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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잇독 Aug 03. 2018

젠체하다

잘난 체하다


사전적 정의로 ‘잘난 체하다’라는 뜻이다. 잘난 체한다는 것은 실제로는 잘나지 않았는데 그런 것처럼 행동하고 말한다는 뜻이다. 잘났다는 것에 대한 정의는 무엇일까. 막상 떠오르지 않는다. 잘났다는 정의가 없는데, 잘난 체하는지 안 하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진짜로 잘났는지 그저 ‘체’하는 것인지 알 수 있도록 측량하는 객관적인 방법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잘남'에 대한 기준은 주관적으로 규정된 후 한 개인의 행동과 말을 판단하여 충족 여부를 결정함으로써 ‘체’에 대한 평가가 진행된다. 과학과 데이터의 범람의 시대라고 하지만 여전히 객관화, 수치화할 수 없는 일이 일상에 가득함에도 불구하고, 개개인은 나름의 과정을 거쳐 개별적 직관을 이용해 주관적 정량화를 시행한다.


과학적 과정이 아님에도 그것은 때로 예상치 못하게 훌륭한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그로 인해 갈등과 오해, 편견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개인적 직관이 모여 여러 사람의 동의를 이뤄낼 만큼 정확할 때가 있다는 것은 서로 다른 개별 인격 사이에 존재하는 사고의 공유점이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또한 모든 나라의 언어에 잘난 체한다는 단어가 있는 것을 보면 (물론 모든 언어를 알지도 못하고 찾아보지도 않았지만 그럴 것이라는 직관적, 합리적 추측을 해본다), 어떤 사람의 언행을 보면서 '재수 없다'라고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단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한 설문조사에서 비호감인 이성 상대에 대한 특징을 조사했는데, '잘난 체하는 사람' 이 당당히 순위에 있는 것을 보았다. 많은 경우 우리는 잘난 체하는 사람을 싫어한다. 하지만 잘난 체하는 사람을 불편하게 느끼는 기준이 선천적인지 후천적인지는 판단하기가 어렵다. 모든 인류가 그 능력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잘난 체'의 기준은 역사, 규범, 상황 및 문화에 따라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최근에 베스트셀러라는 책을 하나 보게 되었다. 책 소개에는 거창하게 'OO에 대한 인문적 시선'이라고 홍보를 해 놓았는데, 정작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인문학적 고찰이나 사색, 깊이는 없이 단지 저자의 '지식 대방출'을 목적으로 맥락없이 페이지를 채웠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2/3 가량을 읽었는데 흥미가 떨어져서 빨리 읽고 덮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한 가지 유익한 점은, 잘못된 글쓰기의 예를 보았다는 것이고 나의 글을 돌아보며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는 귀중한 경험을 했다는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매우 큰 유익이긴 하다.     


사실 우습게도, '젠체하다'는 제목의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순전히 이 단어 자체에 대한 흥미 때문이었다. 한글 단어의 모양이 가져온 설명할 수 없는 끌림이었다. 잘난 체하다 와는 다른 느낌이기도 하거니와, 이 단어가 주는 자음과 모음의 조합이 나에겐 묘한 신비를 불러일으킨다. 외국에서 생활하다 보니 한글의 위대함을 새삼 느끼며 그 아름다움을 경험하는데, 글을 잘 쓰는 것과는 별개로, 모국어로 한국어를 하고 한글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다는 데에 뿌듯함을 느낀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젠체하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그리고 다른 사람을 젠체한다고 평가하지 않도록, 겸손하고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일이다”라고 마무리하려는 순간, 이미 위의 한 사람을 젠체하는 자로 낙인찍었다는 것에 대한 미안함과 후회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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