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전부였을 때, 우리는 얼마나 위험해질 수 있을까.
이 책 속 주인공들의 관계는 우리가 앞서 본 사랑들과는 결이 조금 다르다.
낭만보다 복잡함이 먼저 보이는 관계다.
나에게 강하는 사랑에 결핍이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사랑을 받는 법이나 나누는 법을 배우기 전에,
사랑을 잃는 법부터 먼저 체득한 사람처럼.
완벽하진 않아도,
그 결핍을 그나마 채워주던 존재는 할아버지였다.
강하에게 할아버지는 사랑의 근원이자 안식이었고,
유일한 안전지대였을 것이다.
하지만 곤이 그 안으로 들어왔을 때, 강하는 곤을 온전히 사랑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는 곤에게 자신을 투영했고,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겼던 자리를 빼앗길까 두려워했다.
그래서 강하는 곤을 사랑하면서도 상처를 남겼다.
그 가학적인 애정은 곤을 향한 증오라기보다, 사랑받지 못할까 두려워하는 자기 자신을 향한 비명에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사랑을 품는 법은 알았지만,
상처 주지 않고 붙잡는 법은 배우지 못한 채 폭력과 애정이라는 양가감정의 파도를 타며 위태롭게 서 있었다.
“원래 양가감정은 논리적으로 설명하라고 있는 게 아니에요.
나도 엄마를 하루에 몇 번씩 아무도 모르는 데로 갖다 버리고 싶었는데요. 게다가 곤, 사람은 자신에게 결여된 부분을 남이 갖고 있으면 그걸 꼭 빼앗고 싶을 만큼 부럽거나 절실하지 않아도 공연히 질투를 느낄 수 있어요. 그러면서도 그게 자신에게 없다는 이유만으로 도리어 좋아하기도 하는 모순을 보여요. 맘에 들기도 하지만 울컥 화도 나는 거죠.”
반면, 곤에게 사랑은 다른 의미였다.
곤은 세상 어디에서도 숨 쉬기 어려웠다. 넘쳐나는 갈등과 부조리 속에서 곤에게 사랑은 언제나 도망쳐야 하는 존재였다.
그가 진짜 해방감을 느꼈던 장소는 사람이 아니라 물이었다.
물속에서 곤은 누군가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었다.
자유로이 아가미를 열어 물살과 하나가 되는 동안, 곤은 늘 자유를 느꼈다.
그 자유는 사람에게서 얻는 사랑이 아니라 스스로 살아남기 위한 공간 안에서만 가능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해방감을 주던 물은 결국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게 만들었다.
강하가 할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물속으로 들어가고, 결국 둘 다 물속에서 사라진다.
사랑을 느꼈던 장소가 사랑하는 존재를 앗아가는 장소가 된다는 것.
사랑하는 것을 얻기 위해 들어갔던 세계에서 사랑하는 것을 잃는다는 건
그 어떤 슬픔보다 깊은 결의 비극이었다.
강하의 사랑은 폭력적이었고, 곤의 사랑은 해방감과 상실의 감정이 교차했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사랑은 결핍을 끌어안아주었지만 사실상 그 결핍을 완전히 치유하지 못했다.
이 이야기는 사랑의 결핍이 어떻게 서로를 맺고, 그 안에서 어떻게 서로를 상처 입히며, 끝내는 그 사랑조차 잃고 마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강하는 사랑을 품었지만, 그 사랑을 붙잡는 법을 몰랐고, 곤은 사랑을 느꼈지만, 그 사랑을 감당할 방법을 알지 못했다.
사랑이 결핍에서 시작되었을 때, 과연 그 사랑은 관계를 어떻게 만들고 무너뜨리는가
사랑과 자유, 상실 사이에서 두 존재가 서로를 밀고 당긴다는 건
이미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비극을 드러내는 하나의 몸짓처럼 느껴졌다.
“다음에는 정말 이런 일이 있으려야 있을 수도 없겠지만, 또다시 물에 빠진다면 인어 왕자를 두 번 만나는 행운이란 없을 테니 열심히 두 팔을 휘저어 나갈 거예요. 헤엄쳐야지 별수 있나요. 어쩌면 세상은 그 자체로 바닥 없는 물이기도 하고.”
우리는 이 바닥 없는 물에서 각자 어떤 아가미를 가지고 헤엄쳐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