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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잇독 Dec 21. 2018

# 아버지는 왜 누렁이 집을 지어주셨을까

누렁이 이야기 3

26년이 지났지만, 내 눈앞의 그 장면, 코의 냄새, 시끌벅적한 사람들의 소리, 내 속에 요동치던 분노의 감정들이 여전히 생생하다.


아버지는 누렁이에게 손수 개 집을 지어 주셨다.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로 만든 개 집이었다. 여느 시골 개들이 그렇듯 누렁이는 사람이 먹다 남긴 잔반을 먹었다. 누렁이가 먹을만한 잔반이 항상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아버지는 사료도 사다 놓으셨고 섞어서 먹이기도 했다.


개 목줄은 철물점에 가면 쇠로 만든 다양한 크기의 개 목줄이 걸려있었다. 목에 착용시키는 목걸이는 웬만하면 끊어지지 않는 두꺼운 직물 벨트로 되어 있고 중간중간에 목걸이를 잠글 수 있도록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 중에 하나를 사서 누렁이에게 채웠다. 강아지용 얇은 쇠 목줄부터 아주 두껍고 강한 쇠사슬과 같운 성견용까지 다양했다. 성장하면서 개의 크기와 힘에 따라 적절하게 바꿔줘야 한다. 쇠 목줄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얼마 전 인터넷에 한 동물보호단체가 올린 한 시골개의 사연을 보았다. 어릴 때 사람이 작은 강아지에게 목줄을 해놓고선 개의 크기가 자라는 것에 따라 목줄을 느슨하게 해주든 교체를 해주든 해야 되는데 그냥 방치를 해서 오랫도안 목에 깊고 심한 상처가 나있는 것이었다. 30년 전에도 없을 일이 2018년에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누렁이 얘기로 돌아와서, 그렇게 목줄을 채운 후 개 집 앞 적당한 위치에 쇠파이프를 바닥에 깊숙이 박아 넣고 그 위에 목줄 고리를 걸어서 넣는다. 그렇게 누렁이는 평생을 개 집에 쇠줄로 묶여 있었다. 개 집에 쇠줄로 묶여 있는 개의 모습은 시골에서 전형적이고 흔한 모습이기에 우리 집만 이상한 것은 없었다. 그리고 당시에 난 집 안에서 개를 키우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루 종일 묶여있는 모습이 불쌍해 보였다.


그래서 내가 학교에서 돌아와서 집에 있을 때면 누렁이의 답답한 줄을 풀어서 산책을 하며 놀곤 했다. 그렇게 잠시 바람을 쐬면서 걷거나 달리기를 할 때를 제외하고는 누렁이는 항상 그 짧은 줄에 묶여있었다. 누렁이는 야외에 있었고 목욕을 시키지도 않았기 때문에 깨끗하지 않고 냄새가 났지만 그것이 누렁이와 함께 하는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그런 누렁이였다.


강아지 때 곧 죽을 것 같던 상황에서 기적같이 살아났고, 파보 바이러스 장염과 같은 전염병도 안 걸리고 건강하고 씩씩하게 잘 자라서 나와 함께 놀아준 친구였다. 학교와 멀리 떨어진 낯선 곳에 갑자기 이사를 와서 친구도 없던 때에 유일하게 나의 친구가 되어준 누렁이었다.  


그런 누렁이가 불과 채 한 살이 지나지 않았을 때에 일어난 일이었다. 우리 집은 그곳에서 1년밖에 안 살았기 때문에 똑똑히 기억한다. 새끼 때의 첫 만남과 헤어짐 사이의 1년이란 시간은 너무 짧았다.


아버지는 왜 손수 누렁이 집을 지어주셨을까?


개에게 집을 지어준다는 것을 상상해 보라.

목재소에서 나무를 사서 디자인을 하고 길이를 재고 톱으로 자르고 못으로 박고 DIY로 개 집을 지어주는 장면을 상상해 보라.

시간과 노력과 정성이 수반되는 작업이다.


이런 장면은 보통 반려견과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이어지는 감동적인 스토리가 되어야 자연스러운 것 아닌가?


누렁이에게 집을 지어준지 1년도 안 되어서 왜 누렁이는 떠나야만 했을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아버지와 나 사이의 개를 바라보는 시선에 크나큰 간극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나에겐 친구였지만, 아버지에게는 아니었다.


누렁이는 똑같은 하나였는데도 말이다.

누렁이는 진돗개와 닮았었다. 인터넷에서 찾은 사진이지만 이 사진을 보니 누렁이가 딱 떠올랐다. 날 바라보는 눈빛이 꼭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듯 하다.

누렁아,

잠시 머물렀던 그 집은 편안했는지 모르겠네.

좁은 공간이었지만 비는 피할 수 있었을 거야.

네가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는 것처럼,

어디로 갔는지도 나는 모르겠어.   

요즘 사람들은 무지개다리를 건넌다고 말하더라.

누렁이 너는 비록 다른 개가 누리는 수명의 1/10도 안 되는 짧은 1년을 살다 갔지만,

2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 안에 살아서,

태평양 건너 이 먼 곳까지 왔어.

너는 이곳이 처음이지?

나도 얼마 안 됐어.

이곳에선 말야, 너와 같은 털 색깔을 가진 누렁이들도 많이 있어.

그 친구들은 너보다 훨씬 더 행복하고 편안하게 지내는 것 같아.

너도 이곳에서 태어났으면 조금 더 아름다운 세상을 볼 수 있었을 텐데.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났지만 그동안 내 안에 살아있던 너를 이제 세상 속에 꺼내려고 하는데 허락해 주겠니?

너무 감상적인 얘기는 하지 않을게.

너를 이용해 사람들을 슬프게만 만들고 싶진 않아.

네가 잠시 존재했었던 사실만으로도 내겐 행복이었다는 것을 알려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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