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전될 만큼 열심히 살진 않았어도

모든 것들을 팽개치고서 쉬고 싶어질 때가 있다

by 봉필


인생은 어떤 보상 체계의 인과만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았다. 잘 걸어가는 듯하다가도 갑자기 벌러덩 드러누워 잠을 자고 싶어진다든가, 길가에 피어 있는 꽃에 한 눈이 팔려 한동안 걸음을 멈추게 된다든가, 때때로 무작정 걸어온 길을 다시금 내달려 전격적으로 후퇴를 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 모든 것들이 모순적이지만 결코 모순적이지 않은 감각으로 생생하게 우리들의 주변을 채우고 있다. 우리는 그 혼돈 속에서 규칙이나 논리를 찾으려고 발버둥치곤 한다. 하지만, 모든 일들이 논리적으로, 과학적으로 설명이 된다면 대체 그런 세상을 살아가는 재미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지나치게 완벽을 추구하는 어떤 성미를 추종하다 보면, 그만큼 삶의 불행에 빠져들기 쉬운 법이다. 미완과 모순, 그리고 어떤 부족함에 대한 예찬으로도 우리는 삶을 충만하게 채워나갈 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특별한 이유가 없더라도, 원대한 목적을 갖고 있는 행위가 아닐지라도 우리 삶 속에서는 얼마든지 소중하게 빛을 발할 수가 있다. 퇴사 직후에 채워져 가는 내 일상의 순간순간이 정확히 그런 느낌이었다.


퇴사 직전까지 열심히 살았다고는 감히 말할 수가 없다. 남들이 살아가는 만큼, 누군가로부터 지나치게 게으르다거나 나태하다거나 하는 꾸지람을 듣지 않을 정도로 적당하게 열심히 살아갔다. 아니, 어쩌면 삶을 권태로만 채우고 있는 누군가보다는 한참이나 더 애정을 갖고 열심히 살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삶을 사랑하고 일상의 순간순간들에 몰입하며 살아오기는 했으니까. 다만, 모든 에너지를 소진하며 방전에 이를 정도로 열심히 살아왔다고는 단언할 수 없다. 지금껏, 언제나 최선의 열정을 다하는 일만큼은 피해 왔다는 느낌이 든다. 그 뒤에 반작용으로 찾아올 공허와 허무가 두렵기 때문인지, 아니면 여전히 그럴 만한 가치의 일을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지. 좋아하는 일을 하든, 남들에 비해 비교적 잘하는 일을 하든 내가 최선을 다했던 적은 없었다. 어쩌면 그런 삶의 태도를 타고나기라도 한 것일까 싶기도 하다.


그럭저럭의 일상들로 삶을 꾸려 오다가 마침내 경찰 공무원 퇴사를 이루어냈을 때, 이런저런 목표들이 나에게 분명 있었지만, 나는 좀처럼 거기에 몰두하지 못했었다. 경제 블로그를 꾸준히 작성한다든가, 경제 관련 책을 쓴다든가, 유튜브를 해 나간다든가 하는 것들에. 갓난아기의 걸음마 수준으로 더디게 해 나가기는 했지만, 어떠한 열정을 가지고 임했다고 보기에는 상당한 무리가 있었다. 거기에는 분명, 퇴사 직후에 찾아왔던 가상화폐 상승장의 영향도 없지는 않았다.


나는 퇴사를 감행한 지 한 달 만에 지난 직장에서의 연봉만큼을 벌어들일 수 있었다.

그게 바로 내가 퇴사한 직후였던 작년 2월의 이야기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앞으로 돈 때문에 걱정하면서 살 일은 없겠다는 희망찬 미래를 꿈꿨고, 내가 나름의 노력을 들여 채워 나가고 있는 일상들을 굳이 유지하지 않아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버티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란 헛된 확신을 얻었다. 투자 초기에 겪었던 '초심자의 행운'으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던 셈이다. 나는 또다시 오만이라는 감정으로 내 마음을 채웠고, 그에 대한 심판은 서서히 소리 없이 다가오고 있었을 따름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당장의 수익을 믿고서 모든 일을 내팽개치고 방탕한(?) 생활을 이어갔다.


직장을 다니면서 가장 불만스러웠던 점 가운데 하나가 바로 수면이었다. 내가 원하는 만큼 잠을 잔 뒤 원하는 시간에 일어나는 하루를 사는 것, 그것이 내가 직장 생활 중에 그렸던 꿈 가운데 가장 커다란 꿈이었다(너무 소박했나). 나는 회사를 나온 뒤에 당장 스마트폰에 설정되어 있던 알람을 전부 꺼두었다. 그렇게 어느덧 나의 하루는 정오가 넘어서야 시작되기에 이르렀다. 이따금 알람의 울림 없이도 반사적으로 이른 아침에 눈이 떠지는 경우도 더러 있기는 했지만, 갈수록 빈도가 커져가는 게으름의 힘을 뚫고 나오기엔 한참이나 역부족이었다. 퇴사 직후의 나에게서 아침은, 완벽하게 자취를 감추게 되었던 것이다.


열 시간 이상의 수면을 취한 뒤 잠에서 깨어난 뒤에도 마땅히 특별한 일을 하지도 않았다. 컴퓨터를 켜 비트코인 가격을 나타내고 있는 차트를 들여다본다던가, 경제 뉴스를 뒤적거린 뒤에 유튜브 세상에 빠져드는 식이었다. LOL 게임을 중계하는 LCK 채널에 머무르며 모든 게임 중계를 챙겨보는 것이 내 일과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가끔씩 애니메이션을 챙겨보기도 하고, 넷플릭스를 보기도 하면서 나는 성실히 방탕한 방구석 생활을 영위해 나갔다.


이전까지 서로 시간을 맞추지 못해 떠나기 주저했었던 가족들과의 여행을 마음껏 떠날 수도 있었다. 형과 어머니, 그리고 조카와 함께 말 그대로 전국의 방방곡곡을 누비고 다녔다. 먹거리, 볼거리, 즐길거리들은 나의 게으른 일상 속에서 그 빛을 톡톡이 발해 주었다고. 대체 어떤 대단한 이유들로 여태 떠나지 않았던 걸까- 그런 생각으로 지난날들을 돌아보게 될 정도로 마땅히 삶의 즐거움을 누렸던 나날들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떠날 곳이 있고, 함께 떠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언제든 떠나는 것이 인지상정이지 않을까. 매번 강박적으로 떠나기를 권유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가끔은, 그 어떤 이유들을 불문하고서라도 잠시 일상 바깥으로 벗어나는 행위는 삶 속에 신선함을 불어넣어 주는 법이다. 여행지를 통해 삶을 환기하고,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도록 하는 여정은, 분명 우리 삶의 어느 순간엔가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꽤나 대책 없는 방탕한 나날들 속에서도, 가족들과 여행을 다녔던 일상만큼은 소중한 추억으로 여전히 마음속에서 빛나고 있다.


생각해 보면, 그 시기에는 당시 연인과의 오랜 다툼으로 스스로가 상당히 지쳐 있었던 것 같다. 내 삶 속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해 나갔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지만, 사랑에 대한 내 열정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불타올랐던 시기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지금까지 이렇게 맞지 않는 사람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극과 극의 사람을 만나, 만나고 헤어지고 만나고 헤어지고를 반복하면서 사랑에 대해 더 깊이 있게 생각하고, 스스로에게도 지독하게 파고들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해져서 좀처럼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기가 버거운 상태였지만, 그만큼 사랑에 대해 원 없이 탐구하고 실험할 수 있었던 값진 시간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결국 그녀와는 예정된 이별의 수순을 밟아야만 했지만, 성숙한 사랑이란 무엇을 말하는지, 어떤 사람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내 마음가짐이 어떠해야 하는지 등을 몸소 깨우칠 수 있었다. 어떤 의미로는 그녀에게 감사한 마음이다. 사랑할 수 없었고, 사랑하고자 했지만 결코 맞닿을 수 없었던 그녀였지만 말이지. 이제는 후회도 없고, 어떠한 미련도 마음속에 남아 있지 않다. 덕분에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의 존재 자체에 더욱더 감사하고, 매일을 사랑하고, 또 그녀로부터의 아낌없는 사랑으로 가득한 일상을 살아가게 되었으니 말이다. 결과적으로 긍정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마땅히 감사할 일이다.


퇴사 직후 6개월 동안은 말 그대로 내 삶 속에서의 커다란 쉼표와도 같았다. 이따금 불같은 사랑의 불길에 데기는 했지만, 그 외에는 별다른 걱정 없이 몸과 마음을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두었을 뿐이었다. LCK 채널, 애니메이션, 넷플릭스에 하루 종일 빠져 있거나 가족들과 여행을 가거나 하면서 이전까지 나를 부여잡고 있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끝없이 자유를 만끽해 나갔다. 하지만, 그런 시기 역시 일찍이 막을 내릴 수밖에 없었는데, 어디까지나 경제적 여유로부터 시작된 나날은 경제적 위기로 인해 다시금 저물어버리기 마련이다. 그 계기는 앞선 글에서 말했던 것처럼 새로운 위기이기도 했지만, 여유로운 나날의 종식과 함께 새로운 도전에 대한 의지를 불태워주는 하나의 기회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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