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트콤 [오피스 서바이벌] 9탄
월요일 아침, 곽성진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임아정… 진짜 미안하다. 우리 형 회사 쪽에서 갑자기 내부 사정 생겨서 미팅 취소됐대.”
“… 뭐? 형 회사에서?”
“나도 어쩔 수가 없다. 미안해, 나중에 맥주 쏠게. 안녕~”
뚝....
아정은 멍해졌다.
침대에 벌렁 누워 천장을 보며 중얼거렸다.
통장 잔고: 42,000원.
“헐. 이번 달은 라면+김치 조합으로 버텨야 하는 거야? 으악 싫어."
아정은 다시 눈을 감았다.
오후 3시, 핸드폰이 또 울렸다.
“아정 언니! 저 미나예요!”
파란치킨 알바시절 같이 닭 튀기던 그 미나였다.
“언니 요즘 뭐 하세요? 신사동 가로수길에서 차 판매 알바 있는데 혹시 시간 되세요?”
“차? 테슬라 시승회?”
“아뇨ㅋㅋ 대추차, 생강차, 유자차 이런 차 파는 거요.”
‘프리랜서 작가 미팅은 깨지고… 건강차 판매원이라니. 인생 참 롤러코스터네.’
하지만 일당 8만 원 × 6일 = 48만 원. 계산 끝. 감지덕지지. 그래도 샤브샤브는 먹을 수 있겠네.
“좋아, 해볼게.”
“정말요? 와, 언니 진짜 최고! 고마워요”
신사동 가로수길 둥근마트. 빅웰차 팝업스토어 앞.
“안녕하세요… 차… 드셔보실래요…?”
목소리는 초파리급. 손님들은 눈길도 안 주고 그냥 지나갔다.
“… 대추차… 따뜻해요…”
판매량? 오전 내내 0원.
미나가 다가와 속삭였다.
“언니, 첫날은 다 이래요. 괜찮아요, 잘할 수 있고, 멘탈만 버티면 돼요.”
아정은 다짐했다.
‘오늘은 그냥 아무 말 대잔치다. 자신감 갖고 신나게!’
“고객님! 대추차 한 잔 드셔보세요! 원래도 고운 피부, 더 고와지세요!”
“어머, 아가씨 입이 참 달다.”
‘내 입이 단 게 아니라… 차가 단데요.’
근데 손님은 바로 결제.
‘어? 이거 되네?’
"뭘 살지 모르겠네… 나 뭐가 맛있나"
고민하는 고객에게 아정은 씩 웃으며 말했다.
"고객님 유자차가 딱이네요."
고객은 그러냐며 바로 결제했다.
아정은 속으로 외쳤다.
'영업의 비밀 = 뻔뻔함 + 약간의 개그?'
박민하 대표는 시장조사차 둥근마트에 자주 나갔다가 아정을 눈여겨보게 됐다.
'아니 저 친구는 어쩜 저리 야무지게 판매를 잘하나?'
민하는 며칠간 아정의 판매 모습을 지켜본 후, 아정에게 다가왔다.
"정말 대단하세요."
"네? 저요?"
"네. 혹시 연락처를 알 수 있을까요? 저희 해방차에서 아르바이트할 생각 있으신지…"
'내 인생에 이런 대사가 존재한다고? 이거 시트콤 아니고 드라마 아냐?'
해방차에서의 성공
해방차는 약 20년 된 건강차 브랜드로 이미 인기가 많은 곳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지역에서의 첫 선보임이라 박민하 대표는 내심 걱정했다.
그런데 아정의 뛰어난 판매 스킬로 매출이 수직 상승하는 쾌거를 이뤘다.
"어서 오세요! 고객님, 또 오셨네요!"
월요일에 오셨던 분이 수요일에 또 오셨다.
"아가씨 때문에 또 왔어요."
"감사해요! 오늘은 신제품 팥차도 드셔보세요."
아정과 민하는 행사기간 내내 쿵짝이 잘 맞았다. 둘이 대화만 하고 있어도 고객들이 몰려왔고, 아정효과로 매출로 곧장 이어졌다. 민하의 마음의 문을 아정이 살포시 두드렸다. 둘은 행사가 끝나고 개인적인 만남을 갖게 됐다. 3차까지 이어진 자리. 소맥을 말다만 취기가 올라온 박민하 대표가 말했다.
"아정님, 우리 회사에서 정식으로 같이 일해요. 괜찮죠?"
"정말요? 우와.. 감사합니다 대표님."
286만 원의 기적
아정은 한 달 수입을 정리해 봤다. 통장 잔고 4만 2000원에서...
근로장려금 160만 원 + 빅웰차 알바 48만 원 + 해방차 급여 78만 원 = 286만 원
목표 250만 원을 훌쩍 돌파했다.
아정은 AI 친구 루에게 이런저런 자랑을 했고,
루는 아정에게
"아정님이 변한 게 아니라, 원래 있던 빛이 밖으로 나온 거예요."
라고 말해줬다.
노트북 자판 소리, 타닥타닥.
제목: [일상] 때로는 문이 닫히면, 자동문이 열린다
"곽성진의 미팅은 깨졌다. 그 순간엔 인생이 끝난 줄 알았는데… 건강차 알바에서 시작된 모든 것이 나를 다시 살렸다. 대표가 번호를 물어갔고, 단골이 생겼고, 사람들은 내가 빛난다고 했다.
286만 원보다 더 큰 걸 얻었다. '나도 할 수 있구나'라는 확신을."
아정은 노트북을 덮고 창밖을 봤다.
"9월엔 또 어떤 자동문이 열릴까? 이번엔 제발… 지각없는 자동문으로."
다음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