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엔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빼놓고 살아가서도 안 되는 것.
에세이의 마지막 장을 마무리하면서...
인생에 있어서 사랑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정의 내리지 않을 수 없다. 사랑은, 예고 없이 찾아오는 하나의 사고이자 재난이면서 그 속에서 피어나는 한 떨기 꽃이라고 할 수 있다. 아름답게 피어난 꽃은 또 언젠가 빛이 바래 고개를 떨구고, 언젠가는 자신의 뿌리가 잠들어 있는 바닥으로 떨어지게 된다. 그것은 또다시 다음 꽃을 위한 하나의 밑거름이 되어 우리의 사랑을 한층 더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 설렘, 기쁨, 슬픔, 좌절, 우울, 고통, 성장, 그리고 또다시 설렘. 우리는 살아있는 한, 이러한 굴레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사랑은 곧 인생이자, 인생이 곧 사랑이다. 어느 한쪽을 떼어놓은 채 인간의 생을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
언제나 인생을 살아가면서 처음 마주하는 것들에 대해 우리는 무지할 수밖에 없다. 책이나 이미 경험했던 다른 사람을 통해 간접 경험을 하거나, 혹은 직접적으로 부딪치고 깨어지며 그 대상을 무지의 영역에서 우리의 인생으로 끌어여야 비로소 알 수가 있다. 어떻게든 인생에 조금이라도 더 좋은 쪽으로 그 대상을 가꾸어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탐구하고 열중하면서 삶을 쏟아내야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이라는 대상은, 단번에 결론지을 수 있는 것도 아니며 해보지도 않고 섣불리 판단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철저히 사람 대 사람으로서 공감과 이해, 노력을 바탕으로 그 형태를 가늠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 노력의 과정은 다양한 형태의 사랑이 존재하는 것처럼 다양한 형태를 띤다.
누군가는 최대한 많은 상대들을 각각 짧은 기간을 들여 만날 수도 있고, 누군가는 한 상대와 긴 만남을 이어가며 사랑의 형태에 대해 고민하면서 살아갈 수도 있다. 또 다른 누군가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 단 한 번의 제대로 된 만남을 위해 고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모든 사랑의 형태들을 존중하고 장려하고 싶다. 오직 그 사랑에 대해서 진지하게 임하는 이들만이 제대로 된 사랑의 정의를 내릴 수 있고, 또 자신에 대한 성찰을 거쳐 자신과 꼭 맞는 상대를 만나게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어쭙잖게 전해 들은 사랑의 어두운 면이나, 사랑 후에 다가올 고통과 좌절의 순간이 두려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어떠한 기회조차도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하나의 사건인 사랑에 하나의 고통만이 따라올 뿐인데 굳이 두려워할 이유가 있을까?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한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사랑은 나를 더 강하게 한다.
삶이 고통이듯, 사랑 역시 고통이다. 우리가 삶을 계속적으로 살아가는 이유를 사랑에도 마찬가지로 붙일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하루하루 더 나은 삶을 위한 과정을 즐기려 하듯, 우리는 매 순간 사랑하며 그 고통 속에서도 즐기는 방법을 찾아내야 할 일종의 의무가 있다. 운명을 사랑하라고 부르짖었던 철학자 니체처럼, 우리는 지독한 사랑으로 얽혀있는 우리의 인생을 기꺼이 품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고통 속에서 사랑을 키워나가야만 한다. 매 순간 사랑이 무너져 내릴 때마다 성찰과 고뇌의 기간을 거쳐 한층 더 성장한 내가 되어 다른 사람을 더 품어낼 수 있도록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사랑은 다이아몬드 원석과도 같은 것이어서, 깎으면 깎을수록 더 선명한 본체와 반짝임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이번 사랑에 실패했다면, 다음에는 더 나은 사랑을 마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적절한 성찰과 자기반성을 거친다면 말이다.
스스로의 삶을 발전시키며 나아가는 가운데, 함께 발전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우리 인생에서 하나의 커리어와도 같이 평생을 따라다닐 수밖에 없는 이 사랑의 꼬리표를, 보다 나은 가치로 발전시켜 줄 수 있을 만한 사람을 말이다. 삶에 진심이면서 사랑에 역시 진심을 다할 줄 아는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야 한다. 자신의 감정을 좀먹게 하고, 조금도 손해 보기 싫어하고, 다른 사람의 배려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우리의 발전에 방해가 될 뿐이다. 그런 사람들이 찾아온다면 한두 번의 찰과상 정도의 경험으로 가볍게 넘기면서 오로지 자신의 성장에만 집중하도록 하자. 섣불리 남을 교화하려 들어서는 안 된다. 인생의 가르침을 함부로 누군가에게 할 수 없듯이, 사랑이라는 이름의 무기를 휘두르며 그 사람의 인생에 간섭할 권리는 우리에게 없다. 우리는 그저 묵묵히 우리의 인생 발전과도 방향이 같은 사람을 찾아 나서기만 하면 그만이다. 모든 실패의 과정들에서 더 나은 성과만을 빼내어, 우리와 뜻이 일치하는 누군가를 만나는 순간 아낌없이 사랑을 나누도록 하자.
살면서 그 어떤 가치를 부르짖든 간에 우리가 유한한 존재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영원히 찬란하게 빛날 것만 같았던 순간들은 흩어지기 마련이고, 맑디 맑은 눈동자도 세월의 흐름 속에 혼탁해져 갈 수밖에 없다. 우리는 결국엔 다 늙는다. 자신의 젊음이나 미모, 혹은 홀로 있을 때 발하는 빛이 영원할 줄 착각하지만, 언젠가는 그 빛도 다 바래기 마련이다. 우리가 인간인 한은, 정말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사랑과 함께라면 '홀로' 늙어가지 않을 수 있다. '홀로 늙어가는 슬픔'은 '같이 늙어가는 기쁨'으로 언제든 변모할 수 있는 것이다. 누군가 사랑은 선택의 문제라고 한다면, 나는 반문할 것이다. 그래서 당신은 사랑을 선택하지 않은 채 대체 무슨 재미로 평생을 살아갈 작정이냐고.
사랑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태어난 이 생의 삶과 같이 우리는 계속해서 살아나가고, 사랑해나가야만 한다. 사랑을 포기하는 순간 찾아오는 것은 달콤한 해방감이 아니라, 권태와 무기력, 그리고 죽음과도 같은 공허뿐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당장 눈앞에 펼쳐진 물질적인 영광이나, 혹은 젊음으로부터 오는 당연한 호의, 그리고 스스로 갖춘 사회적인 능력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그라든다. 나의 생이 힘을 잃어감에 따라 흩어지는 먼지와도 같이 사라져 버릴 것이다. 그러는 와중에도 우리가 기댈 수 있는 것은 오직 같은 시대 속에 함께 늙어가는 애처로운 사랑의 반려자밖에는 없다. 슬픈 현실이지만, 오히려 이런 상황적인 의무감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함께하는 행복을 거머쥘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아모르파티. 그런 운명도 사랑해 보자.
언제나 특별함은 순간적이고 그 모든 것들은 익숙함으로 변모한다. 거기에 지루함과 무던함을 계속해서 더해 갈 것이다. 그 사람의 사랑이 식어서, 혹은 그 사람에 대한 감정이 식어서가 아니다. 유한한 우리의 유한한 감정의 한계일 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는 마주하게 되는 모든 것들에 대해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언제까지이고 뜨거운 사랑을 계속해나갈 수도 없으니, 설렘의 순간을 몇 년이고 몇십 년이고 유지해 나갈 힘이 우리에게는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할 때가 다가올 것이다. 인생에서 고단하고 지루한 직장 생활을 이어나가듯, 사랑도 언젠가는 그런 식의 루틴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도록 하자. 그것을 미운 정이라고 하든 가족으로서의 애틋한 감정이라고 하든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 모든 것들은 사랑이고, 곧 인생인 것이다.
인생의 계획과 함께 사랑의 계획에 있어서도 항상 치밀함을 보이도록 하자. 바빠서 사랑을 못하고 있다느니, 여유가 없어서 사랑을 못하겠다느니 하는 핑계는 오직 나 자신의 삶을 더욱더 피폐하고 건조하게 만들 뿐이다. 스스로의 삶에 변명이나 핑계를 들이대는 패배자가 될 수는 없지 않은가. 잠시 사랑을 내려놓아야 하는 때에도, 언제나 사랑을 계획하는 설렘으로 나아가도록 하자. 결국에 함께할 짝을 찾아나가는 과정에 돌입할 수밖에 없다면, 언제 어느 때이고 그 기회가 찾아왔을 때 잡을 수 있는 사람이 우선적으로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 생에 하나의 생물로 태어난 이상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훨씬 더 풍요롭고 여유로운 삶은 오직, 삶과 사랑의 조화로부터 나온다고 믿는다. 혹시 삶이 잘못되어가고 있다면, 현재 사랑하고 있지 않은 것인지 의심해 보자. 그 모든 것이 갖추어졌다고 해도, 사랑이 갖추어지지 않았다면 언제나 그 빛은 공허할 뿐이다. 원하든 원치 않든 세상에 태어난 이상, 사랑에 대한 정의 한 번쯤은 제대로 내려봐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