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전부였을 때, 우리는 얼마나 위험해질 수 있을까.
“사람들이 숭고하다며 가치를 부여하는 일들은
어쩌면 아무 생각 없이 벌어지거나
무모함과 닮았는지도 모른다.
세상을 유지하기 위해
나중에 의미가 부여된 것일 수도 있다.”
친한 친구에게 선물로 받아
우연히 읽게 된 책이었다.
가볍게 보기 시작한 책이었지만,
책을 덮은 뒤에도
마음속에서 쉽게 가라앉지 않는
울림을 남겼다.
이 소설이 유독 오래 남았던 이유는,
우리가 너무 쉽게 지나쳐왔던 질문을
정면으로 던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불륜 이후
파탄 난 가정에 대해 이야기할 때,
대개 어른들의 선택과 감정에만
관심을 둔다.
누가 더 사랑했는지,
누가 더 비겁했는지,
누가 더 큰 잘못을 했는지.
하지만 그 선택 이후에
그 삶을 그대로 떠안고 살아가야 하는
아이들의 시간에 대해서는
좀처럼 묻지 않는다.
나는 예전에
이런 말을 쓴 적이 있다.
재채기에도 예의가 있고,
사랑에도 예의가 있다고.
어쩔 수 없이 터져 나오는 감정이라 해도,
그래도 그것을
어디를 향해 내보낼지는
최소한 스스로 조심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정대건 작가의 “급류” 속 두 가장의 선택은
바로 그 예의를 잃은 사랑처럼 느껴졌다.
두 어른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두 아이의 삶은
아무런 준비도 없이
송두리째 휘말리고 만다.
“누군가는 사랑이 교통사고 같은 거라고 했다.
그래, 교통사고를 낼 수도 있다고 치자.
그런데 책임도 안 지고
벌도 안 받으면
그건 뺑소니잖아.”
이 문장은
이 소설을 관통하는 태도처럼 느껴졌다.
사건 이후
헤어지게 된 그들의 삶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도담은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쪽을 택했고,
해솔은 어떻게든
제대로 살아보려 애쓴다.
같은 상황에 놓였음에도
선택은 달랐지만,
둘을 묶고 있던 감정은 같았다.
그날 이후,
잊고 싶었던 도담과
잊지 못했던 해솔이
서로를 떠나지 못했던 이유는
사랑보다는,
서로를 놓는 순간
그 모든 책임을
혼자 감당해야 할 것 같다는
두려움에 더 가까웠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이들의 관계를 끝까지 바라보면서
계속해서 의문이 들었다.
이 감정은
정말 사랑일까.
아니면
죄책감을 견디기 위해
서로에게 씌운 믿음일까.
결국 그들은
급류를 지나
잔잔한 호수에 다다른다.
하지만 나는
그 고요 앞에서
오히려 더 많은 질문이 생겼다.
그 과정은
서로에게 사랑이었을까.
아니면 결핍과 죄책감이
사랑의 얼굴을 하고
서로를 붙잡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비로소 도착한
잔잔한 호수 같은 순간에
그들이 확인한 감정은
사랑이었을까,
아니면 그 불안을 견디기 위해
스스로에게 씌운
일종의 세뇌였을까.
“어쩌면 도담은
해솔과 운명처럼 얽힌
그 불안 자체를
사랑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이 문장을 읽으며
나는 이 소설이 말하는 사랑이,
행복을 향해 나아가는 감정보다
불안을 견디기 위한 선택에
더 가깝게 느껴졌다.
이 소설은
사랑이 전부가 되었을 때,
그 사랑이 얼마나 많은 삶을
무심하게 휩쓸 수 있는지를
조용히 보여주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 급류 한가운데에는
언제나 선택받지 못한
아이들의 시간이
함께 떠내려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