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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잇독 Jan 10. 2020

체면치레하다

불안을 감추기 위한 몸짓

영하 -13도를 가리키는 추운 겨울.

해는 이미 지고 어스름하게 어둠이 깔린 저녁 퇴근길.

한 남자가 커피숍 문을 열고 들어선다.

매장 내부에는 세명의 사람들이 대화를 주고받고 있다.

직원은 주문받은 음료를 만드는 중이라 카운터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 아직 주문받을 준비가 되지 않은 것은 확실해 보인다.


남자에게 필요한 시간은 단 10분. 다음 열차가 도착하기 전 몸을 녹일 수 있는 몇 분의 시간만 커피숍에서 보낼 수 있으면 된다. 어차피 잠시 앉아있다 커피숍 창 너머로 열차의 진입이 눈에 들어오면 재빨리 매장을 나갈 셈이다.

하지만 남자는 고민한다.

힘껏 열어젖힌 문이 반동에 의해 세차게 닫히기 전, 세명의 손님과 직원의 행동을 한눈에 담는다. 그리고 그들의 시선을 재빠르게 스캔한다.


단 5분 때문에 4400원짜리 아메리카노를 구입하기는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야외 플랫폼에서 열차를 기다리기엔 추위 때문에 온 몸이 아려온다. 평소엔 작은 커피숍 2000원짜리 커피면 충분한데 프랜차이즈 매장에 들어온 걸 후회하기 시작한다. 더욱이 주문하고 커피를 받아 드는데 최소한 3분은 걸릴 텐데, 커피만 받아서 나가긴 너무 아깝다. 하지만 이미 발을 들여놓은 이상 뒤돌아서기가 민망하다.


내면의 고민은 티를 내지 않은 채, 바쁜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급히 커피 한잔을 픽업해서 가기 위한 사람처럼 카운터를 향해 당당하게 발걸음을 옮긴다. 아직 카운터에 다다르지 않은 직원은 바라보며 괜찮다는 눈웃음을 짓는다. 여유롭게 커피 한 잔을 받아 들고 씁쓸하게 문을 나선다.


하지만 그는 괜찮다며 자신을 위로한다. 카드회사를 통해 지불된 마이너스 표시의 결제 기록을 보는 것이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는 것보다 낫다. 다른 사람들이 커피를 시키지도 않고 잠시라도 매장에 앉아있는 것을 부단히도 욕하던 그가 아닌가. 그가 핏대 세우며 얘기하던 것은 기본적인 매너에 관한 것이다. 선진시민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에티켓이자 영업자에 대한 존중과 배려이다. 하지만 이면에는 그의 불안을 감추기 위한 가면이 숨어있다.


뻔뻔함과 자신감이 한 끗 차이인 것처럼,

배려심과 자격지심도 때로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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