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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울조 Mar 18. 2024

상담심리 선생님에게 노래를 배웠다

노래의 힘은 대단했다


약으로도 안 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정신건강의학과에 다니면서도 내겐 약으로만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있었다. 예를 들면 부정적인 생각이나 트라우마 같은 기억들이 끊임없이 떠오르고, 항상 어딘가 쫓기는 사람처럼 휴일에도 쉬지 않고 일을 해야 했다. 가족 관계에 있어서도 아버지를 이해하는 게 어렵다 보니 아버지 나이 대의 남성을 보면 온몸이 굳을 때도 있었다.




또한, 나 스스로를 가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타인의 인정을 받아야만 내가 살아있는 이유가 된다고 생각했다. 자해를 하거나 자살을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나 자신을 위해 돈을 쓰거나 선물을 사는 것은 정말 사치였고 주말에 쉬는 것도 그 주에 일을 다 했거나 계획한 것을 다 지켰을 경우에만 허락되었다. 내가 휴일에 쉬고 내 돈을 내가 쓰는 것도 나에게 허용하지 않는다는 게 지금 생각해 보면 안쓰러웠다. 그리고 이것 또한 일종의 자기 학대에 해당한다는 것을 상담을 통해 알게 되었다.





상담을 한다고 나아질까?

상담심리 선생님을 만나게 된 것은 한 친구 덕분이다. 그 친구가 알려주기를 서울시에서 청년들을 위해 무료로 상담심리를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며 추천했다. 보통 1시간에 10만 원이 넘는다고 알고 있었는데 이 프로그램에선 청년은 돈을 내지 않고 받을 수 있었다. 그 당시 서울에 자취를 하고 있어 신청이 가능했다. 정말 행운이었다.




첫날 심리상담을 받으면서 나는 펑펑 울었다. 평소에 눈물을 잘 흘리지 않는 편인데 상담심리 선생님에게 내 이야기를 털어놓자마자 눈물이 터진 것이었다. 연신 죄송하다고 말하며 휴지로 눈물을 닦았다. 그러자 선생님은 뭐가 그렇게 힘들었냐고 물었다. 꺽꺽 거리며 이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 삶이 어땠는지 쏟아내자마자 눈물이 그쳤다. 담고 있던 상처들이 해방되는 느낌이었다. 선생님은 내가 꺼내놓은 상처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자고 했다.





7번의 상담을 통해 나는 나를 괴롭히는 생각들을 하나씩 해체할 수 있었다. 첫 번째로 했던 부분은 주말만 되면 쉬지 못하고 불안에 떨며 이것저것 일을 만들어 내는 나를 쉴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었다. 주말이나 휴일이면 푹 쉬고 에너지를 충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보통 사람들은 쉴 때 어디에 놀러 가거나 산책을 하거나 집에서 TV나 핸드폰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나의 경우에는 그렇게 놀 때마다 머릿속에서 '네가 놀 자격이 돼? 지금 공부를 하든 일을 하든 해야지 시간을 이렇게 버릴 거야?'라는 생각이 계속 떠올랐다. 선생님은 내게 그 생각이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 같은지 생각해 보라고 했다. 진짜 내가 쉬지 않고 달리고 싶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 내게 그런 말을 한 건지 그 생각의 근원을 찾았어야 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건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놀지 말고 공부해라. 휴학은 시간을 버리는 거다. 그런 거 할 시간에 뭐라도 해라. 왜 쓸데없는데 시간을 쓰냐. 이런 말들이 내 기억 깊숙이 박혀있어 이런 말들이 아버지의 말이 아니라 나 자신이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문제에 대해 상담심리 선생님이 내려준 특효약이 하나 있다. 바로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쉬려고 할 때 떠오르는 아버지의 말들을 떨쳐버리기 위해선 노래만 한 것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아버지의 목소리가 떠오르면 즉시 노래를 불렀다. 아무 노래나 상관없이 그냥 생각나는 대로 부르는 것이다. 처음엔 정말 민망하고 이게 도움이 될까 의심스러웠지만 달리 방도가 없으니 그대로 따라 했다. 효과를 정말 좋았다. 쉬려고 할 때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면 나비야부터 시작해서 곰 세 마리, 나중에 가선 가요까지 부르게 되었다. 정말 실용적인 해결책이었다.





또 다른 큰 문제는 내가 나 자신에게 박하다는 것이었다. 친구에게 선물을 주거나 가족에게 선물을 주는 것은 아끼지 않고 주지만, 내가 사고 싶던 옷, 먹고 싶은 음식, 심지어 과자까지도 내가 나를 위해 사줄 생각을 안 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번 돈으로 내가 먹고 싶은 걸 먹는 게 불법도 아닌데 그것을 먹으려면 한참의 고민을 해야 했었다. 내가 저걸 먹거나 사도 되는지 그럴 자격이 있는지 하는 생각들이 떠올라 결국 사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꼭 나는 항상 평가를 받아야 하는 사람이고 누군가에게 인정받지 못하면 나 자신이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느꼈다.






여기서 상담 선생님은 내가 너무 불쌍하다고 했다. 내가 나를 대우해주지 않으니 그런 나는 누구를 위해 살아야 하는지 선생님이 묻자마자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울컥하는 눈물이 터졌다. 내가 얼마나 나를 학대했는지 제대로 보게 되었다. 거기서 선생님은 내가 살았던 삶을 다시 짚어주며 얼마나 내가 많은 것들을 해냈고 힘든 일을 버텨온지 아냐고 물었다. 선생님은 또한 정말 내가 가치 있는 사람이고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존재 자체로 소중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내게 한 달 아니 하루라도 내가 원했하던 것을 마음껏 해보라고 했다. 그럴 가치가 충분히 있는 사람이라면서. 그 길로 바로 나는 칼국수를 먹으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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