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영화평론가 이병현
Jul 13. 2023
한때 '시나브로'라는 말이 대유행이었다. 유행해서 생명력을 되찾는 사어도 간혹 있다지만 예나 지금이나 '시나브로'는 어거지 유행이었다. 글이 아닌 말로 이 단어를 자연스럽게 내뱉는 사람은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시나브로란 단어를 볼 때마다 오글거렸다.
요즘은 시나브로 대유행은 잦아든 것 같지만, 최근 들어 몹시 거슬리는, 원래 있던 멀쩡한 말을 밀어내고 생명력을 얻어가는 단어가 하나 있다.
바로 '적확하다'이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으나 이제 인터넷에서는 '정확'하다는 말을 쓰는 사람은 거의 없고 '적확'하다는 말을 쓰는 사람이 더 많아진 듯하다. 도대체 왜,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아무리 해도 '적확'이라는 말이 입에 달라붙질 않는다. 일상어로 정확 대신 적확을 쓰는 사람은 본 적이 없는데, 왜 유독 글에서만 이렇게 적확적확거리는 것인지 영문을 모르겠달까?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정확이든 적확이든 유의어라서 서로 어느 상황에든 바꿔 써도 상관이 없다고 한다. 다만 정확이 조금 더 잘 표현하는 상황이 있고, 적확이 조금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상황이 있다는데, 내 기억으로는 적확은 사실상 구어로는 거의 사어나 마찬가지였고 적확을 쓰는 것이 더 정확할 만한 상황에서도 그냥 정확을 쓰게 된 지 한참 됐다. 그런데 요즘 추세를 보아하니 이제는 정확을 써야 하는 상황에서도 적확을 쓸 기세다.
직접 소리 내서 발음을 해보자. 정확. 적확. 기역이 두 개나 들어가는 적확보다는 정확이 더 발음이 쉽고 자연스럽지 않나? 대체 '정확'이 뭘 그렇게 잘못했는가? 그냥 말하던 대로 쓰자.
*이와 반대로, 이제는 공식적으로 '너무'와 '정말(아주, 진짜, 매우)'을 구분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되었는데, 나는 곧 죽어도 너무와 정말을 아주 진짜로다가 구분하며 쓰고 읽고 하며 살 것을 굳게 다짐하는 바이다. 왜냐하면 너무를 긍정문에 쓰는 건 너무 말이 안 되니까……. (이럴 거면 닭도리탕이나 닭도리탕으로 쓰게 해 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