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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스는 무성, 인생은 유성

시트콤 [오피스 서바이벌] 시즌2 1탄

by 이빛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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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트콤 [오피스 서바이벌] 9탄


오전 8:30, 강지대병원 건강검진센터

“임아정 님?”
“네에에~!” (톤은 명랑, 속은 덜덜)


"혈액 검사해야 해서요, 따끔~!"

피가 주사기로 빠져나가는 걸 뚫어지게

보다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와…내 시뻘건 피....

오늘 릴스 찍기도 전에 방전되겠네.”


간호사가 초콜릿 하나 쥐여주며 말했다.
“당분 보충하세요. 피 많이 뽑았어요.”


혈액검사, 위내시경,

자궁경부암 검사까지 풀코스였다.

위내시경 끝나고는 트림이 터질 뻔해 눈물 찔끔.


오전 11:45, 병원 앞 편의점

포카리스웨트를 벌컥벌컥 들이켜던

아정의 핸드폰이 울렸다. 해방차였다.

“아정님, 오늘 2시부터 6시까지 가능하시죠?”

“어... 죄송한데 오늘 영어 릴스 촬영이 있어서...”

“아, 그러세요? 그럼 어쩔 수 없고...”

목소리가 차가워졌다. 아정은 가슴이 뜨끔했다.

‘해방차에서도 점점 눈치 보이네.

일이 나쁘진 않은데 내 리듬이랑 안 맞아.

체력 방전으로 집 오면 탈진하고.’


얼마 전 하민쌤에게 큰소리쳤던 기억이 떠올랐다.
“쌤, 제가 릴스로 홍보 도와드릴게요.

수강생 10명 늘려드리고 저도 공부 덤으로 해요!”


그때는 자신만만했는데...
‘회사 못 버티면 영어라도.’

오늘은 그 야심찬 릴스를 찍는 날이었다.


오후 1:00, 신촌역 스터디카페 — 무성영화의 탄생

삼각대 세우고, 아이폰 켜고, 녹화 버튼 ON.
하민쌤은 열정 풀파워였다.

“Where is your heart?”
“Where is the nearest hospital around here?”


아정도 덩달아 힘줬다. ‘좋아, 이거 바이럴 된다. 수강생 10명은 껌이지.’

한 시간 후, 재생 버튼을 눌렀는데...
화면은 멀쩡. 소리가 안나온다.

'… 뭐냐 이거.”

영어학원 릴스가 아니라 채플린 감상회잖아.

차라리 무성영화제에 출품할까.'


그때, 아정의 머릿속에 하민쌤과

나눴던 대화가 자동재생됐다.

"음, 아정님은 아정님 자신을

무조건 믿어주는 존재여야 해요."
"그럼 자꾸 타인에게 제가

잘하고 있는지 물을게 아니라,

임아정이 임아정한테 물어봐야겠네요.ㅋㅋ"
"You have to trust your choices.

Then they work out for the best.

그럼요!"


영상은 무성이었지만,

그 대화만큼은 머릿속에서 선명하게 울렸다.
삶이 알아서 넣어주는 자막 같았다.


오후 3:00, 압구정 Stay Moment


“어서 와!” 은수 선배가 손을 흔들었다.
은수의 “놀러와” 톡 한 줄이 구세주 같았다.


Stay Moment — 차와 요가가 공존하는 따뜻한 공간.
캐모마일 티를 앞에 두고, 아정은 무성영화 이야기부터 해방차 눈치까지 줄줄이 털어놨다.
“아정아, 너 진짜 고생 많다.”


그때 계단에서 뚜벅뚜벅 발소리.

대표 정미경이 내려왔다. 깔끔한 인상, 예리한 눈빛.
“손님이세요?”
“아, 안녕하세요. 은수 선배의 후배 임아정입니다.”
대표의 눈빛: ‘이 친구, 뭔가 있다.’


오후 4:00, 즉석면접

미경: 본인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요?
아정: 저요? 귀엽게 약은 사람이에요.

순간 정적. 은수는 테이블 치며 빵 터졌다.

미경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약음'은 매력으로 번역되네요.”


은수도 이어서 말했다.

"아정이 넌 아정이만의 매력이 있어.

사람에게 영감을 주는 그 끼, 뭔지 알지?"



오후 6:00, 귀갓길

곽성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성진아, 나 카페 알바 합격했어ㅋㅋ 시급 2만!”
“야, 넌 진짜 인생이 항상 무성인데 자막만 화려하다.”

“… 뭐래 진짜ㅋㅋ”

“그래도 이번 자막은 잘 골랐다. 해방차보다 너한테 맞을 거야.”
“어떻게 알아?”
“너 원래 사람들이랑 수다 떠는 거 좋아하잖아.

그걸 돈 받고 할 수 있으면 꿀이지.”
“맞네. 그리고 글도 쓸 수 있고.”
“이번엔 오래 버텨라, 임아정아.”


전화를 끊고 나서 아정은 생각했다.

‘진짜 내 인생은 롤러코스터냐.’


밤 11:30, 블로그 타임

틱틱타타타타탁탁탁탁탁탁

제목: [일상] 릴스는 무성이었지만, 인생은 유성이었다

오늘 릴스는 소리가 안 났다.

하지만 하민쌤의 음성은 또렷하게 울렸다.


You have to trust your choices.

Then they work out for the best.


나는 자꾸 확인하려 들지만,

결국 나 스스로를 믿어야 한다는 걸 배운 하루.

롤러코스터에서 내려와서 이제는

Stay Moment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리고 솔직히—

내 인생은 무성인데, 자막은 매일 새 걸로 달린다.
내일은 또 어떤 자막이 붙을까?


다음화에서 계속........^__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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