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화평론가 이병현 Jul 13. 2023

'정확'이가 불쌍하다

'적확'하긴 뭐가 적확해

한때 '시나브로'라는 말이 대유행이었다. 유행해서 생명력을 되찾는 사어도 간혹 있다지만 예나 지금이나 '시나브로'는 어거지 유행이었다. 글이 아닌 말로 이 단어를 자연스럽게 내뱉는 사람은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시나브로란 단어를 볼 때마다 오글거렸다.


요즘은 시나브로 대유행은 잦아든 것 같지만, 최근 들어 몹시 거슬리는, 원래 있던 멀쩡한 말을 밀어내고 생명력을 얻어가는 단어가 하나 있다.



바로 '적확하다'이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으나 이제 인터넷에서는 '정확'하다는 말을 쓰는 사람은 거의 없고 '적확'하다는 말을 쓰는 사람이 더 많아진 듯하다. 도대체 왜,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아무리 해도 '적확'이라는 말이 입에 달라붙질 않는다. 일상어로 정확 대신 적확을 쓰는 사람은 본 적이 없는데, 왜 유독 글에서만 이렇게 적확적확거리는 것인지 영문을 모르겠달까?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정확이든 적확이든 유의어라서 서로 어느 상황에든 바꿔 써도 상관이 없다고 한다. 다만 정확이 조금 더 잘 표현하는 상황이 있고, 적확이 조금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상황이 있다는데, 내 기억으로는 적확은 사실상 구어로는 거의 사어나 마찬가지였고 적확을 쓰는 것이 더 정확할 만한 상황에서도 그냥 정확을 쓰게 된 지 한참 됐다. 그런데 요즘 추세를 보아하니 이제는 정확을 써야 하는 상황에서도 적확을 쓸 기세다.



직접 소리 내서 발음을 해보자. 정확. 적확. 기역이 두 개나 들어가는 적확보다는 정확이 더 발음이 쉽고 자연스럽지 않나? 대체 '정확'이 뭘 그렇게 잘못했는가? 그냥 말하던 대로 쓰자.



*이와 반대로, 이제는 공식적으로 '너무'와 '정말(아주, 진짜, 매우)'을 구분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되었는데, 나는 곧 죽어도 너무와 정말을 아주 진짜로다가 구분하며 쓰고 읽고 하며 살 것을 굳게 다짐하는 바이다. 왜냐하면 너무를 긍정문에 쓰는 건 너무 말이 안 되니까……. (이럴 거면 닭도리탕이나 닭도리탕으로 쓰게 해 달라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