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사랑으로 트라우마 극복하기
이별 후에 충분히 자신을 점검할 시간을 가졌다는 판단이 선다면, 얼마의 기간이 지났든 새로운 사랑을 찾아 나서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최소 몇 개월은 연애를 하지 말아야 한다', '최소 얼마 간은 이별을 곱씹을 시간을 가져야 한다'와 같이 SNS에서 정답인 것처럼 떠다니는 말들은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기준일 뿐이지, 결코 객관화될 수 없는 것들이니 말이다.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은 칼로 무를 썰듯이 깔끔하게 도려내어 집어던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만의 기준으로 얼마든지 그런 것들을 정의하고 해부해 볼 수 있다. 우리는 개개인 모두가 사랑을 행하는 당당한 주체이니까.
지난 사랑에서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아들러의 말을 빌리자면, 기억이라는 것은 하나의 사건이나 사고일 뿐이지 결코 우리의 삶에 영향을 끼칠 수는 없는 것이다. 그 심각한 상처라고 할 만한 것도 역시 하나의 기억일 뿐이고, 우리가 상처로 해석하거나 정의 내리지 않는다면 상처가 아니게 될 수도 있다는 말이 된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것을 하나의 사건으로 깔끔하게 정의 내린 뒤, 자신이 성찰할 부분을 파악하고 그런 것들에 대해서만 개선의 과정을 거치면 그만인 것이다. 그 어떤 사랑도 한 개인을 철저히 상처 입히지는 못한다. 그저 상처 입고자 하는 우리의 해석만이 그럴 수 있을 뿐이다. 스스로에게 해가 되는 해석을 기억으로 남겨놓고 싶은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되겠는가? 비극적인 사건이나 사고는 누구나 살면서 겪어나간다. 그런 것들에 심각하게 연연하지 말자. 우리에게 더 나은 사랑이 찾아오기 위한 하나의 발판쯤으로 생각하면 그만이다.
그렇기에 사람을 사람으로 잊는다는 말은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그저 하나의 사건일 뿐인 지난 사람과의 사랑은 또 하나의 사건을 맞이함으로써 더욱더 쉽게 기억의 저편으로 보내버릴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인생이라는 하얀 도화지에 몇 개의 사건이고 그려 넣을 수가 있다. 자칫 실수를 해서 그림이 망가진다면, 그 위에 덧칠을 하고 또 덧칠을 해서 아예 검은색의 도화지로 만든 다음, 하얀색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려나가도 된다. 우리에게 인생이 그렇듯, 사랑에 있어서도 내가 앞으로의 나날들을 향해 나아가기만 한다면 기회는 언제나 열려있는 셈이다.
때로는 한 사람이 미처 잊히지 않았다고 해서 무작정 그 사람에게만 몰두하여 붙잡고 매달린다면, '재회'라는 덫에 발목을 붙잡혀버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감정이 식어 매정하게 자신을 내쳐버린 그 사람이 없어도, 인생은 잘만 흘러간다. 그리움은 하나의 환상에 불과하고, 재회는 우리의 발목을 붙잡는 하나의 덫일 뿐이다. 둘 중 누군가의 감정이 식었다면, 혹시나 흔들리는 감정에 다시 순간적으로 결합할 수도 있겠지만 이별은 언제나 확정적으로 다가올 뿐이다. 같은 이유로, 같은 상처들은 늘어갈 것이다.
당연하게도 그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이라면 그와 같이 상처가 되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과거의 기억 속에서 나의 잘못을 성찰하고, 상대방의 특정 요소로 인해 자신의 인생이 괴로워졌다면, 그런 요소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을 만나면 아주 간단하게 상처는 치유될 수 있다. 괜히 가망 없는 인연을 붙잡고 늘어질 필요가 없다. 오히려 깊은 상처 속에 파묻혀 한없이 어두워진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도록 하자. 아픈 사랑은 사람을 병들게 한다. 이별을 마음먹었던 당시의 감정과 떠가는 이유들을 애써 낙관해서는 안 된다. 당장 눈앞의 사랑에 눈이 멀어 스스로를 어둠 속에 방치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이별 후에 돌아봤을 때, 지나치게 모진 사랑을 경험했던 것이라면 새로운 사람을 더욱더 빨리 찾아 나설 필요가 있다. 최악의 사랑이라는 진단에 의한 처방은, 더 나은 사람을 만나 '사랑의 혐오'에 갇히지 않는 것이다. 배려도, 존중도, 이해도 바랄 수 없었지만 좀처럼 마음을 내려놓기 힘들어 끈질기게 버티다 버텨 끝내 지쳐버렸던 가혹한 사랑을 누구나 인생에 한 번쯤은 겪어보게 된다. 스스로가 사소한 것이라고 치부하는 배려를 한없이 깊이 바라며 감정의 바닥을 느끼는 경험은 몇 번을 반복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것은 철저히 관계의 어긋남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때가 되면 감정적인 소모로 인해 지치고 깨어져서 마침내 관계를 놓게 된다.
내가 언제나 우려하는 것은 그런 부분이다. 최악의 경험을 그것에 대한 모든 경험이라고 치부하는 것. 자신에게 맞지 않는 단 한 사람으로 인해서 사랑에 대해 왜곡된 기억을 갖게 되는 것. 우리는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 절대적인 이성(異姓)의 숫자를 헤아려봐도 그러하고, 꽤나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 커플들의 통계를 바라봐도 그러하다. 우리도, 충분히 사랑받고 사랑을 주면서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단지 딱 그 사람 하나와는 이루어지지 않았을 뿐인 것이다. 누군가 지난 연애에 괴로움을 느껴 사랑을 시작하기 망설이거나, 혹은 가망 없는 인연의 끈을 좀처럼 놓지 못하고 있다면, 과감하게 말해주고 싶다. 새로운 사랑을 찾아 떠날 때라고 말이다. 결국에 아무런 성찰도, 발전도 이룰 수 없는 상태에 지나치게 자신을 가두게 되면, 스스로의 인생조차 타락해버리고 만다. 신선하고 새로운 사랑은 언제나 그런 상황에서 재기의 발판이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