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관성은 아닌지 의심하기
누구나 이별 뒤에 그리움이라는 감정을 맞이하게 된다. 그 감정을 받아들이는 개인이나, 혹은 지난 사랑에서 나누었던 애틋함의 정도, 그리고 제각각일 수밖에 없는 이별의 원인들에 따라 그 감정의 크기에 있어서 천차만별의 차이를 보이지만, 언제나 이별한 우리들을 찾아온다는 사실에서는 변함이 없다. 일종의 관성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별 전까지 일정하게 이어져왔던 관계를 끊어낸다는 것은 그 관성을 이겨낸다는 말과 같다. 하나였다가 둘이 될 때 싱숭생숭한 마음이 들듯이, 둘이었다가 하나가 됐을 때도 마찬가지로 그런 감정이 찾아오는 것이다. 전자가 설렘이라는 말로 포장되는 것이라면, 후자는 그리움이라는 말로 포장된다. 지난 연인에 대한 '그리움'은 생각보다 그리 특별한 감정이 아니다.
물리학에서 뉴턴의 운동법칙 중 제1법칙, 즉 자연 현상인만큼 우리는 이 감정을 어떤 특정 법칙에 의해 느낄 수밖에 없다. 우리가 어떤 노력을 하든 웬만해서는 별 소용이 없을 것이다. 그저, 그리움이라는 감정이 어떤 식으로 닥쳐오든지 내 안에 머물다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혼자만의 일상에 집중하든 새로운 사랑을 찾기 위해 눈을 돌리든 나름의 노력을 해볼 수는 있을 것이다. 다만, 당분간은 이 관성에 의해 우리의 감정은 잠식당하며 가라앉을 수밖에 없다. 그나마 시간이 우리 편이라는 사실은 그런 우울함 속에서 꽤나 위안이 된다.
"남자는 자유를 즐기다 뒤늦게 슬픔에 젖고, 여자는 슬픔에 허우적댄 뒤 자유를 만끽하게 된다"
SNS 같은 공간에서 흔하게 돌아다니는 말이다. 꽤나 오랜 세월 돌아다니고 있는 것을 보면 많은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얻고 있는 말인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어느 정도 심리학적인 이유를 근거로 들 수 있다. 일반적으로 여성은 관계지향적이고, 남성은 목적지향적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때문에 이별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태도에서도 성별에 따라 명확한 차이가 드러난다.
목적지향적인 남성은 관계가 끝이 난 순간, 사랑이라는 하나의 목적에서 벗어난 자유와 해방감을 느끼게 된다. 남성은 관계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기보다 보통 자신의 의무나 책임으로써 연인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그와 같은 하나의 족쇄로부터 벗어났다는 사실을 관계를 잃었다는 아픔보다 더 크게 느낀다. 따라서, 초반에는 그리 큰 슬픔을 느끼지 못하다가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시간적 여유가 많아졌을 때 목적을 갈구하게 되면서 그리움과 슬픔이 한꺼번에 몰려오곤 하는 것이다.
여성은 관계가 끝이 나면 관계지향적인 성격 때문에 그런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 진정 서로가 좋아하는 연인이라는 가정 하에, 관계가 위기를 맞을 때 더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최대한 관계를 끝내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쪽은 일반적으로 여성이다. 이는 어떤 관계이든 그 상실의 아픔과 고통을 남성보다 훨씬 더 크게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역시 시간이 흐르면 무뎌지기 마련이다. 앞서 말했듯 그런 그리움은 관성의 성질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그 슬픔과 고통은 서서히 경감될 뿐이다. 그리고 여성은 그렇게 일정 시간을 두고 떠나보낸 관계에 있어서는, 그리 긍정적인 평가를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똥차 가고 벤츠 온다"
이런 말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는 진화심리학적으로 어느 정도 설명이 가능하다. 주로 남성보다는 여성들이 많이 공감하고 또 좋아하는 말인데, 여성의 지극히 계산적인 생존과 번식 전략으로부터 파생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태초부터 임신과 출산이라는 위험 요인을 떠안고 있는 여성으로서는 자원을 지속적으로 배분해 줄 만한 남성과 좋은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것을 지향해야 했다. 한 번에 한 명의 아이만, 그것도 열 달이라는 긴 준비 기간을 거쳐 출산할 수밖에 없으니 딱 한 명의 친밀한 남성과 관계를 맺는 것이 여성에게는 유리하다. 자칫, 여러 명의 남성들과 관계를 맺다가는 부성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그 누구로부터도 확실한 보호와 자원의 분배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기제들로 인해 단 한 명의 건실한 남성에게만 깊은 관계를 맺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하니, 지난 연인들에 대한 미련은 최대한 가지지 않는 것이 여성의 입장에서는 더 유리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관심이나 미련을 남겨두어 현재의 관계에서 버림을 받게 되는 것만큼 비극적인 일은 없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여성들은 헤어진 연인에 대해 '똥차'라는 표현까지 붙여가며 머릿속에서 최대한 부정적으로 인식하게끔 진화했다고 한다. 과거의 관계에 관심을 분산하기보다는 현재의 관계에 더 집중하는 편이 더 나은 생존과 번식 전략이니 말이다.
반대로, 남성의 입장에서는 지난 연인들에 대한 평가를 긍정적으로 남기는 것이 훨씬 더 나은 번식 전략이 된다. 임신과 출산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남성은 최대한 많은 유전자를 남기는 쪽으로 번식 전략을 수정해 왔다. 그래서 지난 연인이 아무리 모질게 굴었다 해도, 남성은 전 연인을 여성에 비해 꽤나 긍정적으로 인식한다. 어쩌면 한 번이라도 더 관계를 맺어 자신의 유전자를 보전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 이별 후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잘 지내?'라는 연락을 여성에 비해 남성 쪽에서 더 많이 보낸다는 사실은 그리 놀랍지 않은 일이다.
이토록 우리는 그리움이라는 감정에 대해서 보다 이성적인 접근을 해볼 필요가 있다. 단순히 둘에서 하나가 되어 허전한 마음이 그리움으로 번진 것인지, 정말 괜찮은 연인 관계를 유지했었고 더 나은 노력을 해볼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에서 온 그리움인지, 혹은 관계를 끝낼 당시의 원인과 이유를 분명히 하고 해결 가능한 것으로 판단하고 그 연인과의 관계 개선을 그리고 있는 것인지를 말이다. 슬픔에 허우적대고 감정에 잠식당해 어리석은 판단으로 섣불리 만남을 종용하는 행위는 지양하도록 하자. 어차피 단순한 감정적인 이유에 그치는 것이라면, 관계는 또다시 고통과 불행을 반복할 뿐이다. 시간을 천천히 흘려보내면서, 좀 더 차분히 생각해도 결코 늦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