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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울조 Mar 22. 2024

영원히 안 볼 것 같았던 아버지를 용서했다

사과 한 마디 듣기가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이야

약 보다 좋았던 상담



상담을 받는다는 것은 참 오묘한 일이다. 상담 선생님은 내게 약을 처방해주지도 않고 기기를 이용해 치료를 해주지도 않는다. 오로지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종종 질문을 던지고 해결책을 살짝 제시할 뿐이다. 어떻게 보면 과학적이거나 실질적인 치료를 해주지 못하는데 점점 내 마음이 건강해지고 있다는 걸 느꼈다. 그들의 무슨 말들이 나를 이렇게 세상 밖으로 끄집어 낼 수 있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나와 아무 관계도 없고 그저 내 입장에서 한 이야기에 기반해서 해결책이라고 할까 아니면 치료라고 할까 하는 말들이 언제나 나를 위로해 줬다.



일례로 퇴사를 하고 정말 망망대해에 내던져진 기분에 나는 무척 불안했었다. 게다가 아버지와의 관계는 그저 시간이 지나면 해결해 주겠지 하는 생각에 마음 저 한편에 묻어두었다. 나를 괴롭히는 대부분의 생각들은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나 양육자로부터 받은 상처되는 말들이 많았다. 언제나 누군가와 비교당하고 핀잔받고 지적당하는 일이 아직 마음이 단단하지 않은 청소년기에는 저런 모든 화살이 내 마음 한가운데 꽂혔다. 그 상처들을 제때 치료할 수 있었으면 참 좋았지만 당시 사회적 분위기나 나의 부모님에게는 이런 정신적인 부분을 돌볼 만큼 여유가 있진 못했던 것 같다.





내 마음을 파헤쳐보니



상청받았던 그 시절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을 상담 선생님이 해주었을 때는 정말 마음속 응어리가 싹 녹는 것 같았다. 각각의 상담 회기에서 내가 얼마나 많이 울 수 있는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마치 울려고 상담을 받으러 가는 것 같았다. 상담이 진행될수록 내가 얼마나 내면의 소리가 아닌 바깥세상의 소리에만 귀 기울였는지도 알게 되었다. 로스쿨을 가려고 가고 싶었던 것은 진짜 변호사가 되기 위한 꿈이 있어서라기 보단 인정욕구에 의한 선택이었다. 내가 변호사가 되면 사람들의 인정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무언갈 할 수 있다고 아버지한테 증명해 보이고 싶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왜 나한테 상처를 준 사람으로부터 능력을 인정받으려고 하는 내 모습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런 혼란 속에서 상담 선생님은 내가 꽁꽁 숨겨놓았던 감정을 쏙 들추어냈다. 어린 시절부터 이어진 모든 내 이야기가 아버지와 이어진다는 것. 내가 가장 영향을 받았던 사람이자 중요하게 여긴 사람이 바로 아버지라는 것. 그리고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과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한데 어우러져 결국 내 마음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 나는 계속해서 아버지를 정말 이해할 수 없었고 증오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말을 들으니 굉장히 혼란스러웠다. 나는 처음엔 이 말을 부정했었다. 제일 싫은 사람에게 왜 내가 인정과 사랑을 받고 싶다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됐다. 그러자 상담 선생님은 왜 내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에게서 상처를 받고,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하는 말에 내 마음이 요동치는지 생각해 보라고 했다.






아버지 당신을 이젠 용서할 수 있습니다.




맞았다, 애써 인정하지 않으려 했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커다란 존재는 아버지였다. 상담을 거듭할수록 나는 조금씩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본연의 내 모습이 무엇이었을까 생각하고 아버지라는 한 사람으로서의 존재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나와 가장 닮은 점이 많고 내가 가진 조울증의 증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 그 사람의 생애를 추적해 본다는 것이 나의 병을 치료하는 또 하나의 과정이었다. 저 사람의 어린 시절, 청소년기, 성인이 된 후 결혼을 하기까지, 그리고 지금까지. 그 사람이 버텨왔던 생애와 역경들이 아버지가 아닌 한 사람을 헤아릴 수 있었다. 그 사람의 입에서 나온 '낙오자'라는 말을 기점으로 나는 정신건강의학과에 가게 되는 기점이 되었지만, 이제는 그 말이 어떻게 나오게 된 것인지 이해했다.




아버지도 사실 세상을 사는데 녹록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회에서의 경쟁, 자식들을 부양해야 하는 책임, 큰 수술을 겪고도 그 다음날 바로 하는 출근 그리고 외로움까지. 혼자서 사회에서 고군분투했을 아버지의 모습이 내 눈앞에 그려지자 그를 이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내 입에서 아버지에게 툭 말이 나왔다. 그때 나에게 낙오자라고 이야기한 것이 미안하지 않냐고. 그러자 아버지는 살짝 멈칫하더니 "그렇지. 미안하지."라는 대답을 해줬다. 그러자 세상 모든 것이 편안하게 느껴졌다. 마음속에 남아있던 족쇄가 풀리고 나는 다시 태어난 것 같았다. 미안하다는 그 한마디가 뭐가 그리 어려웠을까? 이렇게 나는 아버지를 용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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