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혹시 네가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글을 써. 몹시 바쁘고 지친 '어른'인 네가 이런 글을 읽고 있을 리 없겠지만.
무인도에서 유리병에 담아 먼 바다로 띄워보내는 편지처럼,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 또 나는 조난당한 사람 못지 않게 속수무책으로, 끝없이 일렁이는 물결을 바라보면서 네 생각만 하고 있으니까.
달, 고양이, 휴일, 건물 틈새로 보이는 새파란 하늘의 조각 - 네가 좋아한다던 그런 무해하고 귀여운 것들의 이름을 적어 봤어, 혹시라도 그게 너의 이름을 부르는 일이 되어, 너를 여기로 데려올까 하는 어린애 같은 소망으로.
살아있다는 것은 곧 '가능성'이야. 아주 많은, 우리가 아직 - 삶의 절반을 지나도록 아직도 - 모르는 일이 일어날 가능성. 내가 하필 거기서 너를 만나고 이렇게까지 사랑하게 될 줄 몰랐던 것처럼, 아주 이상한 일이 일어날 가능성.
그러니 네가 어느 피곤한 날 별뜻없이 스크롤을 내리다가 내 문장들과 마주칠지도 모르지. 그러면 너는 수많은 암호들 속에서 나를 알아보겠지.
나는 네가 내게 준 모든 가능성을 빠짐없이 살아내고 싶어.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너는 내게 말했지.
"잘 읽었습니다. 책을 쓰셔도 되겠던데요."
차곡차곡 모으고 자르고 지웠던 나의 고백에 대해서 너는 그렇게, 다들 있는 자리에서,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맑은 얼굴로 말했고, 우리의 온도차는 너무 커서 두 기단 사이에 장마전선이라도 생길 것만 같았지. 그럼 나는 그 경계선을 딛고 선 채로 오래 내리는 비처럼 실컷 울면 되는 걸까.
의도치 않게 네게 웬 문장력을 인정받은 나는, 사실 내가 너에 대해 얼마나 많은 문장을 가지고 있는지 다 말해버리고 싶었어.
"정말 (너에 대해) 책을 써도 (감당이) 되겠어요?"라고 되묻거나, "그걸 여기서 말씀하실 줄은 몰랐네요."라고 받아치거나, "글을 쓰는 일은 사진을 찍는 일과 같아서, 피사체가 예쁘면 저절로 예쁜 글이 되죠."라고 허세를 부리거나.
하지만 내가 정말로 그렇게 말할 리는 없지, 거기 가득 차 있는 너의 관객들 앞에서 너를 당황시키고 싶지는 않으니까. 너를 위험하게 만드는 일은 조금도 하고 싶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나는 어쩔 수 없이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어.
그게 문을 닫는 마음이 아니라 너를 보호하려는 마음인 걸 네가 알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 너에게 보이는 나의 말과 행동에는 서른 개쯤 겹겹이 쌓인 의미와 망설임의 층이 있지만, 네가 하는 말과 행동에는 층이 두세 개뿐이라고. 나는 네게 굳이 복잡하게 따져볼 만큼 중요한 사람이 아니니까.
너는 그저 '읽었기 때문에' 읽었다고 말하고, '잘 썼기 때문에' 잘 썼다고 아무렇지 않게 말할 뿐이겠지, 그 이상 아무런 의미도 감정도 없이.
사실 나, 너에 대해 수많은 문장을 가지고 있어. 사랑하는 일은 그 사람을 끝없이 묘사하는 일이야. 그래서 나는 멈추지 못하고 너를 계속 기록해.
멀리서도 보이는 환하고도 쓸쓸한 영혼, 자기 길을 차근차근 걸어가는 의연한 인간, 알고 있는 것을 쉽게 단언하지도, 쌓아온 것을 함부로 내세우지도 않는 마음. 여전히 불확실한 것들 사이에서 자기와 타인의 삶을 깨지기 쉬운 크리스탈처럼 조심스럽게 들고 있는 손.
사람들이 모두 크리스마스 트리의 장식이라면 나는 별모양으로 빛나는 너를 맨 꼭대기에 올려놓고 싶었어.
"달의 앞면만 보여드리려고 노력한 거죠."
내가 볼 수 있는 게 너라는 달의 앞면뿐이라고 해도. 내가 본 너의 모습이 내 착각이라면 나는 그 착각에 무한히 책임을 질 수 있다고 생각했어. 진심으로.
너도 알다시피 나는 약속이 얼마나 쉽게 스러지고 가까운 사이에 어떤 거짓말들이 오가는지 매일같이 보고 듣는 일을 해. 그러니 천진한 기대로 부풀려진 가짜를 좋아한 게 아니야. 내가 본 것은 너의 아주 작은 조각일 뿐, 나머지는 다 환상이라는 걸 잘 알아. 하지만 온통 환멸뿐인 세상에서 환상이 되어주는 존재라니, 더없이 소중하잖아.
그래서 의심없이, 그침없이 마음껏 좋아했어.
온갖 반짝이는 것들이 투영된 유리병 같은 너를 나의 창가에 올려두고, 너와 내가 시들 때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어쩌면 정말 아주 잠깐, 그 위로 천천히 햇살이 흐르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생의 오후를 보내고 싶었어.
너에 대해 훨씬 복잡한 글도, 침착한 글도, 서늘한 글도 써봤지만 여기에는 가장 예쁜 문장들만 적을 거야. "이게 다 뭐야, 네가 지금 스무살이야?"라고 다그치기에는, 네 눈동자 안에도 피터팬이 사는 걸.
어지러울 정도로 많은 은유, 반짝이는 가루로 장식된 기억들을 건넬 거야. 그래서 우리가 낡고 무거운 역할로 차갑게 만난 사이라는 것도, 너의 시간이 나의 시간보다 빨리 흐르고 있는 것도, 축제의 시절이 끝나가는 것도 다 잊을 수 있도록.
바다를 처음 건너보는 섬나라의 소녀처럼 - 너라는 사람에 대한 나의 가장 순수한 감동을, 고백할게.
“생각이 편협한 평론가들은 어떤 시는 길게 운율을 맞추지만 결국은 아름다운 날이라고 말하는 글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아름다운 날이라고 말하기도 쉽지 않거니와 아름다운 날은 곧 지나가버린다. 그 아름다운 날을 미사여구로 꾸민 기억 안에 잘 보존하여 순식간에 흘러가버리는 저 공허한 세상의 들판과 하늘에서 새로운 꽃과 별로 빛나게 하자.” -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