른 게다.
사람은 모두 다르다.
감정의 온도도 다르다.
우리는 상대방의 마음속을 훤히 들여다볼 수 없다.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도 말이다.
뒤늦게 나는 배웠다.
미안하다는 말은 신뢰의 차원이 아닌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의 말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