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봉필 Nov 13. 2024

사랑하지 않을 때에도 사랑하기

잠시 소홀했었던 나 자신에게도 사랑을


사랑은 그 크기나 기간과는 상관없이 언제나 극심한 에너지의 소모를 낳는다. 내 인생을 온전히 꾸려나가기도 힘들진대, 다른 이의 삶에 간섭까지 하고 때로는 나의 일생의 부분들을 나누어주는 연애라는 행위는 언제나 소모적일 수밖에 없다. 물론 관계에서 오는 만족과 행복감으로 어느 정도 그런 소모적인 부분들을 상쇄하기는 하지만, 사랑이 진정한 의미의 안식에 이르기까지는 많은 노력과 어려움이 따른다. 사실, 관계에 있어서 진정한 의미의 안식이 있기는 한 것일지 의문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실제로 감정적인 소모에 지쳐 이별하는 커플들은 생각보다 흔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별은 우리에게 하나의 슬픔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충전의 기회로써 다가오기도 한다. 이별 이후에는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로 향하던 관심이나 흥미, 배려, 존중들을 온전히 나에게로 그 방향을 돌릴 수 있게 된다. 나 자신조차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내가, 더욱이 멀게만 느낄 수밖에 없는 타인에게 시간을 들여 그런 감정들을 나누어주는 것은 오직 사랑이라는 기적과도 같은 사건이 아니면 좀처럼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그런 기적들에도 언제나 유효기간은 있고, 그 끝에는 모든 에너지를 상실한 우리만이 덩그러니 남겨질 뿐이다. 닥쳐온 이별의 상황 앞에 너덜너덜하고 구질구질한 감정의 바닥은 빛나던 지난날들에도 불구하고 관계를 과감하게 끊어낼 수 있게 한다. 


어떠한 사연으로 사랑의 끝을 맞이했든 간에, 언제까지고 좌절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아주 잠깐의 좌절의 시간을 가진 뒤 새로운 희망을 꿈꿔보도록 하자. 성찰의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에 둔해질 수밖에 없다. 차라리 새로운 사람을 만나며 털고 갈 수도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나의 에너지가 남아있을 때의 이야기이다. 감정이 바닥을 드러낸 것이라면 천천히, 그리고 차근차근 자신의 마음과의 대화를 통해 그 하릴없는 빈 공간을 채워보도록 하자. 


그동안 전 연인에게 시간을 할애하느라 미처 하지 못했던 활동들을 처리해 나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괜히 연인의 눈치가 보여 만나지 못했었던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거나, 어디론가 훌쩍 홀로 여행을 떠나볼 수도 있다. 여가 시간을 활용해 새로운 취미를 추구해도 좋다. 소모하기만 했던 에너지들을 자신에게로 끌어모으며 인생에 활력을 더해 보도록 하자. 상대방의 감정에 지나치게 신경 쓴 나머지 좀처럼 챙기지 못했던 내 속내들을 들여다보며, 지독하게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 자신이 좋아하는 것, 흥미 있는 것에만 지겹게 매달려 보는 것이다. 그러면 놀랍게도 잊혔던 열정과 감정의 에너지들이 솟아나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사실 사랑을 해나가는 중에도 자신에 대한 사랑만큼은 놓아서 안 되는 것이 맞지만, 그런 말은 진정한 사랑에 빠져보지 못한 사람들이나 하는 이야기이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어느 바다에 튜브 하나로 간신히 몸을 의지한 채 파도에 휩슬리지 않으려 애를 쓰는 형국이 우리가 사랑에 빠질 때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정신없는 상황 속에서 나 자신을 온전하게 지켜내는 것이 가당키나 하는가. 내가 몸을 의지하고 있는 튜브라도 제대로 점검할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인 상황일 것이다. 그저 그 사랑이라는 파도 속에서 정신줄 하나 꼭 잡고 몸이 뒤집히지 않도록 유지하는 것만도 온 힘을 다해야 가능한 일이다. 폭풍우가 지나가고 파도가 잔잔해졌을 때, 그때 우리는 또 다른 파도에 대비해야 한다. 튜브보다 더 나은 보트나 배를 장만해 볼 수도 있고, 수영 연습을 통해 거친 파도를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을 길러낼 수도 있다. 때로는 잠시 바닷가에서 육지로 나와 바다의 전체적인 모습에 대해서 감상하고, 파악하는 시간을 가져볼 수도 있을 것이다. 


더 나은 사랑을 위해서, 더 나은 우리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철저히 혼자가 되어보라고 권해보고 싶다. 언제까지이고 바다에 계속 남아 둥둥 떠다니며 다음에 부딪칠 파도를 찾아 나설 필요는 없다. 잠시 육지로 나와 젖은 머리와 몸을 말리고 마음을 가지런히 해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생각해 보면, 누구나 혼자로도 충분히 잘 살아온 나날들이 있지 않은가. 육지에서도 얼마든지 즐겁게 뛰놀 수가 있다. 운동과 같은 취미로 매력을 드러낼 수 있는 신체를 가꾼다든지, 책을 읽으며 교양을 쌓아나갈 수도 있다. 때때로 그런 취미들을 함께 즐기다가 또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도 있는 것이겠지. 혼자인 시간을 보낸다고 해서 철저히 어딘가에 갇혀버린 사람처럼 지낼 필요도 없다. 어차피 혼자인 시간을 즐기는 것도 새로운 누군가와 더 애틋한 관계를 만들어나가기 위함이니, 절대로 그 목적과 수단을 혼동해서는 안 될 것이다. 육지에서 지겹도록 열정을 태우며 땀으로 흠뻑 적셨다면, 다시 드넓고 푸르른, 시원한 바다로 눈을 돌려보도록 하자. 


홀로 온전히 여유 있게 시간을 보낼 수 있을 때 연애를 시작해야 한다는 말을 어디선가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앞서 말한 대로 사랑에는 극심한 에너지 소모가 따라오는 법이니, 어느 정도 내 인생의 여유를 찾는 사전 작업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홀로 있는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여 내가 활력을 공급받을 수 있는 파이프를 만들어 놓는다든지, 기존의 역량을 증대할 수 있는 행위들을 지속적으로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만의 온전한 삶을 누리는 사람에게서 풍기는 여유는, 그 어떤 이성적인 매력보다도 강력하다. 삶을 충만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사랑에 있어서도 충만한 표현과 감성을 풍부하게 나누어줄 수 있는 역량을 지니고 있으니 말이다. 

이전 28화 사람은 사람으로, 사랑은 사랑으로 잊는 것이 맞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