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최악의 선택이 최선의 선택일지도
이별에 대한 결심을 굳혔다면 남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 '어떻게 이별하는지'이다. 단순히 문자 한 통으로 끝낼 수도 있고, 직접 만나 마지막 단 한마디를 위한 단계를 순차적으로 밟아나가며 끝끝내 이별의 말을 통보할 수도 있다. 혹은 그 어떤 것도 하지 않고 혼자서만 묵묵히 마음의 셔터를 내리고 문을 걸어 잠그는 이른바 잠수 이별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방법 좋고 나쁨을 따지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이별의 마음이 둘 중 어느 하나에게 있다면, 그 둘의 관계는 이미 끝이 난 것이나 다름없으니 말이다. 다른 한쪽이 붙잡고 매달린다 해도 이별에 대한 결심을 꺾을 회심의 한 방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편이다. 각종 만남이나 재회 플랫폼들에서 돈을 받고 떠들어대는 조야한 말들을 나는 귀담아듣지 않는다. 그로 인해 좋은 만남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믿지도 않는다. 단순히 인간의 진화 심리학적인 기제나 뇌 과학에 기반하여 결심을 굳힌 사람을 착각하게 만들거나 사랑 뒤에 남는 자잘한 감정들에 의지하게끔 끌어내리는 것일 뿐, 근본적인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여기지는 않기 때문이다. 단 하나의 방법이 있다고 한다면, 어디까지나 한 사람의 마음을 돌리는 것은 상대방의 진심에 달려있을 뿐이다.
애초에 좋은 이별이란 없다. 이런 전제를 바탕으로 글을 읽어주었으면 한다. 이별은 결코 가벼이 입에 올릴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그렇다고 한번 떠오른 이별이라는 상념을 함부로 덮어서도 안 된다. 어쨌든 우리가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언제나 필연적인 이별을 짊어진 채 나아가는 것과 다를 게 없다. 그 이별을 잠시 앞당기고자 하는 마음이 들었다면, 그리고 그런 결심을 세웠다면, 다 그만한 사연이나 근거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직 아름다운 이별은 어느 한쪽의 생이 다하는 지점에서만 입에 올릴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역시 좋은 이별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것은 매한가지이다.
이별을 원하는 사람이 택하는 이별의 방식만이 언제나 최선의 선택이 된다. 애초에 이기적으로 시작한 연애를, 이기적인 내 생각과 마음으로 끝내려 하는 것이 아닌가. 끝에 와서 상대방에 대한 배려나, 상대를 위하는 마음은 접어두도록 하자. 그 어떤 말로 포장하고 조심스럽게 다룬다 해도, 이별을 원하지 않는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더없이 치졸하게 느껴질 뿐이다.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에 숨은 가장 간결한 그 메시지만을 전달하면 그만이다. 그저 문자 한 통으로 끝내고 싶은가? 그래도 된다. 만나서 진심을 털어놓고 싶은가? 그래도 된다. 그저 연락을 모두 차단한 채 그 사람에게 어떠한 말도 남기고 싶지 않은가? 그래도 된다. 이별과 배려를 뒤섞어 상대방에게 괜한 미련을 남겨주지는 말자.
"내가 이런 사람을 사랑했었다니"
자신이 떠올릴 수 있는 가장 최악의 선택(범죄 행위 같은 불법적인 것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을 하는 것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앞으로의 사랑으로 확신을 갖고 나아갈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최선의 방법이 될 수도 있다. 마음의 상처를 주거나, 혹은 이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 듯 이별을 말하는 식의 최악의 선택은 그렇게 극한의 배려로 둔갑하기도 한다. 어떠한 미련이나 잔감정들을 남기지 않은 채 멀어지는 그런 방식들이 진정한 이별일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는 언제나 새로운 사랑을 맞이하기 위해 손에 쥐고 있던, 가슴속 깊이 간직하고 있던 것들을 과감히 내려놓아야만 한다. 앞으로 찾아올 소중한 것을 보관하기 위해서 말이다.
언제나 한계가 있다는 사실은 인지해야 한다. 내가 인간이듯, 상대방 역시도 인간이다. 이별을 말하는 순간까지, 그리고 그 이후에도 말끔히 한 사람을 잊는 것이 불가능하듯, 상대방에게 그 어떠한 짐도 안겨주지 않는 이별의 방식이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어느 쪽인가 하면, 언제나 상처를 주는 쪽이었다. 나쁜 기억이나 억울했던 감정들, 관계에서 찾아왔던 어려움이나 이별 이후의 고통들은 비교적 잘 이겨내는 편에 속한다고 자부해 왔기 때문이다. 끊어내지 못하는 관계에 서로 끙끙대고 있을 때면, 나는 과감히 그런 고통들을 홀로 짊어질 각오로 칼을 빼들어왔다. 스스로를 '이별 전문가'라 칭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나의 그런 행동들이 지난 상대방들에게 앞서 말한 것처럼 배려가 되기를 딱히 바란 것도 아니다. 그저, 나는 지지부진한 관계를 손에 쥐고서 안달복달하며 망가져가는 서로를 보고 싶지 않은 이기적인 마음을 가졌을 뿐이다.
이러나저러나 우리들은 이기적인 결단과 선택을 거듭하며 나아갈 수밖에 없다. 이별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면, 오로지 자신만을 생각한 그 길로 나아가면 된다(다시 한번 말하지만 범죄는 안 된다). 이 글은 단지 그런 확신을 해도 괜찮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을 뿐이다. 관계에 얽힌 부정적인 감정과 흐름으로 인해 내 인생이 위협을 받고 있어 그것을 끝내는 것이니, 그 방식은 아무래도 좋다. 그저, 100% 만족스러운 이별, 0% 불만족스러운 이별 같은 것은 없다는 사실을 이해한 채, 스스로와 상대방에게 솔직하면 된다. 어차피 상대방에게, 그리고 나에게도 언제나 이별은 이별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