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이후에 남은 것들 ― 해가 지는 곳으로

사랑이 끝난 뒤에도 삶은 계속된다.

by 유진
tempImagejJs4go.heic 출처: 구글


“사랑을 품고 세상의 끝까지 돌진할 것이다.”


이 문장은 다짐처럼 들리지만,

동시에 두려움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사랑은 늘 우리를 끝으로 데려간다.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르는 곳.
이미 알고 있던 삶의 궤도에서 벗어난 자리로.


그래서 사람들은 사랑을 미룬다.


조금 더 괜찮아진 다음에, 조금 더 확신이 들 때,
조금 덜 상처받을 수 있을 것 같을 때까지.


그러나 이 소설은 그 미룸을 허락하지 않는다.



“미루는 삶은 끝났다. 사랑한다고 말해야 한다.”


사랑을 미룬다는 것은 결국 삶을 미루는 일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사랑은 준비가 끝난 사람에게 오는 감정이 아니라,
말해버린 이후에야 비로소 감당해야 할 감정이라는 것을.

이 문장을 읽으며 깨달았다.



책 속에서의 사랑은 조심스럽지 않다.
아름답게 정리되지도, 안전하게 보존되지도 않는다.


그 대신 살아 있음에 대한 강박처럼,

지금이라는 시간에 대한 집착처럼 다가온다.



“이렇게 만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살아있다면. 살아만 있다면.”


이 반복은 희망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절박함에 가깝다.


사랑이란 결국 ‘다시 만날 수 있음’이 아닌
‘지금 살아 있다는 사실’ 위에만 겨우 성립하는 감정이기에.


그래서 이 소설에서의 사랑은 낭만이 아니라 선택이다.


잃을 것을 알면서도, 끝이 보이면서도,
그래도 말해버리기로 하는 선택.


해가 지는 방향으로 걷는다는 것은
빛이 사라지는 쪽으로 나아가는 일이다.


그러나 그곳으로 향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끝내 사랑했다는 사실조차 남기지 못한다.


사랑 이후에 남는 것들이 있다면,
그것은 언제나 이 질문일 것이다.


그때 나는 말했는가, 아니면 미루었는가.


그리고 이 책은,

서두르지 않으면서도 분명하게 이 질문에 답을 해준다.


살아있다면, 살아만 있다면,
사랑은 말해져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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