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와 영화제
어차피 EIDF는 전부터 극장보다는 TV나 온라인으로 보는 비율이 높았기 때문에, 다른 영화제들에 비해 별 생각은 들지 않았다.
베르너 헤어조크의 두 작품(<고르바초프를 만나다>, <유랑: 브루스 채트윈의 발자취를 따라서>)과 이전부터 시간이 나지 않아 극장에서 보지 못한 <폴란드로 간 아이들>을 챙겨봤다. 그밖에 <9/11 키즈>, <쓰나미, 그 기억의 여정> 등을 보았는데, 두 작품 모두 큰 재해와 테러에 관한 이야기여서 그런지 코로나-19가 한창인 시기에 보니 나름 감회가 새로웠다.
역사를 기록하고, 기억을 되새긴다는 것도 역시 어느 정도 여유가 있어야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해야하나. 눈앞에 재난이 닥친 상황에서 보자니, 이전 재난에 대해 회고하는 영화들이 상당히 한가롭게 느껴졌다. 정확히 말해서 한가한 것은 이 영화들이 아니라, 이 영화들을 보고 있는 나 자신이겠지만.
요즘 KMDB 칼럼란에 올라오는 영화 글들이 대부분 코로나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확실히 힘들긴 한 모양이다.
https://www.kmdb.or.kr/story/237?menuIndex=28
코로나가 계속돼서 극장도 망하고 영화제도 온라인으로만 하게 되면 뭐가 변할까 생각해봤는데, 만약 관객수 제한이 사라진다면 가용시간 동안 보증된 영화만 보게 될 것 같다. 인기 있는 영화가 다 나가서 표를 못 구하게 되면 울며겨자먹기로 비는 시간에 아무 영화나 보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때 영화가 좋을 확률은 1/10도 안 되기 때문에 시간낭비는 안 하게 돼서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뜻밖에 좋은 영화를 발견하게 될 확률은 개인적으로 줄어들겠지만, 어찌됐건 인기없는 영화들도 전반적으로 만나는 관객 수 자체는 상승하게 되지 않을까? 그럼 결과적으로 발견될 확률도 높아질 테고.(너무 낙관적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