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뿌둥한 아침을 깨운 것은 쏟아지는 햇살이 아니라 우중충한 잿빛 하늘이었다.
개의치 않는 듯 샤워를 하고 4개월째 이어지는 재택근무 준비 태세를 갖춘다. 오늘은 실내용 편한 옷 대신 외출 가능한 바지를 택했다. 물론 밖에 나갈 계획은 없다. 나만의 마음가짐일 뿐이다.
흐리멍덩한 아침의 기분 마냥 바깥 날씨도 회색빛으로 가득하다.
500ml 생수 뚜껑을 열고 전기주전자에 약 400ml가량의 물을 대충 쏟아붓고 전원 버튼을 누른다. 그러곤 냉장고에선 3조각 남은 식빵 봉투를 꺼내 든다. 한 조각은 빵 껍데기. 얼마 전에 구입한 토스트기에 작은 빵 3조각을 살포시 얹고 레버를 내린다. 지잉하는 소리가 전기 코일의 붉은 가열을 가리킨다.
딸기잼과 크림치즈 중 무엇을 선택할까라는 고민은 찰나의 순간. 오늘은 쨈만을 고르기로 한다. 티스푼이 잠길락 말락 하며 어느새 바닥이 보인다.
어제 설거지 후 말려놓은 납작한 접시 하나를 꺼내 그 위에 토스트기에서 뜨겁게 달아오른 식빵을 올려놓는다.
전기주전자 속에서 물 끓는 소리가 요란하다. 재빨리 인스턴트 봉지 커피 하나를 뜯어서 컵에 부어 넣고 뜨거운 물을 흘려보낸다. 오늘은 정확히 머그컵의 입구까지 물 양이 맞았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테이블에 앉으려 하니 밖이 요란하다. 뚝뚝 거리는 소리와 검게 변한 창밖에 풍경이 비의 소식을 알린다.
절묘한 타이밍.
자리에 앉자마자 후투 툭 소리와 함께 세차게 비가 쏟아진다. 시커먼 하늘로부터.
머그컵까지 뜨겁게 달군 커피에 성급히 입술을 댔다가는 이내 데일 것이다. 잠시 비가 오는 소리를 듣는다.
비가 온다.
밝은 햇살이 환하게 비취는 화창한 날씨도 좋지만 비 오는 소리와 분위기는 이내 커피의 연기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비 오는 걸 좋아한다는 고백은 때론 음울한 정서를 비치기도 한다.
반대로 풍부한 감성을 지닌 인간성을 나타내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비 오는 날을 지독히도 싫어하고 심지어 몸이 아프기도 한다.
오랜만의 감성을 기억하기 위해 글을 남기었더니, 글쓰기를 마치자마자 비가 멈췄다.
3조각의 식빵과 뜨거운 커피도 어느덧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