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봉필 Sep 27. 2024

계산적으로 사랑하기

언제 어느 때이고 헤아려야 한다


흔히들 사랑은 가슴이 시키는 거라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인 버즈 역시 그렇게 노래했고, 꽤나 많은 사람들이 이성을 마비시키는 짜릿한 그 감정을 사랑으로 받아들이며 공감을 표했다. 하지만, 내 생각에 그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사랑에 빠지는 것 자체는 가슴이 시키는 것이지만, 사랑을 할 때에는 머리로 헤아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중고등학생 때 수학을 포기한 채로 입시 지옥에 뛰어들었다고 해서 사랑에서도 똑같은 태도를 견지한다면, 대학 입시 때의 실패보다 더 쓴 고통의 맛을 보게 될 것이다. 셈하지 않는 자, 상처를 받을지니.


물론, 사랑에 빠지는 단계에서는 계산이고 뭐고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처음부터 까다로운 조건을 계산적으로 세우고 사랑에 빠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철옹성 안에 스스로 들어가 자물쇠를 채우고 백마 탄 왕자님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 나는 계산적으로 사랑에 빠지라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사랑을 하기 시작했다면, 계산도 함께 시작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애초에 사랑에 빠지는 것 자체를 우리가 의도적으로 헤아린다는 행위가 가능할 리 만무하다.


서로에게 호감이 있음을 느끼고, 매일 새롭게 마주하는 그 사람의 매력 앞에 더욱더 호감이 증폭되어 가는 시기에는 계산 자체가 불가능하다. 온전히 가슴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도 벅찬데, 이성적인 감각을 붙들어 매고 그 사람을 인수분해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요즘 사람들이 말하는 '썸', 그리고 연애 초반의 단계를 넘어서 어느 정도 그 사람에 대해서 내가 '안다'라고 말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수능을 앞둔 수험생의 마음가짐으로 서랍 깊숙이 잠들어 있던 계산기를 꺼내 들어야 하는 것이다. 하루하루 행복한 나날들이 휘몰아쳤던 사랑의 소용돌이 속에서 잠시 이성의 끈을 붙잡고, 동시에 상대방도 붙잡아 진정시킨 상태에서 서로 마주 보도록 하자.


"거세게 불어닥치는 사랑이라는 소용돌이가 이 사람을 내 눈앞에 데려다 놓았다. 그런데, 이 사람 과연 나에게 어울리는 괜찮은 사람일까. 내가 별 시답잖은 이야기를 해도 웃어주고, 아무 생각 없이 했던 말들을 기억해 뒀다가 내가 잊어갈 때쯤 은근슬쩍 챙겨주기도 한다. 피곤에 찌들어서 삶에 지친 날이면 짧지만 긴 여운이 남는 응원의 한마디도 건네어주곤 한다. 그리고 내 일이라고 하면 자기가 하던 일이 무엇이든 다 접어두고 내 말과 행동에 눈과 귀를 집중시킨다. 꽤나 기댈 만한 사람인 듯하다.


하지만, 가끔씩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때가 있다. 이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내색하는 것을 본 적이 없어서 취향이라는 게 있기나 한 건지 모르겠다. 가끔 친구들과 약속을 간다고 하고는 한참을 연락이 되지 않았던 적도 있다. 스마트폰을 잠시 술집 화장실에 놓고 온 것이라는 말로 일단락되기는 했지만, 어쩐지 찝찝하다. 이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것은 확실히 느껴지는데, 가끔은 이렇게 무심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신경을 안 쓰기도 한다. 이따금 서운한 감정을 그 몰래 숨기고는 있는데, 이걸 터뜨리는 날이 우리가 처음 싸우게 되는 날이 될 것만 같아 조금은 두렵기도 하다. "


딱 이맘때쯤 사랑은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이전까지는 서로의 마음에 끌려 호감을 느낀다는 사실을 확인받고 서로에 대해 이상적으로만 사고하고 느끼는 단계에 불과했다. 우리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물음표에 대항하기 위해 누가 시키기도 전에 자연스럽게 계산기를 꺼내어 들 것이다. 마냥 좋아 보이기만 했던 사람의 단점들에 대해 헤아리는 시간은 그렇게 어김없이 찾아온다. 노파심에 이야기하지만, 흔히들 말하는 '좋은 남자 특징 10가지' 혹은 '절대 놓치면 안 되는 여자' 같이 요란스럽게 떠도는 기준들에 상대방을 맞추려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나와 그 사람의 모습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되, 자신의 생각과 상대방의 생각을 교환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을 통해 방정식을 풀어나가야 한다.


가장 중요한 출발점은 스스로에 대한 점검이다. 사실 많은 연인들이 상대 연인에 대한 요구를 우선적으로 생각하여 관계를 쉽게 무너뜨리곤 한다. 그 사람이 나에게 맞는 사람인지 헤아리기 전에, 내가 그 사람에게 어울리는 사람인지를 생각하는 것이 먼저다. 상대방이 어떤 사람을 원하고, 나와 만남을 이어가고자 하는 이유에 대한 우선적인 고려는 그 뒤에 이어지는 계산들을 보다 쉽게 풀어나갈 수 있게 해 준다. 우리는 스스로가 사랑을 시작하기에 적합한지, 충분한 마음의 여유가 있어 헌신적인 여성, 혹은 책임감 있는 남성이 될 수 있는지, 당장 부족하다면 어느 부분이 부족한지에 대해서 먼저 생각해야만 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을 거치면서 상대방과도 충분한 대화를 이루어나가는 것이 가능하다면, 사랑은 조금 더 단단해질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대화'를 연애의 필수 요건으로 삼는 것은 이런 이유들 때문일 것이다. 반대로 이런 과정들을 헤쳐나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사랑은 빛을 채 발하기도 전에 식어버리고 만다. 그렇게 된다고 해도 낙심할 필요는 전혀 없다. 나 스스로가 사랑하기에 충분한 사람이라면, 사랑의 열정을 함께 불태울 수 있는 짝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계산의 목적은 사랑을 제대로 하기 위함도 있지만, 적합하지 않은 상대일 때에는 과감하게 멀어지기 위해서라는 목적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모든 사랑과 연애는 이런 계산의 연속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시점엔가 상대방이 갑자기 변할 수도 있고, 내 상황이 더 이상 마음의 여유를 간직할 수 없을 만큼 망가져버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유한한 공간과 시간, 정신의 제약을 받기 때문에 한 번에 원하는 것들을 모두 얻을 수는 없는 운명이다. 계산은 머리 아프게 계속될 수밖에 없다. 때로는 잘못된 계산으로 상대를 상처 주기도 하고, 때로는 스스로 계산 착오에 빠져 스스로를 상처 입힐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마도 멈추기 힘들 것이다. 무료한 삶 속에서 사랑이라는 특별한 감정과 상태에 욕심내지 않을 수 없으니까. 과연 수학을 포기할 때처럼 그렇게 쉽게 던져버릴 수 있을까.

이전 07화 책임과 헌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