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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필 Sep 25. 2024

책임과 헌신

우리는 서로 다르기에


우리는 사랑을 시작하기에 앞서 자신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이해를 해야만 한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사랑의 형태라든지, 그 사람에게서 어떤 것들을 원하는지를 설정해 놓을 필요가 있다. 가만히 내버려 두면 도망가려고만 하는 사랑일진대, 이 정도 노력은 해야 첫 단추라도 훌륭하게 꿰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의 내용은 어디까지나 일반론적인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다. 무엇이 되었든 맥락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가장 큰 틀에 대한 이해에서부터 개인적인 방향으로 흘러가야만 하기에, 우리는 가장 먼저 우리의 성별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만 한다.


바야흐로 양성 평등의 시대가 도래했지만, 역설적으로 우리의 다름에 대해서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진정한 평등에 이를 수 없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사회적인 차원에서뿐만이 아니라 사랑에도 마찬가지로 적용해 볼 수가 있다. 수많은 에세이나 짧은 글들에서 말하곤 하는 사랑에 대한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정의를 포함해서, 각종 SNS에 떠도는 다소 구체적인 연애 관련 콘텐츠들과 그 반응들을 보다 보면 이성 간의 차이는 꽤나 명확히 드러난다. 단순히 일반적인 남자의 이상형과 여자의 이상형이 천지 차이라는 점을 떠올려 본다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수많은 차이들이 있겠지만 여기서는 시대가 흘러감에도 변하지 않는, 그리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근본적인 요소를 짚고 넘어가 보려 한다.


'화목한 가정'이라고 하면 어떤 풍경이 떠오르는가. 내가 생각하는 화목한 가정은 이러하다.

해가 저물어 가는 저녁, 아내는 아이를 포대기로 업은 채 집안일을 어느 정도 마무리하고 부엌으로 가 저녁을 준비한다. 재료를 칼로 손질하는 소리가 집안에 잠시 울려 퍼지더니 구수한 찌개 냄새가 은은하게 집 안에 퍼질 때쯤, 현관문이 열린다. 하루의 고된 일과를 마치고 돌아온 남편. 아내는 오늘도 고생했다는 말을 남편에게 웃으며 건네고, 남편 역시 당신도 고생했다는 말과 함께 가볍게 아내의 얼굴에 입을 맞춘다. 포대기에 업힌 아이에게도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누군가는 시대착오적인 상상이라고 비난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인간에게 이런 비슷한 형태의 가정은 수렵채집사회에서부터 지금의 사회에 이르기까지 몇십 만 년간 유지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전통적이고 정형화된 가정의 형태라 할 수 있다. 나는 본능적으로, 직관적으로 내가 그려본 이런 분위기를 풍기는 가정의 모습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어떠한가?


나와 비슷한 그림을 그려보는 이들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기도 했고, 애를 낳지 않겠다는 부부들도 있고, 심지어 내가 상상했던 그림에서 남녀의 역할이 바뀐 그림을 꿈꾸는 이들도 더러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이 진정 어떤 욕구들을 유전적으로 지니고 있는 성별인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디까지나 일반적이고 전통적인 가정의 모습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남성에게 사랑은 다른 말로 '책임'이다. 자신의 가정에 지속적으로 자원을 제공하여 자신의 유전자를 보전하려는 남성의 오랜 노력은 책임감이라는 시스템으로 전승되어 왔다. 그러한 책임 하나로 맹수들 앞에서도 도망치지 않고 맞서 싸울 수 있었고, 전쟁에 임하면서도 물러서지 않고 적을 쓰러트리며 공을 세울 수 있었다. 자신의 생존이 위태로울지라도 남성은 기꺼이 가정을 위해, 사랑을 위해 몸을 던질 준비가 되어 있다. 그가 진심으로 한 가정을, 한 사람을 사랑한다면 말이다. 


여성에게 사랑은 '헌신'이다. 남성이 바깥세상에 온몸을 던져 희생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성에게 있어서 유전적으로 주어진 출산과 전통적인 과제였던 육아는 그 자체로 본인에게는 상당한 희생이라 할 수 있다. 바깥에서 고생하는 남성을 위해 안정적이고 편안한 휴식처를 제공하면서 육아를 온전히 떠맡으며 헌신해 왔기 때문에 지금까지 유전자를 남겨올 수 있었던 것이다. 여성이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기꺼이 가정을 꾸리고 싶어 하며 출산의 고통을 견딜 각오 또한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여성이 책임감이 강한 남성을 선호하고, 남성이 헌신적인 여성을 선호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현대 사회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그런 이성을 찾고 있다. 진화심리학적으로 유전적인 기제가 그런 선호로 우리들을 이끌고 있으며, 우리는 본능적으로 이를 쉽게 거부하지 못한다. 이런 배경에 대한 이해는 사랑을 시작함에 있어서 우리에게 하나의 커다란 지침을 제공해 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남성에게는 내가 누군가를 책임질 만한 역량이 있는지에 대해 헤아려 보는 것, 여성에게는 내가 누군가에게 헌신할 수 있는지를 먼저 검토해 보는 것은 꽤 괜찮은 사랑의 출발점일 것이다. 그런 지점에 설 수 있게 되었다면,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 상대 이성의 책임과 헌신에 대해 살펴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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