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잇독 Jan 04. 2019

LG 세탁기

미국에 와서 대학교에서 운영하는 기숙시설에 살게 되었다.

문제는 집에 세탁기가 없다는 것이다.

세탁기가 공용이라니.

아예 세탁기를 설치하는 공간이 없고 집 안에 설치하는 것 자체가 금지이다.

한국에서 쓰던 40만 원 대의 통돌이 세탁기가 그렇게도 그리울 줄은 몰랐다.


미국에 도착하기 전 열심히 집을 알아봤지만 대부분의 아파트는 세탁기를 공용으로 써야 하거나 집 안에 세탁기가 있는 경우는 한 달 렌트비가 너무 비쌌다. 기본 렌트 요금도 비싼데 세탁기를 사용하는 수도세를 추가로 또 지불해야 했다.

선택지가 사실상 없었다.

결국 우리는 새로운 환경에 도전하게 되었다.


현관문으로부터 세탁실까지의 거리는 약 백 걸음.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거리를 통과하는 그 걸음이 지루해 세어봐서 안다.

파란 이케아 가방 두 개에 빨래를 욱여넣고 세제를 챙긴다.

가방을 양 어깨에 멘 후 집을 나선다.

백 걸음을 걸은 후 세탁실 앞에 도착한다.

몸을 비틀어 잠겨있는 세탁실 문을 열쇠를 열어젖힌다.

자동으로 닫히는 터에 재빨리 몸을 세탁실 안으로 집어넣는다.

세탁기는 두 개. 누군가가 이미 돌리고 있으면 기다리던지 다른 세탁실로 이동.

일련의 과정들은 때론 아내와 나의 데이트 코스이다.

반면 홀로 있을 땐 그저 귀찮고 힘든 가사 노동일뿐이다.

  

날씨가 좋은 날에도 그러한데, 한 겨울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영하 25도의 추위에도 빨래를 하기 위해 무장을 하고 집을 나서는 일은 꽤나 귀찮은 일이었다.

한 마디 불평 없이 감당해준 아내에게 미안하고 고맙다.


인간의 적응력을 놀라워서 짧지 않은 시간을 언젠가부터 익숙하게 살게 되었고, 지금은 LG 세탁기를 쓴다.

한국엔 흔하디 흔한 LG 세탁기.

신제품 리뷰를 위해서라면 모를까, 한국에서 LG 세탁기 쓴다고 자랑하는 사람은 없을 텐데.

그런데 나는 자랑스럽다.

 

미국 내에서도 LG 가전제품은 프리미엄 명품으로 생각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미국 회사들은 이제 가전제품을 만드는 수준이 형편없다.

나는 명품 브랜드 LG 세탁기를 쓴다.

세탁기 하나로 한국인임을 홀로 자랑스러워한다.


사랑해요 LG.

 


매거진의 이전글 댓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