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렁이 이야기 2
초등학교 5학년 때 버스를 타고 학교에 다녔다. 집에서부터 학교의 거리는 약 12킬로미터, 차로 2-30분 정도 소요되었다. 1학년 때 입학하여 4학년까지는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였는데, 시골의 환경을 그리워하신 아버지께서는 내가 5학년 때 온 가족을 데리고 이사를 하셨다. 4년이나 다닌 학교를 떠나 전학을 가긴 싫었고, 본인의 결정으로 하신 일이라 아버지께서는 나와 동생을 매일 아침에 트럭에 태워 등교를 시켜 주셨다. 하지만 하교를 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는 대중교통을 이용해야만 했고 12살 나이에게는 꽤나 먼 거리였다. 버스를 한번 갈아타야 했고, 갈아타고 집으로 오는 버스는 40분에 한 대씩 운행을 했다. 버스 정류장에 내려서도 어린이의 걸음으로 30분은 족히 걸어야 하는 시골길이었다 (지금은 이 동네에 아파트가 들어섰다!). 지도를 확인해 보니 지금은 발달된 대중교통으로도 1시간은 걸리는 위치인데 그렇게 초등학교 졸업까지 2년을 어떻게 다녔는지 믿어지지가 않는다.
굳이 이렇게 등하교 거리를 강조하는 이유가 있다.
어느 여름날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었다. 유튜브도 없던 시절이라 버스를 타고 오랜 시간 걸어오는 동안 '집에 가면 뭐하고 놀까' '누렁이는 뭐하나' 따위의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그렇게 다른 또래들에 비해 긴 하교 시간을 마치고 마침내 현관에 들어섰다.
엄마 학교 다녀왔..
.. 습니다"
라는 말을 채 끝내기 전에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좁은 현관 입구에 가득 찬 손님들의 신발이었다.
작은 집이라 안에서부터 들려오는 왁자지껄한 소리가 현관 입구에서부터 들렸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눈 앞에는 상에 둘러앉은 익숙한 얼굴의 아버지 친구분들이 보였고, 왼쪽에 위치한 싱크대 앞에서 음식을 나르시는 어머니의 뒷모습이 보였다.
내 코에는 깻잎 향과 들깨가루를 뿌린 진한 된장국의 냄새가 폐 깊숙한 곳까지 흘러들어왔다.
내 마음은 요동치고 있었다.
내 방이 따로 없었기에 손님들의 상을 지나쳐 아무 말 없이 구석에 책가방을 내려놓았다.
잘 아는 아버지 친구들 중 한 분이 나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셨다.
12살 먹은 아이는 응당 집에 방문하신 손님들께 예의 바르게 인사를 먼저 드리는 것이 도리이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아니, 그러지 않았다.
그러기 싫었다.
두 손을 꼭 쥐며 그 당시 우리 집에 있던 최신 무선 전화기만 멍하니 잠시 쳐다보았다.
내 마음은 꽤액 소리를 지르며 음식이 담긴 상과 음식을 그곳에 앉아있는 어른들에게 뒤엎어 버리고 싶었지만 나는 절제심과 인내심이 많은 아이였다.
하지만 그곳에 오래 앉아있을 수 없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분명했지만 혹시나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현관으로나 나갔다.
'현관을 돌아나가면 누렁이가 묶여있던 개집이 있다'
'누렁이가 있다'
'누렁이가 있다'
'누렁이가 있다'
라고 대뇌였다.
하지만 누렁이가 있던 집은 텅 비었고,
목 줄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정작 있어야 할 누렁이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