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이유로 헤어짐을 반복할 뿐이라면
이별은 언제나 새로운 고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여러 번에 걸쳐 경험한다 하더라도 좀처럼 내성은 생기지 않고, 되려 하면 할수록 더 아파오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매번 그런 고통들을 마주하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면서 신중하게 사랑을 시작해 보려 노력하지만, 어느새 다가와 있는 이별의 순간에 더 깊이 좌절하고 절망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과연 헤어지지 않을 수 있는 만남이란 있기나 한 걸까, 내가 좀 더 노력할 수 있는 부분을 간과한 것은 아닐까, 정말로 이 사람과의 관계에 최선을 다하기는 했었나. 수없이 떠가는 물음들 속에서 '재회'라는 하나의 길이 칠흑과도 같은 어둠 속을 밝혀주기도 한다.
숱한 이별로 서로를 단련하며 만남을 이어가는 커플들의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 종종 들을 때가 있다. 그런 식으로 피곤하게 연애를 어떻게 하지? 나 같으면 진즉 헤어졌을 것 같은데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토록 극단적으로 날을 세워가면서도 만남을 이어가는 걸까. 나 역시도 그런 연애를 겪어보기 전까지는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여러 차례 헤어지고도 만남을 이어갔던 경험을 토대로 확실히 깨닫게 된 사실들이 있다.
그런 커플들의 대부분은 서로 지겹도록 맞지 않는 부분들이 넘쳐나지만, 아직까지 서로에 대해 가지고 있는 호감을 덜어내지 못한 경우일 것이다. 언제나 완벽할 수 없는 인간이기에, 사랑에 있어서도 어리석은 선택을 곧잘 하곤 한다. 때때로 극복 불가능해 보이는 결점이라 할지라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을 가지게 될 수도 있고, 절대 맞물릴 수 없는 두 톱니바퀴의 운명을 억지로라도 거스를 수 있다고 착각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런 오해로 인해 서로에게 스트레스를 주지만 서로에게서 멀어지지 못하는, 동물원 우리에 갇힌 한 쌍의 다른 종들이 되고야 마는 것이다. 이런 관계는 뻔하게도 극심한 감정 소모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
위와 같이 언급한 경우에서의 재회는 하나의 희망을 상징한다기보다는 '재앙'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여러 차례 이별을 겪으면서 서로의 머릿속에는 둘의 만남을 더 이상 핑크빛으로 물들이기는 힘들겠다는 생각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게 될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그들은 벗어날 수 없는 하나의 저주에라도 걸린 사람들처럼 앙상하게 말라가는 서로를 마주하며 사랑한다는 말을 속삭인다. 이런 만남에서의 재회는 그야말로 하나의 덫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이런 사람들에게 상대방과의 나날들이 스스로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한들, 그들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서로에게 목매는 지독한 관계에서는 그저 둘 중 한 명의 감정이 밑바닥까지 소모되도록 고통의 시간을 흘려보내는 방법밖에는 없다.
"그래도, 다시 한번"
극단적으로 만났다 헤어짐을 반복하는 경우를 제외하더라도 다시 만나도 같은 이유로 헤어지는 것이 대부분의 경우이지만, 제대로 된 의미에서의 재회가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오히려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는 니체의 말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이별이라는 고통을 담대히 받아들이고, 관계에서 오는 문제점들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가운데서 꽤 괜찮은 해결책들을 제시할 수 있다면, 우리는 한층 더 견고한 관계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 오히려 헤어질 것이라는 두려움에 말하지 못했던 상대방의 단점과 같은 것들을 이별 이후에는 속시원히 말할 수 있게 된다거나, 혹은 한번 겪었던 이별의 고통을 두 번 다시 겪지 않기 위해 이전보다 더 관계에 노력을 기울이게 되는 일도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잃기 전에는 몰랐던 익숙함이라는 소중한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를 가져다준다는 건, 몇 안 되는 이별의 훌륭한 장점 가운데 하나이다.
거의 사랑의 모든 과정들에서 그렇긴 하지만, 특히나 재회에 대해 생각할 때에는 철저히 이성적이 되어야 한다. 단순히 하나의 나뭇가지를 잘라내는 가지치기가 아니라, 하나의 줄기를 베어낼지 말 지에 대한 선택의 문제임을 명심하자. 지난 만남에서 어떤 어려움들을 겪었고, 그것이 현실적으로 극복 가능한 것들인지에 대해서 심도 있는 고민을 거쳐야 한다. 우리의 일생은 유한하다. 당장에 마음이 맞지 않고, 맞춰보려 노력했음에도 극복하지 못했던 사람과의 두 번째 만남으로, 자칫 새로운 사랑에 대한 기회를 놓쳐버리게 될 수도 있음을 잊지 말자. 어디까지나 서로에 대해 솔직한 마음들을 털어놓고, 부족한 서로이지만 어디까지 노력해 나갈 수 있는지를 이성적인 대화로 알아가는 과정은 본격적인 재회에 있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그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는 감정적인 절규는 잠시 억누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앞으로 만날 사람들의 수는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에 비해서 결코 적지 않은 것이다. 우리가 끊임없이 변화해 가는 만큼, 우리가 선호하는 이성상도 변화해 가기 마련이다. 언제나 같은 순간에 머무를 수 없기 때문에 굳이 지금 그 사람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사실 정도는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자연히 알 수가 있다. 당장에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나 자존감이 부족한 사람만이, 단 한 사람을 위한 재회에 목매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혹시 격한 감정의 지배를 바탕으로 지난 사람과의 재회를 바라고 있다면, 먼저 본인에 대한 감정을 추스리기 바란다. 그런 사람들에게 재회는 언제나 커다랗고 고통스러운 덫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