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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잇독 Feb 09. 2019

차갑게 내려앉은 공기

섭씨 -33도와 체감온도 -46도는 극한의 추위라고 말하는데 부족함이 없을 듯하다 (실제로 남극보다 도 낮은 온도를 기록했다).

1월의 평균기온이 -10도는 되는 것이 정상인데, 1월 중순까지 영상의 기온을 오르락내리락한 것은 분명 이상기온이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더욱 변덕스러워진 날씨는, 지구를 걱정하는 마음은 뒤로 한채 한편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했다. 하지만 그것은 마치 폭풍전야와도 같았다. 따뜻한 날씨는 오래가지 않아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를 보이며 바닥을 모르고 온도를 끌어내렸다.


<에이트 빌로우>라는 영화의 첫 장면은 하얗게 눈이 쌓인 남극의 얼음을 배경으로 영하 -30도가 찍힌 온도계가 등장한다. 남극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주인공은 무료한 일상을 달래기 위해 동료와 알몸으로 추위를 경험하는 내기 놀이를 한다. 미국 영화라서 화씨 -30도인지 섭씨 -30도인지는 불확실하지만, 중요한 부분은 아니다. -30도쯤 되면 섭씨나 화씨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화씨 -30 = 섭씨 -34).


처음으로 체감온도 -40도라는 온도를 스마트폰의 앱으로 확인했을 때 섭씨, 화씨 변환 버튼을 누르고 잠시 의아한 적이 있다. 숫자가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이유인즉슨, 스마트폰이 고장 난 게 아니라 -40도는 섭씨와 화씨가 만나는 온도여서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http://thecia.com.au/reviews/1/images/8-below-0-2.jpg

-30도의 온도는 남극에나 어울릴 법한 온도이다. 한국에선 절대 경험할 수 없는.

이 온도에서는 뜨거운 물을 공기 중에 뿌리면 아래와 같이 순식간에 하늘에서 눈이 되어 내린다.

https://youtu.be/qOAzRIPpoqU


이렇게 추운 이곳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잘 살고 있긴 하지만, 날씨가 인간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큼을 느낀다. 한국에서는 -20도의 온도도 경험할 일이 없던 학생들이 의도치 않게 (?) 이곳으로 유학을 오면 가장 큰 적은 영어도, 외로움도 아닌 바로 '강추위'이다. 9월에 시작하여 5월에 마치는 학기를 보내며 혹독한 겨울을 경험하고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기말고사가 끝나자마자 비행기표를 끊어 한국으로 뛰쳐나간다. 그리곤 6,7,8월의 아름다운 여름 풍경은 뒤로한 채 또다시 겨울의 전선을 맞이한다.


삶의 질을 결정하는 요소는 다양하다. 함께 살아가는 사회 구성원의 의식 수준, 인프라, 의료, 교육, 교통 등 많은 요인들이 있지만, 그중에 우두머리는 단연 날씨라 할 수 있겠다. 많은 사람들은 삶의 터전을 결정하는 데 있어 날씨를 큰 요인으로 삼는다.


물론 지리적 여건에 대해선 선택지를 제공받지 못한 채 태어나 살게 된 경우는 날씨 조건을 고려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다른 요인에 의해 삶의 터전이 결정된다. 한국은 나라 전체가 4계절이 뚜렷하고 북 극단과 남 극단의 차이가 비교적 큰 편은 아니다. 더욱이 서울이란 도시 중심으로 거대하게 굴러가는 메트로폴리탄 시스템의 나라에선 더욱 그러하다.


미국이란 나라는 상대적으로 그런 편에서 좀 더 자유롭다. 러시아, 캐나다에 이어 국토면적 세계 3위에 해당하는 나라이며 북쪽에 치우쳐 있는 러시아 캐나다와는 달리 알래스카부터 캐리비안 해까지 방대한 지리적 위치를 아우르며 다양한 날씨 여건을 갖추고 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대화의 주제는 항상 날씨로 시작하고, 삶의 터전을 결정하는 문제에도 날씨가 큰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곳으로 유학을 오는 학생들은 졸업만 하면 다른 곳으로 떠나려고 한다. 다른 곳에는 안 살아봐서 그런 경향이 이곳에만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추위 때문에 못살겠다는 불평 섞인 푸념과 함께 따뜻한 캘리포니아에 대한 로망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유혹한다. 꼭 따뜻한 지역이 아니더라도 인간은 누구나 기회가 되면 더 좋은 곳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에 당연한 반응이다. 하지만 정든 사람들이 주기적으로 떠나는 것을 경험하는 것이 그리 기쁜 것은 아니다.


정착을 하게 된 사람들은 추위에 대한 불평 대신 그것을 즐기고 그 안에서 즐거움을 찾으려 노력한다. 그리고 이곳에 대한 좋은 평가에 귀를 기울인다. 미국 내 살기 좋은 도시 순위에 이곳의 3개 도시가 선정되었다거나, 이곳에서 태어난 청년들이 홈타운으로 다시 돌아오는 비율이 높다던지, 공교육 수준이 높다던지, 부동산이 안정되었다던지 등의 기사들에 말이다. 물론 그런 걸 자랑스레 얘기하다가 "그럼 뭐해 추워 죽겠는데"라는 비아냥 한방에 녹다운될 수 있다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기도 한다.

눈이 내린 아름다운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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