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속에서 피어나는 꽃

한 떨기 꽃을 피우기 위해

인생의 모든 과정에서 그렇듯, 사랑이라는 과정 속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도 많다. 사랑에 빠지는 것에 대해서는 선택권이 없지만, 우리는 그것에게서 달아날지 마주 할지를 선택할 수 있다. 달아난다면, 그 감정의 소용돌이로 인해 소모되는 모든 것들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이성적 감각의 마비로 지금까지 자신의 것이라 상상할 수 없었던 탈을 쓰게 되는 경험과,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갖추어 놓은 정도(程度)를 넘나드는 각종 소모로부터의 해방. 우리는 대개 사랑에 빠지면 통제를 잃기 때문에, 그런 상태에서의 시간, 자원, 감정 등의 손해는 홀로 인생을 살아온 나날들과 비교해 봤을 때 막대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달아나는 선택을 용기가 없다고 함부로 폄하할 수 있는 사람은 지금껏 사랑에 빠져보지 않은 사람들뿐일 것이다. 사랑으로부터 달아나는 것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선택일 수 있다.

하지만, 앞선 글에서 밝혔듯이 사랑은 언제, 어디서 찾아올지 모른다는 점에서 '사고'이기도 하지만, 경우에 따라 '행운'에 비견될 수도 있다. 사랑에 대해서 만반의 준비를 갖춘 사람에게 찾아오는 경우가 그러하고, 달아난 기억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는 와중에 그것이 '행운'이었다고 뒤늦게 반추하는 경우가 그렇다. 지난날에 가지지 못했던 선택들에 대한 후회는 그것의 실제 성격이 재앙이었는지 아니었는지와는 상관없이 미화되곤 한다. 늘 모든 선택은 양날의 검이 되어 우리에게 돌아온다. 

반대로 사랑을 마주하는 선택을 한다면, 언급한 대로 엄청난 인생의 소모를 감당해 내야만 한다. 그러는 가운데 새로운 모습의 자신과 마주하게 될 수 있으며, 마치 세상에 갓 나온 아기가 그러하듯 이것저것 만져보고 입에도 넣어보면서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색다른 경험들을 쌓아나갈 수가 있다. 그 경험들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사람이라면 응당 한 번쯤은 겪어볼 만한 경험임에 틀림없다. 나 역시, 그런 사랑에 정신없이 빠져들었던 순간이 있었다. 사랑과 마주하기 전까지 내가 결코 감당해 내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던 편견들을, 거대한 망치를 어디선가 끌어와 스스로 깨부수기도 했고, 나를 걱정하는 주변 사람들의 만류에도 콧방귀를 뀌며 뿌리쳐가면서 그 사람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기도 했다. 때로는 생전 처음 겪어보는 뼈아픈 감정통에 눈물을 쏟기도 했었다. 그것은 행복이었다기보다는 헌신과 희생에 가까워 고통스러운 면이 더 컸지만, 그런 과거의 선택들에 대해서 결코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또다시 그런 순간을 마주한다 해도 지체 없이 온몸을 내던져 이전에 했던 것처럼 같은 행위를 반복할 자신도 있다. 오직 그 순간만을 위해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말이다. 왜 그런 소모적인 것들을 해야 하나, 요즘 손해 보기 싫어하는 세태에서는 충분히 반문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역경을 이겨내고 핀 꽃이 가장 아름다운 꽃

법정 스님이 했던 말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디즈니 애니메이션 뮬란에도 나오는 대사인 듯하다. 니체의 철학과도 결을 같이 하는 이런 문장들을 특히 사랑하는 편이다. 출처야 어찌 되었든, 이 말에 의문을 가지는 사람은 역경을 헤쳐나간 적이 없는 사람일 것이다. 고난과 시련을 이겨내고 목표한 바를 이루어 내는 경험은 그 무엇보다 값진 것이 되어 그 사람을 성장케 한다. 그 경험 중에서도 '사랑'은 한낱 소녀와 소년에 불과했던 사람을 어엿한 어른으로 성장시키는 데 특화되어 있다 할 수 있겠다. 

온전히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헤아리는 것은 하나의 우주를 헤아려 보는 것과 같다. 나아가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자신의 우주를 채 이해하기도 전에 자신의 것과도 같은 수수께끼의 세상을 탐험하는 행위가 된다. 그러니, '세상 만물에 대한 인간의 호기심 끝에 존재하는 궁극의 호기심은 이성(異姓)에 대한 호기심이 아닐까' 하는 의문은 전혀 과장된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우리 개개인의 우주는 끝없이 광막하다. 우리는 한 사람의 과학자가 되어 우리의 우주를 또 다른 소중한 우주와 견주어 보며 여러 실험을 거듭하는 과정 속에 놓이게 된다. 그 과정에서 당연히 실패를 연달아 경험하게 될 것이며, 때로는 몸과 마음이 부서지는듯한 고통에 몸부림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껏 밝혀진 많은 과학적 사실들이 그러하듯, 우리는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계속해서 나름의 결론과 꽤나 괜찮은 성과를 얻어낼 것이다. 그 결과물들은 자신에 대한 이해를 한층 더 높여줌과 동시에 인생에 대한 전반적인 깨달음을 가져다준다. 우리의 조상 유전자들이 똑같은 과정을 거쳐온 것처럼 말이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인간(人間)이기에, 홀로 독립한 상태로 인생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은 심히 버거울 수밖에 없다. 나 이외의 다른 사람, 그것도 내가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 볼 수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행운이자 축복인 것이다. 인생에 그보다 더 값진 경험이 있을까 싶다. 나는 내가 쌓은 지식들을 토대로 역사적, 진화심리학적으로도 감히 그렇다고 말할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나의 직감과 본능이 인간으로서 평생 홀로 살아가기를 거부한다는 사실을 안다. 그렇기에 나는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사람들 사이에 뛰어들어, 그 무엇보다 소중한, 심지어 나 자신을 포기하면서까지 함께이고 싶은 사람을 한번 찾아보라고. 그런 뜨거운 경험, 살면서 한 번쯤은 해보고 싶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