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능적 끌림과 이성(理性)적 끌림

결국엔 우리가 극복해야 할 문제

by 봉필


사랑은 다양한 형태로 예고 없이 우리를 찾아온다. 한 사람의 끌림이기에 꽤나 비슷한 형태로 일관되게 찾아올 수도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랑에 열정적이지 않은 사람에 한한 이야기일 것이라 생각한다. 다양한 사람들에게 가슴을 열어놓으면,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오는 다양한 끌림을 경험하기 마련이다. 언제나 어떤 형태의 사랑이든 우리는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 그 다채로운 매력들 속에서 고민하는 즐거움을 놓쳐서야 되겠는가. 여러 이성을 한꺼번에, 동시에 만나라는 조잡스러운 이야기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차례차례, 각양각색의 이성을 만나면서, 그들의 매력을 느껴가며 탐구해 갈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이다.


"다 좋은데, 이상하게 안 끌려"


통상적으로 우리는 본능적인 끌림만을 '끌림'으로 정의한다. 프로이트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가 의식하는 현상 세계는 어디까지나 빙하의 윗부분으로 드러난 부분일 뿐이며, 대부분의 영역인 무의식은 바다에 잠기어있다. 우리가 본능적으로 끌림을 느끼는 부분들은 어디까지나 드러나 있는 의식적인 부분이 아니라 잠겨있는 무의식 부분이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에 대해 함부로 판단, 또는 정의를 내린다거나 그것을 자신의 뜻대로 변형할 수가 없다. 이런 무의식의 본능은 언제나 끌림의 기본이 된다. 남성과 여성, 서로 간에 매력이 드러나는 외형상, 그리고 성격상의 보편적인 부분들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런 것들마저 뚫고 다가오는 본능의 영역에 머물러 있는 녀석들은 언제나 강력하다. 우리는 그런 본능으로부터 감히 저항할 수 없는 운명이다.


주변인들이 다 괜찮다고 평가하는 사람에게는 좀처럼 끌리지 않고, 악평만을 한 바가지로 받고 있는 사람에게 알 수 없이 끌렸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그런 경험이 없었다면 행운(?)일지 불행일지 알 수는 없으나, 아직 미래는 열려 있으니 긴장을 늦추지는 말자. 그리고 굳이 그런 만남들을 지나치게 피해 다닐 필요도 없다. 본능 앞에 어쩔 수 없이 무릎 꿇은 자신의 취약함을 인정하고 마음 다 바쳐 사랑할 만한 이유는 그러지 않을 이유보다 언제나 많으니 말이다. 어차피 처음부터 그런 끌림에 버텨낼 재능은 우리에게는 없다. 그러니, 경험해 본다는 차원에서 온 마음을 힘껏 던져 보도록 하자. 언제나 의미 없는 사랑은 없다.


그렇게 숱하게 본능에 두드려 맞고 나면, 머릿속을 어렴풋이 비집고 들어오는 것이 바로 이성(理性)적 끌림이다. 본능적 끌림으로 연애들을 시작한 뒤에 그것이 성공적으로 마무리가 되었다면 좋았겠지만, 언제나 미숙한 우리들에게 동화에서나 나올 법한 해피엔딩은 쉽사리 허락되지 않는다. 본능적인 끌림 이상으로 이성에게 다른 자질이 필요함을 느끼게 되는 순간은 반드시 올 것이다. 오히려 끌림에도 서로 다른 종류가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생을 마감한다면 그것 또한 억울한 일이 아닐까? 주변 사람들의 말을 무시하면서 본능에만 몸을 던져가며 상처투성이가 되었다면, 한 번쯤 주변 사람들의 말에 기대어 보는 것도 그리 나쁜 선택은 아니다. 누구에게서나 좋은 평가를 받는 사람은, 다 그만한 자질과 능력을 갖추고 있기 마련이다. 본능적 끌림을 느끼지 못하는 우리에게 어떠한 매력을 제대로 어필해 낼 수 없을지는 몰라도, 반대로 그렇기에 우리를 상처 줄 만큼 치명적인 사람이 될 수는 없다.


어딘지 모르게 대화가 잘 통하고, 나와 생각하는 것이 비슷하고, 주변으로부터 좋은 평가도 받고 있다면,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언제나 가슴이 두근거리는 설렘으로만 사랑을 시작해 왔다면, 두근거리지는 않아도 잔잔하게 시작할 수 있는 사랑도 시도해 볼 필요가 있다. 장기적인 만남을 이어가 본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공감하겠지만, 그런 본능적인 끌림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설렘은 언제나 시간이 지나면 사그라들 수밖에 없다. 연애 기간 내내 쿵쾅거리다가는 우리의 연약한 심장이 터져버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누군가와 관계를 이어갈수록 우리의 몸에 흐르는 호르몬들이 도파민에서 세로토닌으로 옮겨가는 것처럼, 우리는 관계가 장기적으로 지속될수록 어차피 안정적인 길을 추구하면서 걷고자 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처음부터 안정적인 길로 접어드는 것도 나쁘게만 생각할 필요는 없는 셈이다.


언제나 가장 큰 문제는 그 두 끌림이 충돌하는 순간에 나타난다. 이성적 끌림과 본능적 끌림, 둘 중에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하는 양자택일 문제는 우리를 한 치의 빛도 새어 나오지 않는 어두컴컴한 심연으로 떨어뜨려 버린다. 매력은 느껴지지 않지만 대화도 잘 통하고 좀처럼 만나는 데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 쪽을 택할 것인지, 매력은 넘쳐흐르나 예상되는 갈등 속에서 고통에 몸부림치며 나아가는 쪽을 택할 것인지. 개인적으로 서른 하고도 하나 먹은 입장에서는, 아직까지 본능적 끌림을 이겨낼 만큼 데이지 않았다는 생각이다. 이성(理性)적 끌림의 장단도 알고 본능적 끌림의 치명적인 단점들에 대해서도 너무나 잘 알지만, 본능은 아직까지 내가 뛰어넘기엔 너무나 강력하다. 언제나 나를 흔들리게 하는 것은 잔잔한 이성적 끌림보다는 휘몰아치는 본능적 끌림이었다.


결국에는 많은 경험들을 통해 답을 찾아내는 수밖에 없다. 어느 쪽이든 지독하게 파고들어 열정적으로 사랑을 하다 보면, 각자의 답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정답은 오로지 본인의 고민과 경험의 깊이에 의해서만 그 정도에 맞게 발견되겠지. 사랑에 주저하지 않고 열심히 나아가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는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장담컨대, 수많은 사랑의 갈림길 속에서 그런 확신을 얻게 되는 것만큼 인생에서 큰 기쁨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언제 어느 때이고,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되든, 주저하지 말고 부딪쳐 보자. 그 사람이 우리에게 꽤 괜찮은 답을 줄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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