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평생 친구하기로 해
다시 현재로
이전 글에서 말했듯이 회사를 퇴사하고 찾은 새로운 병원에서 양극성 장애(조울증)가 있을 것 같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물론 그때 언급했듯이 1년 간의 관찰이 필요하지만 의사 선생님과 나는 이미 암묵적으로 내게 양극성 장애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게서 보이는 많은 증상들이 양극성 장애를 가진 사람들과 똑같았다. 게다가 한국에서 얼마 출간되지 않는 몇 권의 양극성 장애에 대한 책을 찾아 읽으면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청소년 시절부터 내게 문제가 되었던 부분이나, 성인이 되어서도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는 기분에 많은 부분에서 좌절했던 기억이 우후죽순 떠올랐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정신의학과를 찾았을 때 나는 겨우 20대였다. 그냥 우울증이라는 의사의 말에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우울증은 그렇게 심각한 병도 아니고 약을 먹으면 치료할 수 있는 병이다(물론 우울증도 난치성 우울증이나 중증 우울증 등 치료하기 어려운 병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더군다나 그때는 우울증이 마음의 감기라는 인식이 많이 자리 잡혀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기 어렵지 않은 병이고 쉽게 공감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내가 가진 병이 우울증인 것에 안도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서 나를 보편적이고 정상적인 사람으로 보이려 한 노력이 지금 돌이켜 보면 얼마나 바보 같았는지 모른다. 내 병에 대해 스스로 고민을 해보고 좀 이상한 부분이 있으면 다른 병원도 찾아봤어야 했다. 나 자신의 건강에 있어서도 타인의 눈치를 보느라 정작 더 심각한 병을 늦게서야 발견하게 된 것이다
조증? 울증? 때마다 어떤 증상이 나타날까요?
양극성 장애에 대해 한창 찾다 보니 청소년기부터 20대나 30대까지 비교적 어린 나이에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은 그들의 병이 우울증이 아니라 양극성 장애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첫 기억은 죽고 싶다는 것이었다. 초등학생 밖에 안 된 아이가 죽고 싶은 일이 무엇이었을까? 엄격한 분위기의 학교 생활, 분기별로 만나던 친척들의 외모 지적, 학업 압박, 아버지로부터 받는 정신적 스트레스가 조금씩 축적되었던 것 같다. 양극성 장애를 가진 사람들 중 어떤 사람들은 외부의 스트레스에 노출될 때 비정상적인 생리적 조절 반응 시스템이 작동된다고 한다.(물론 이는 양극성 장애가 발현되는 요인 중 하나로 모든 양극성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이런 요인으로 양극성 장애가 발현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내가 가진 ADHD라는 병은 양극성 장애와 비슷한 증상들이 많아 확실한 진단을 내리기 위해선 장기간 지켜봐야 한다고 한다. 한 마디로 복잡한 상태인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의사 선생님을 만나고 나는 나에 대한 정립을 다시 하게 되었다. 부모님의 성향과 과거의 눈에 띄는 사건들, 나의 어린 시절부터 내가 그냥 당연하다고 여겨온 모든 생각과 행동들이 그냥 평범한, 보편적인 사람들의 모습과 차이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례로 나는 어떤 일이나 업무가 주어지면 불도저처럼 파고든다. 완전 목표지향적인 사람이 되어 성과를 내야 하고 그 일을 해내기 위해 모든 것들을 차단한다. 밥도 먹지 않고 잠도 자지 않고 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렇게 생활을 하면서도 피곤하거나 지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은 그런 시기의 나를 보면 대단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이런 모습이 일 년 365일 지속되지 않고 곧바로 뒤에 우울증이 온다는 것을 그 사람들은 몰랐다. 이런 행동들이 단발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주기마다 아니면 특정 사건의 여파로 나에게 나타났다.
조증에서 울증으로 떨어지는 이 시기를 난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안전바 없이 롤러코스트를 타는 기분. 정말 그때가 되면 갑자기 불안해지면서 온 몸이 마비된 것 같을 때가 있다. 그렇게 도달한 울증의 시기에는 탈진한 상태에서 침대 밖으론 나가지 못할 정도로 무기력해진다. 잠이 많아지고 식욕이 급격하게 줄어 살이 빠지기 시작하고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은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하다. 행동과 말이 느려지고 샤워도 하기 싫어 가족이 억지로 화장실 앞에 나를 데려다 놓아야 겨우 머리를 감기도 한다. 정신적으로 가장 힘든 것은 조증의 '나'를 이미 겪고 기억하는 내가 울증의 '나'를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몇칠 전까지만 해도 방방 날아다니던 내가 침대에서 아무것도 못하고 모든 의욕 사라진다. 10년 이상을 이런 나로 살아오니 어떤 모습이 진짜 내 모습인지에 대한 혼란도 생긴다.
양극성 장애에 맞춰서 살아보죠
위에서 언급했던 조울증의 증상들이 내 삶의 전반적으로 깔려있었다. 그러니 10년 이상을 이런 나로 살아오니 어떤 모습이 진짜 내 모습인지에 대한 혼란도 생긴다. 저런 증상들이 보통의 사람들도 당연 겪는 부분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양극성 장애가 아닌 사람들은 전혀 저런 증상 아니 저런 행동이나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에서 나는 충격을 받았다. 어쩌면 내게 조증만 오고 울증은 오지 않는다면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할 수 있을까 상상해 본 적이 있다(그렇게 되었다간 수명이 급격히 단축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어쨌든 양극성 장애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서서히 받아들이게 되자 양극성 장애를 악화시키는 것들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중 지켜야 하는 것 두 개는 8시간 이상의 충분한 숙면과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양극성 장애를 가진 나에게 첫 번째 우선순위가 된 것은 잠과 규칙적인 일상이었다. 새벽이 아닌 밤에 잠이 들고 낮이 아닌 아침에 일어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었다. 참 쉽고도 어려웠다. 조증 시기에는 잠을 자기 싫은 나를 어르고 달래 침대에 눕히는 게 이만저만 쉬운 일이 아니었고, 울증 시기에는 계속 침대 속으로 들어가려는 나를 끌고 샤워를 하고 밖에 나가게 하는 것이 정말 힘에 겨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의사 선생님을 잘 만나서 양극성 장애를 잘 다스리는 방법을 조금씩 익히게 되어 감사할 따름이다. 내게 정말 좋은 효과가 되었던 방법들은 다음 글에서 주요하게 다루고자 한다.
내 병을 알고 나서 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내 삶을 점검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