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늘 시험받기에
종교적인 믿음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지니는 모든 믿음은 종류에 상관없이 언제 어느 때이고 시험을 받는다. 인간은 나약하기에 자신의 생각을 쉽사리 관철할 수 없으며, 감정은 늘 우리 뜻대로 움직이지 않기에 순간적이고 미세한 변동에도 우리의 존재 자체를 흔들어버리기도 한다. 그러니, 지나친 관념화로부터의 탈피는 자연스러운 흐름이라지만,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행위는 언제나 시험을 받는다. 그 과정 속에서 오는 고통은 필연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런 고통을 서로 분담하면서 나아가는 과정이 연애라고 봐도 무방하다. 고통이 어느 한쪽으로 지나치게 쏠리는 순간, 이별의 문턱을 넘어버릴지도 모르니 항상 주의해야 한다.
다양한 연애에 대한 담론은 사랑에 대한 시험을 한층 더 무겁게 한다. 과거 서로의 혈액형을 묻곤 하던 시절, A형과 B형, 그리고 AB형은 성격상 연애를 해나가는 데에 어려움이 있다는 편견을 언제나 이겨내야만 했다(왜 O형은 무적의 혈액형이었는가). 소심하거나, 이기적이거나, 제멋대로인 성격은 연애에 늘 걸림돌이 된다는 엄청난 편견은 꽤나 강력한 것이었다. '혈액형 성격설'은 일본제국 시절 우생학자인 한 일본인이 정립한 것이라고 한다. 이 유사과학은 전 세계 통틀어 한국과 일본에만 퍼져있었다고. 실제로 그렇게까지 소심하지 않았지만, 나는 A형이라는 이유로 은근히 소심한 구석을 보일 때마다 "역시 A형이네" 하는 말을 들어야만 했다.
"저는 B형 남자랑은 잘 안 맞더라고요..."
그 시절 누군가의 사랑은 자신이 어찌할 바가 없는 혈액형으로 인해 좌절되기도 했고, 특정 혈액형이라는 사실이 연애 시작 전에 강한 어필이 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어이없는 상황들이지만, 소개팅에 나가면 처음 듣는 "MBTI가 어떻게 되세요?"가 있기 이전에 "혈액형이 어떻게 되세요?"가 있었다고 생각하면 그럭저럭 고개를 끄덕일 수는 있을 것이다. 누구 수혈할 사람 찾는 것도 아니고, 내가 그 피를 빨아먹는 뱀파이어도 아닐진대 서로의 혈액에 대해 묻고 다니다니. 한편으로는 재밌는 시절이었겠구나 싶기도 하다.
어느새 혈액형의 시대는 가고 각종 성격유형 심리 테스트들이 SNS를 떠돌기 시작하더니, MBTI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마이어-브릭스 유형 지표(Myer-Briggs-Type Indicator)의 줄임말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심리학자 '칼 융'의 분석심리학을 바탕으로 16가지의 성격 유형을 나눈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과학이네 유사과학이네, 믿네 안 믿네' 갑론을박으로 언쟁을 벌이는 것을 지켜보고 있자면, 다소 답답한 느낌을 받곤 한다. 한 분석심리학자가 나름대로 분류한 것을 좀 더 세분화해서 하나의 테스트를 만들어 본 것일 뿐, 그것은 과학도 아니거니와 믿음을 필요로 하는 분야는 더더욱 아니다. 누군가가 특정 성격 유형이 나온 것은, 그가 질문지에 그렇게 대답해서 제작자들이 만들어 놓은 그 유형으로 명명된 것일 뿐이다. 믿음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아무튼, A형으로서 고통받았던 지난날의 나는 T로서 또다시 고통받아야 했다.
혈액형과는 달리 MBTI는 테스트를 실행에 옮길 때마다 바뀔 수 있다는 담론(당연히 그 사람이 당시에 어떤 선택을 하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지기 마련) 덕분에 혈액형 때보다는 다소 덜 고통스러울 수 있었다. 그럼에도, 나와 비슷한 유형의 남자들이 SNS 이야기 속에서 가해자로 등장할 때마다 나는 연인에게 질타를 받아야 했다. 참으로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우리는 언제나 어느 집단에 속해있을 수밖에 없기에, 그 집단의 대세나 유행에 다소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혈액형 성격설과 MBTI 역시 그런 집단의 유행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인 것이다. 시대에 따라서 남성들이 선호하는 여성상이나 여성들이 선호하는 남성상은 비슷하지만 모습을 달리해 왔고, 그런 흐름은 다양한 잣대나 기준으로 대중들 사이에 퍼져 나간다. SNS는 우리에게 수많은 기준들을 지속적, 반복적으로 주입하여 자신의 상대 이성에 대한 기대치를 한껏 높여 놓았다. 그리고 마침내, 나만의 상대방으로 남으면 충분할 누군가가 모두에게도 이상적인 사람이어야만 한다는 다소 억지스러운 강박을 가지게 했다. 이런 세태로 말미암아 우리나라 사회에서 연애의 시작이 어려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우리는 모두가 완벽할 수 없다는 사실을 때때로 간과하곤 한다. 본인 역시도 완벽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넌 너무 T야"
그런 상대방에게 매력을 느꼈던 것도 오롯이 본인이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늘 성격 유형 같은 것들이 유행하면, 그 가운데 어느 한 유형은 지독히도 고통을 받곤 한다. 그 검사들은 자신과 상대방의 성격 유형에 대해 이해하고, 그 사람의 행동이나 생각에 대해서 더 깊은 이해를 도와주는 쪽으로 사용해야지, 비난의 의도를 가지고 사용해서는 안 된다. 그게 그 사람의 성격이라면, 더 존중하고 이해해 주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지나치게 이상화하며 자신의 연애 상대에 대한 기대를 부풀려 놓았을 때처럼 단점을 일축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연애에 대한 일반론들은 어디까지나 일반론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당신의 눈앞에 당신 곁을 지키고 있는 그 사람은 그 일반론들의 어느 유형엔가 가까울지 모르지만, 정확히 그 유형으로 정의할 수는 없는 고유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다른 연인들이 서로를 대할 때 어떻게 하고 있고, 어떤 식의 사랑을 하고 있는지는 어디까지나 참고 사항으로만 간주해야 한다. 지금의 우리와 모습을 달리 하고 있는 그 커플들의 기준을 굳이 나에게까지 끌어와 대입해 볼 필요는 없다.
서로 아끼고 존중하는 마음이 있는가 하는 문제는 그 사람과의 깊은 대화와 교류를 통해 확신해 나가야 하고, 믿어야 하는 것임을 늘 생각하도록 하자. 이 지구상에 80억이라는 숫자만큼의 다양한 사람들이 개인으로서 살아가고 있고, 비슷하지만 조금씩은 다른 80억 가지 사랑의 방식이 있다. 우리가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그 상대방의 사랑을 대하는 방식이 어떠한가를 파악하고, 그것이 내 마음에 드는지,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사랑의 방식이 그 사람에게 충분히 이해될 수 있고 존중받을 수 있는지인 것이다. 그런 고민들 속에서 사랑은 더 깊이 있고 찬란한 형태로 나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